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너에게
늦은 밤, 너에게


이서연
“…선배님…”

그 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정한의 품 안에 꼭 안긴 서연.

미칠 듯이 뛰는 심장의 고동이 온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게 자신의 심장인지, 아니면 정한의 심장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을 만큼.

그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안고 있었다.

그 품에서 전해지던 체온, 숨소리, 떨림.

말이 필요 없었다. 단지 그 순간만은, 둘만의 시간처럼 고요했다.

그러다 천천히 그녀를 풀어주었다. 정한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더 젖어 있었다.

감정이 가라앉지 않은 그 눈빛이, 말보다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서연의 뺨에 손끝을 가져갔다.

따뜻한 손가락이 살짝 스치며 그녀의 볼을 쓰다듬자, 서연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삼켰다.


정한
“…서연아, 있잖아…”

그 말에, 서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뭔가 말해주려는 걸까. 그가 품고 있던 진심을, 드디어.떨리는 숨결 속에 귀를 기울이던 그때—


원우
“저 쪽이에요~!”

멀리서 들려오는 원우의 밝은 목소리. 순간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놀라며 몸을 떼어냈다.

이서연
“아, 그… 그러니까 이렇게 한다는 거죠…?”


정한
“…아, 네. 맞아요…”

당황한 서연은 급히 아까 배운 안무 동작을 따라하며 대충 상황을 넘기려 했다.

정한도 머리를 한 번 쓸어올리며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원우가 다가오며 살갑게 물었다.


원우
“아, 정한이 형이 안무 잘 알려주셨죠?”

서연은 억지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한은 뒤에서 조용히 눈을 피했다.

매니저가 카메라 세팅을 하겠다며 촬영 준비를 시작했고,둘은 다시 원래대로 향을 맞춰 섰다

서연은 순간 고개를 살짝 돌려 정한을 바라보았다. 막 전하려 했던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쉬웠다.

그녀는 살짝 입술을 삐죽이며 울상 지었고, 정한은 말없이 그 표정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저으며 같은 마음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날 밤. 스케줄을 마친 서연은 겨우 집에 도착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머리를 말리고, 조용히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정신은 온통… 정한이었다.

연락을 해볼까. 아니야, 너무 이른가.

아니, 아까 그 말은… 그 표정은… 분명 뭔가 있었는데…

수십 번 망설이며 휴대폰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던 서연.

마침내 용기를 내어 메시지를 쓰려던 그 순간.

우우우웅—— 진동이 울렸다.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이름.

‘정한 선배님’

이서연
".. ..!!!"

놀란 서연은 휴대폰을 덜컥 떨어뜨릴 뻔하다가 간신히 다시 집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서연
"...여 여보세요...!"


정한
[후배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낮고 부드러운 정한의 목소리. 그 한 마디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서연
“ㄴ…네, 선배님…”


정한
[나, 지금 후배님 집 근처 공원인데… 잠깐 나올래요?]

그 말에 잠시 망설임도 없이 대답이 튀어나왔다.

이서연
"...아 네..!!"

전화를 끊자마자, 서연은 정신없이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머리를 다시 빗고, 향수를 한 번 더 뿌리고, 대충 모자를 눌러쓴 뒤 가볍게 입을 걸치고선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그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그 품이, 다시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