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01. 멸망이, 들어왔다.


나, 탁여주

곧 내 27년 인생의 마침표를,

원치 않게 찍을 예정이다.

???
교모세포종입니다.


탁여주
네...?

???
이게, 뇌종양의 일종인데 치료가 굉장히 까다로워요

???
일찍 발견했으면 좋았을텐데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라...

???
평소에 두통이나 뭐 메스꺼움이 일어난다던가

???
갑자기 성격이 막 변하거나 그러진 않으셨나요?


탁여주
요즘 일이 많아서... 그냥 피곤해서 그런건 줄로만 알았는데...

???
자세한건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아무래도 위치가 좋지 않은것 같습니다


탁여주
그 조직검사, 주말에도 하나요?

???
예...? 안합니다


탁여주
그럼 며칠...정도...?

???
일주일 정도 소요됩니다


탁여주
그럼 저 못해요

???
네??


탁여주
못한다고요, 조직검사. 연차 이미 써버려서

???
여주씨, 수술 안하면 3개월이에요,

???
여주씨 남은 날들이


탁여주
수술하면요?

???
예?

???
1년, 입니다


탁여주
그럼 안할래요.


탁여주
병실에서, 서서히 죽어나간다는 거잖아요, 1년동안

???
....

???
마음 바뀌시면, 연락주세요



나는 죽는다,

앞으로 3개월 뒤에.

어차피 죽을 거, 아껴놨던 반차를 쓰고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탁여주
이것도 사고,


탁여주
저것도...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마트에 들려 먹을걸 샀다.


탁여주
아 몰라 오늘은 파티다!!!

-띠리리로리 띠리리로리


탁여주
정호석?

-슥


탁여주
니가 웬일이냐, 먼저 연락을 다하고?


정호석
-음, 심심해서?


탁여주
아, 오늘 우리집에서 삼겹살 파티나 할래?


정호석
-파티?


정호석
-너 오늘...


탁여주
알아, 겸사겸사해서 하려고.


탁여주
두 분 다 그걸 원하셨을 거란거, 알잖아.


정호석
-그렇긴 하지...


정호석
-근데 어쩌냐, 나 오늘 회식인데


탁여주
어쩔 수 없지...


정호석
-그래 그럼 수고해라

-띡

정호석과의 통화로 잠시나마 좋아졌던 기분이,

정호석과의 통화로 다시금 나빠졌다.


탁여주
하아...



한적한 오후, 평범한 길가.

한 남자가 바쁘게 걸어가고 있다.


-뚜벅 뚜벅


-끼이이이익


-챙그랑

-꺄악!!!!

마치 그가 불운을 불러오기라도 하듯,

그가 지난 길엔 혼란이 물들었다.




멸망
또, 발작 일으켰다며?

남자가 기대어 선 병실 문 너머엔 두 명의 소년이 있었다.



?
오, 왔어?



신
왔니?


멸망
명색이 신이라면서 그 빌어먹을 몸뚱이는 고치지 못하나?

환자복을 입은 소년은 아랑곳 하지 않고 화분을 쓰다듬었다


신
아마, 이번엔 스무살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아


멸망
신이 고작 심장병 하나 못고쳐서야 되겠어?

끈질긴 대꾸에 신이라고 불린 소년은 살풋 웃으며 답했다


신
어쩌겠어, 인간들을 위해 아파야 하는 것, 그게 내 숙명인걸.

둘의 대화가 심각해짐을 느낀건지, 다른 소년이 슬쩍 자리를 비켰다


?
그럼 난 들릴 곳이 있어서,


멸망
그 숙명, 숙명, 숙명.


멸망
그만두고 싶지 않아?

그제서야 신이 그를 바라보았다.


신
세상은, 정원이야.


신
인간은 정원의 꽃과 나무,


신
나는 그 정원을 돌보는 정원사.


멸망
당신이 정원사면, 나는 뭔데?


신
너는 나비.


신
정원이 아름다워질 수 있게


신
정원을 꾸며주는 존재.


멸망
결국 내 존재 이유가,


멸망
인간 때문이다?


신
그래, 영원히.

비릿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던 남자의 얼굴에 처음으로 실금이 갔다.


멸망
나, 오늘 생일이야.


멸망
나라는 사람이 태어난 날.


신
생일?


신
사람?


신
너가 사람이었던 적이,


신
태어났던 적이 있던가?



멸망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별 볼일없는 소원만 들려서 매우 거슬리는데,


멸망
그 딴 식ㅇ

신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


신
그래, 그 소원.


신
가서 누군가의 소망이 돼.



신
오늘은 그럴 수 있는 날이니까.



-빵빠앙!!

시끄러운 경적소리,

눈부신 불빛들

이젠 익숙해져버린,

지긋지긋한,

3개월 뒤면 사라져버릴

평범한 일상.

그 속에서,

이 와중에도 나는 케이크 하나를 발견했다.



탁여주
좋아...하셨으니까...

결국 나는 케이크까지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철컥

-끼이익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들어온 집.

고기를 구울 힘도, 기분도 남아있지 않아

결국 케이크와 술 한 잔으로 하루를 마치려했다.


탁여주
엄마, 아빠


탁여주
나 잘 살고 있어... 걱정하지마

액자 속 부모님의 얼굴을 보며 애써 짓는 미소에도 눈물이 나올 것 같다.

그렇게 술 한잔은 두잔이 되고,

두 병이 되고...

누가 인간이 술이 취하는 단계는 네가지가 있다고 했는가.


탁여주
어쩔 수 없어... 그래 내가 뭐 어쩌겠어...

첫번째로는 양을 닮아 온순해지고,


탁여주
내가 뭘 어쩌겠어--- 나는 네가 없으며언----

원숭이를 닮아 춤추고 노래하며,


탁여주
세상 다 망해라!


탁여주
멸망시켜줘-

사자처럼 사나워지고


탁여주
우---웩


탁여주
웩웩


탁여주
커어-

돼지처럼 아무데서나 토하고 뒹군다.




etc.
아 서팀장 ㄱㅅㄲ 콱 죽어버렸으면

etc.
ㅈ같네 시험... 사라졌으면 좋겠다

etc.
아 ㅅㅂ 내 돈!!!


멸망
하나같이 쓸모없고, 추잡해


멸망
이딴 걸 왜 ㄷ

???
세상 다 망해라!!!

???
멸망시켜줘-





멸망
ㅎ...


멸망
재밌네




탁여주
우음... 몇시야...

03:31 AM

탁여주
하... 오늘 또 출근인데...


탁여주
양치라도 해야지.

-띵동


탁여주
?


탁여주
지금 시간이 몇신데 돌았나?

-띵동

-띵동띵동띵동띵동


탁여주
ㅁ...뭐야...


탁여주
강도...?

혹시 몰라 챙겨두었던 정호석의 야구배트를 들고 현관으로 향했다





멸망
안녕?


탁여주
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악!!!!!!




슈베슈
제 인생 최고 분량을 찍었어요...


슈베슈
물론 원래 스토리에 등장인물이라던가 사건을 약간 바꾼거지만...


슈베슈
다음화부터는 마이웨이로 갈겁니다!!


슈베슈
그나저나 글 쓰는것보다 사진 찾는게 더 어려워요..


슈베슈
정리를 해야지 원.


슈베슈
그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