나의 전생이, 일진의 아내?
고통 전달 (000)


분위기가 칼같이 얼어붙었다. 김태형은 결국 손을 나에게서 떼어냈고, 박지민이 나의 반댓손을 잡았다.


박지민
00아, 아가. 여기서 나가지 않을래? 괜히 들어온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몽롱하고 다정한 목소리. 내 뇌를 파고들듯 들어오는 달콤한 목소리.

순간 눈을 감고 박지민이 끌어당기는 대로 갈 뻔 했던 나를, 김태형이 자연스럽게 잡아챈다.


김태형
000, 니가 정해.

정신줄 놓을 거 같다. 존잘 남자 둘이라니 행복하긴 해, 근데 좀 어지럽다.

마음 같아선 김태형을 도와주고 싶은데, 확실히 박지민이 나쁜 새끼긴 한데.

뭔가…본능적으로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밖에 두고 온 물건이라도 있는 것처럼.



김태형
…진짜 나갈 거야?


000
난 여기 있,


정호석
00아.

유정 언니를 막고 있던 정호석이 대뜸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딱 나에게까지만 들릴 거리로. 사람을 홀리듯이.


정호석
여기 남아있으면 안 될 거 같지 않아?


홉
- 저하, 세자의 곁을 지키시옵소서. 소인의 하나 소망입니다.

뭐지? 쟤랑 나는 연관이 없는 거 아니었나?

내 몸이 쑥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김태형은 나를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박지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000
…이 상황에 있는 거 자체가 너무 당황스러워, 나는 이만 나가 볼게.

사실상 어장을 치면서 박지민의 편을 들겠다는 소리였다. 내가 좀 쓰레기같긴 하지만, 비몽사몽해지는 정신으로 뱉은 말이었다.

소파로 털썩 주저앉아 빨려들어감을 느끼면서 본 마지막 광경.


김태형
개 좆같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돌아서는 김태형과 승리의 미소를 짓는 박지민.

그리고 언제 있었는지도 모르게 내 쪽으로 다가온 석진 선배.


민윤기
미친, 누구세요? 언제부터 있었어?


김석진
한참 전.

나는 빨려들듯 소파에 가만 누워서 위를 지켜보고 있었다. 깨어는 있으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김석진

선배는 그저 나를 내려다봤다.

뭔가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몸을 떨고 있는데 박지민이 나를 일으켜 밖으로 걸어나갔다.

유정 언니도 우리를 따라 나왔다. 그 뒤로 전정국과 민윤기가 나왔다.

다음 순간 잠이 들었다.


김석진
태형아.


김태형
짜증나. 집어치우고 싶어, 쟤, 다시는 보기 싫어.

태형과 석진은 이전에도 연이 있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를 합하면, 약 일 년 동안 친하게 지낸 정도가 된다.

한두 시간만 대충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한 것을 파악하는 정도의 눈치를 가진 석진이 일 년이나 있었는데 태형을 모를까.


김석진
그렇게 싫어? 왜, 전생의 세자는 지금의 너와는 전혀 관련이 없잖아.

태형이 가만히 석진을 올려다본다. 공허한 눈.


김석진
왜.


김태형
난 지금의 000이 좋은데.



김석진
하.

웃음소리와 달리 아무 미소의 기색도 없는 표정. 석진의 비웃음이었다.


김태형
지금을 더 좋아하고, 또 박지민을 죽이고 싶어.


김석진
너의 그 사랑에서 쓰레기가 나오겠지.


김태형
…뭐?

석진은 그 이후로도 계속 태형이 이해할 수 없는 얘기들만을 하며 태형을 비웃었다.


김석진
넌 너 자신을 믿어선 안 돼, 태형아.


진
그래, 네 말대로다. 태형아.


태형
…무슨, 말씀이십니까.


진
비가 오니 벚이 다 떨어진다고, 그리 말하지 않았더냐 네가.

태형이 눈물 자국으로 얼룩진 제 얼굴을 더욱 찌푸렸다. 진이 가만히 태형을 쳐다보다가 비가 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진
공주마마가 승하하였으니, 네 눈물일 수도 있겠구나.

태형은 다시 눈물을 흘리느라 대답을 하지 않는다.


진
그렇게 슬프냐.



태형
아니, 형님 같으면 안 슬프시겠습니까?


진
나도 정인이 죽는 걸 보긴 했지. …그렇게 많이는 아니지만.


태형
정인이 있긴 하셨습니까.


진
남색이잖냐. 다 사내니까. 집에 소개시키기 민망해서 그냥 만나다가 죽는 걸 보긴 봤지.


태형
…텅 빈 느낌이 듭니다.


진
네가 말이냐. 하,


진
난 그리 탐욕 때문에 죽는 사람을 너무 많이 봐서 말이다.


진
…그 아이가 상당히 그립구나.

이렇게 사 편으로 고통 전달 시리즈가 끝났네요!

태형이에게 고통을 '전달'한다는 것은 석진이나, 친구인 윤기와 함께 '나누는' 것이고,

지민이에게 고통을 '전달'한다는 것은 수지나 태형이를 괴롭히거나 폭력을 행하며 '날리는' 것,

석진이에게 고통을 '전달'한다는 것은 자신의 속에 미친 듯이 '밀어넣으며' 버티는 것,

마지막으로 00이는 힘들 때 방출도, 나눔도 못 하기에 다른 사람한테 '의지하는' 것이 고통의 전달이에요.

다음 편도 더욱 어둡고 알찬 스토리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