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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12.


그렇게 아버지로부터 도망친 나와 엄마는 둘이서 정착 생활을 이어갔다. 두 사람이 겨우 눕고 밥 먹을 자리 밖에 안되는 작은 원룸이었지만, 어쨌든 행복했다. 평범한 일상이 이토록 좋은건지 처음 알았다.

하지만 그 생활도 서서히 무너져왔다.

아버지가 다시 나타난 것도, 무언가가 잘못된 것도 아닌,

단지 돈, 가난. 그 두 가지는 평범하기만을 바랐던 우리의 일상을 점점 조여왔다.


"정국아, 엄마 오늘 늦을거니까 밥 먼저 먹어."

"내일 아침에 올 수도 있으니까 엄마 기다리지 말고 일찍 자고!"

아버지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도망쳤던 어머니는 이젠 가난으로부터 나를 구하기 위해 매일 같이 일을 나가셨고, 형제자매가 없었던 나는 자연스레 혼자 남게 되었다.

사무치게 외로운 밤들을 몇 백 번 보내고, 같이 먹을 이 없는 밥상을 몇 천 번 치웠다. 혼자가 점점 익숙해지는 것이 너무나도 비참하고 외로웠다.

그럼에도 어머니 앞에선 아무말 않고 꾹 참았다.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그토록 일 하셨던 거니까. 아무 말 하지 않고 속 썩이지 않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도 내게 아무 말 하지 않으셨던 게 화근이었을까.



여느때와 같이 혼자 저녁상을 치우고 밤 늦게까지 미루던 숙제를 하던 날이었다.

지잉- 지잉-

유독 비가 거세게 몰아치던 야심한 새벽,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웬만하면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지만 그 날 따라 이상한 기분에 전화를 받자, 핸드폰 너머로 웬 남성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OOO씨 보호자 되시죠?! 지금 길에서 쓰러지셔서 연양대병원 이송 중이거든요!!"



...뭐?

"빨리 좀 와주세요!!!"



언제 맡아도 익숙치 않은 소독약 냄새,

다급히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환자들, 보호자들.

그리고 그 광경 속 가장 익숙치 않은,

"어, 보호자 분! 오셨어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