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너에게

각오하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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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불편하진 않아?”

정한의 목소리는 밤공기만큼이나 조용하고 나긋했다.

서연을 조심스럽게 업고 걷는 그의 걸음은 느렸고, 안정적이었다.

그 품은 따뜻했고, 심장은 너무 가까워서 울림처럼 전해졌다.

서연은 순간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정한의 목 뒤에 조심스레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고개를 작게 도리도리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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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간지러. 이서연."

정한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서연은 그 말에 움찔하며 움직임을 멈췄고, 잠시 후 그의 귀 끝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고 말았다.

이서연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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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왜 불러."

목소리는 조금 잠겼고, 어딘가 부끄러움을 꾹 누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서연

“…몰랐는데, 엄청 귀여워요…”

그 말에 정한의 걸음이 멈췄다.

그는 고개를 살짝 돌려 서연을 바라보려 했지만, 이내 다시 고개를 돌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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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너, 진짜 또 그런 말 하면... 진짜…”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한 정한의 말투에 서연은 괜히 장난기가 올라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일부러 더 이어갔다.

이서연

“귀여워요~ 선배님~ 아니야, 깜찍한가?”

정한은 어이없다는 듯 작게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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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내가 하지 말랬는데...”

이서연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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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몰라. 너 각오해, 이서연.”

정한은 작게 웃음을 흘렸고, 서연은 그 웃음에 포근함을 느끼며 다시 그의 어깨에 살포시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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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아, 다 왔다.”

말을 마친 정한은 어느새 불이 켜진 약국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서연을 조심히 벤치에 내려놓고 급히 안으로 들어가 연고, 밴드, 압박붕대 등을 사서 돌아왔다.

이서연

“...선배, 바닥 더러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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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괜찮아.”

정한은 망설임 없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의 시선은 온전히 서연의 상처에 집중되어 있었다.

살며시 바지를 걷어올리고, 까진 무릎에 연고를 바르기 시작한 정한.

그의 손길은 조심스럽고, 아주 섬세했다. 살짝 닿을 듯 말 듯—

마치 그녀가 아플까봐 숨소리마저 아껴 쓰는 사람처럼.

그 손길이 닿을 때마다 서연은 통증보다 가슴이 먼저 뛰었다.

이토록 가까운 거리. 이토록 부드러운 손끝.

정한이 발목을 조심히 들어 붕대를 감아주고 마지막으로 살짝 매듭을 묶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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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내가 각오하랬지. 이서연.”

이서연

“네…?”

그 순간, 정한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단숨에 서연의 앞에 다가와,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감싸 안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녀를 자신의 쪽으로 조심스럽게 끌어당겼다. 그리고— 입을 맞췄다.

처음 닿은 순간은 조심스러웠지만, 곧 더 깊이, 더 가까이 그들의 숨결은 섞이기 시작했다.

맞닿은 사이는 점점 더 깊어져만 갔고, 닿아버린 그 순간은 조금의 틈도 없이 완벽히 겹쳐졌다.

서연은 놀람과 설렘에 손을 들어 허공을 허우적였지만, 정한은 그런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내렸다.

그리고 시간을 멈춘 듯, 아주 천천히, 그리고 오래도록 그 키스를 이어갔다.

온 세상이 조용했고, 단 하나, 커다란 심장 소리만이 들렸다.

정한의 것이었는지, 서연의 것이었는지는 이젠 아무 의미 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들어온 순간. 그것만이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