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너에게
업혀


서연은 거의 전력질주에 가까운 속도로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가 있다는 말 한 마디에 마음은 이미 앞서가고 있었고, 가슴은 무겁게 뛰고 있었다.

집 근처지만, 공원은 한적한 밤의 구석진 자리에 있어 이 시간엔 아무도 찾지 않는 조용한 공간이었다.

이서연
“헉… 허어…”

뺨은 붉게 달아오르고, 숨은 거칠었다.

하지만 서연의 눈은 그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저 멀리, 가로등 불빛 아래

바람막이에 모자를 눌러쓴 익숙한 실루엣이 서 있었다.

정한이었다.

모자에 반쯤 가려진 얼굴이었지만, 서연의 눈엔 단번에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존재는 이미 익숙했고, 또 너무 눈부셨다. 인기척을 느낀 듯, 정한이 몸을 돌렸다.


정한
“어어… 후배님?! 뛰지 마요, 뛰지 마—!”

그는 서연을 향해 빠르게 걸어오며 손을 뻗었다.

하지만 서연은 그 말이 들려왔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달려가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에게 닿고 싶었다.

그러다 순간, 무심결에 발끝이 보이지 않던 돌 뿌리에 걸리고 말았다.

이서연
“으앗…!”

몸이 앞으로 쏠렸고, 바닥에 손을 짚으며 쓰러졌다.

무릎이 그대로 땅에 쓸리며 바스러지는 감각이 퍼졌다.


정한
"..서연아!!"

놀란 정한이 달려왔다. 미처 잡아주지 못한 자책감이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정한
“괜찮아…? 아, 진짜… 내가 뛰지 말랬잖아…”

그는 조심스레 그녀를 부축해 인근 벤치로 옮겼다.

가로등 아래, 희미한 불빛이 두 사람을 비췄다.


정한
“잠깐만 봐봐.”

서연의 바지를 살짝 걷어올린 정한. 무릎이 까져 붉게 피가 배어 나와 있었다.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살짝 주저앉아 그 상처를 바라보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정한
“…까져서 피나잖아, 서연아…”

서연은 아픈 걸 참으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이서연
“…그게… 너무 보고 싶어서, 저도 모르게…”

그 말에 정한의 손이 멈췄다. 서연을 올려다보던 그의 눈에, 조용한 미소가 번졌다.


정한
“…나도 그래.”

그는 부드럽게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손끝이 지나간 자리에 따스함이 남았다. 하지만 곧 그의 눈길은 다시 무릎으로 향했다.


정한
“…여기 혼자 두고 가긴 좀 그래서. 걸을 수 있겠어? 약국 가자. 간단하게라도 치료는 해야지.”

이서연
“…괜찮은데요…”


정한
“내가 안 괜찮아. 말 들어요, 후배님.”

정한은 그렇게 말하고는 일어서며 손을 내밀었다. 서연은 작게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일어나려는 순간, 무릎 아래 발목에서 욱신거림이 올라왔다.

이서연
“…읏… 아야야…"

다시 벤치에 주저앉는 그녀를 보고, 정한은 걱정된 눈으로 무릎을 다시 살폈다.

그러다 시선을 아래로 옮겨 발목을 만져보았다. 약간 부어 있는 걸 확인하자, 그는 조용히 혀를 찼다.


정한
“…발목도 조금 삔 것 같아. 병원 가자, 서연아.”

이서연
“…아, 아니요… 병원까진 괜찮아요… 약국 가요, 정말로…”


정한
“…으이구, 진짜… 고집 부릴래요?”

정한은 잠깐 생각하듯 주춤하더니, 그대로 서연을 등지고 등을 돌려 앉았다.


정한
“빨리 업혀. 업어줄게.”

이서연
“…네…에?!”


정한
“걸으면 덧날 수 있어. 얼른 업혀요.”

단호하고 짧은 그의 말투에, 서연은 순간 당황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손끝이 서툴게 움직였다.

하지만 결국, 그는 진심이었다. 서연은 살며시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등을 타고 올라, 그의 등에 안겼다. 심장이, 또 한 번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조용한 밤. 그의 등에 업혀 흔들리는 리듬 속에서, 서연은 마음을 단단히 감쌌다.

이게 꿈이 아니길—

아프면서도, 간절하게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