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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10.



민윤기
...


전정국
...맞나보네.


민윤기
전정국.


전정국
나중에 다 얘기해 줄게요.


전정국
무슨 일이었는지... 다.

정국은 왠지 암울한 눈빛으로 윤기를 바라보았다. 슬프기도, 비련하기도, 뭣 모를 분노가 담겨있기도 한 그의 눈동자에 어렴풋이 작은 이슬이 맺혔다 사라졌다.


민윤기
야... 정국아!!!

그 말을 끝으로 정국은 멀어져갔다. 평소 정국의 모습답지 않은게 거짓말을 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 내려놓은 듯 해탈한 눈빛이었다.


김석진
......


민윤기
하...

쉽게 무시하기엔 골치 아픈 일이 하나 더 생겨버린 것 같았다.


타닥-

석진과 윤기가 심란한 마음으로 아이스 박스를 마저 처리하고 있을때, 누군가의 발걸음이 가까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김여주
민윤기.


민윤기
...왜.


김여주
전정국이 와서 안 말해줬나? 사무실에 이상한거 있다고 봐달라고 전했었는데.


민윤기
아... 지금 갈테니까 먼저 가 있어.


김여주
...

여주는 좀 전과 달리 힘없이 늘어진 윤기의 대답에 의아했다. 분명 몸은 일을 하고 있는데 정신만 우주 너머 저 어딘가로 날아가버린 느낌이었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여주 성격에 그냥 넘어갈리가 없지, 지금 물어보면 빡치려나 안 빡치려나 적당히 윤기의 동태를 살피며 간을 보다 그다지 화난 상태는 아닌 것 같다고 판단한 여주가 말을 꺼냈다.


김여주
무슨 일인데?


김여주
전정국도 표정 안 좋던데 연관 있는거야?


민윤기
...

정국의 이름이 나오자 살짝 흔들리는 윤기의 눈동자를 보고 여주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아침의 침입 사건, 그리고 전정국과도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지금 더 캐물어봤자 어차피 대답은 안 해줄 것 같으니 여주는 꼬리를 내렸다. 빨리 사무실로 와달라는 말만 다시 한 번 강조한 뒤 유유히 창고를 빠져나갔고, 윤기도 물기가 묻은 신발을 대충 닦아낸 뒤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사무실 정중앙에 놓여진 큰 탁자에는 이미 팀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꽤 큰 사이즈의 파일 여러개가 가득히 펼쳐져 있었다.


민윤기
뭔데 그게?

윤기가 다가가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 윤기를 향해 파일을 보여주며 이게 뭐냐는 목소리로 물었다. 빽빽하게 적힌 작은 글씨들이 종이 한가득 차 있었다.


김태형
아마 자기네들 쪽 은어인 것 같은데, 형 해독 안돼요? 이따 호석이형 남준이형이 서버 뒤져서 찾아보긴 할건데...


민윤기
줘 봐. 수상한 건 이게 다야?


박지민
다는 아니긴 한데, 이게 제일 위험해 보이는 이유가 밑에 날짜가 쓰여져 있어요. 10월 21일.


박지민
그게 내일이에요.


민윤기
...

지민의 한 마디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한글, 영어, 그리고 뭔지 모를 다른 나라 언어까지 빼곡히 써있는 파일 하단에 작게 적힌 10월 20일. 그리고 그 페이지는 파일의 마지막 장.

본능적으로 심상찮은 기운을 감지한 윤기는 파일을 손에 들고 천천히 해석해 나가기 시작했다. 부분부분 건너뛰는 것을 감안해도 알아듣기엔 충분했다.


민윤기
...최종 12명, 신선한... 즉시 유통...


민윤기
여자 여섯... 남자 다섯,

어쩐지 섬뜩한 말들을 차근차근 해석해가던 윤기, 팀원들도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개미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한 방에 윤기의 목소리만 맴돌았다.



민윤기
...어...?

파일을 잘 읽어 내려가던 윤기의 눈동자가 멈추었다. 뭔가를 말하려던 입도 멈칫- 하며 살짝 떨리는 것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석진
뭐야?


민윤기
......

석진의 물음에 윤기는 입술을 조금 깨물더니, 입을 열었다.


민윤기
...그리고 GGODBIT.



명단의 맨 마지막에 적힌 GGOTBIT. 프린트한 종이 위에 새로 쓴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볼펜자국이 선명히 남겨져 있었다.

정국의 코드네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