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PORTUNITY : 기회
#25



그 날, 나는 윤수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윤수가 살아왔던 그동안 14년간의 이야기를 듣는데 고작 몇 시간이 걸린다는 말은 할 수 없었지만,

확실히 전보다는 윤수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전정국
...그럼 너는 이제 어떻게 할거야?


전정국
아빠가 자주 때렸다며, 증거는 있어...?


전정국
그래야 네가 그 사람한테서 벗어날 수 있을텐데.


고윤수
......ㅎ


윤수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지난 몇 년간의 고통이 그 표정 하나로 다 보이는 것만 같았다.



전정국
윤수야, 너는 환생을 믿어?


고윤수
......


고윤수
영혼이라는 개념은 없어.


고윤수
영혼을 정의하자면 자아를 부여시키는 에너지라고 할 수 있는데,


전정국
......


전정국
너 뼈이과구나.


고윤수
응...


전정국
푸핫, 너랑 대화하다 웃음도 나오고. 신기하네.


고윤수
나도 신기해.


고윤수
며칠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던 너랑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다는게.


전정국
......


전정국
나는 환생을 믿거든?


고윤수
......애네.


전정국
애여서가 아니고 ㅋㅋㅋㅋ 나는 정말 환생을 믿어.


전정국
아니, 환생이 아니더라도.


전정국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이상의 세상을 믿어, 나는.



고윤수
......


전정국
너는 분명 잘될거야.


전정국
네가 원하는 일, 꿈꾸던 직업.


전정국
모두 이룰거야.


전정국
내가 장담해.


고윤수
......네가 어떻게 알아.


고윤수
14년밖에 안 살았는데도 이미 내 인생은 나락으로 빠진 것 같은데.


전정국
......


전정국
14년 밖에 안살았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거야.


전정국
요즘 100세 시대잖아.


전정국
너 겨우 10분의 1 살았어.


전정국
앞으로 남은 네 인생의 10분의 9는,


전정국
엄청 행복할거야.



전정국
그러니까 자신감 가져, 주눅들지 말고.


전정국
너 생각보다 엄청 대단한 사람이니까.


고윤수
......


고윤수
어차피 내일이면 똑같은 집에서 똑같은 지옥의 일상이 반복될텐데,



고윤수
네 말만 들으면 진짜 내가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네.


고윤수
너 말 되게 잘하는구나.


고윤수
그래서 공부를 잘하나...


전정국
나 공부... 못ㅎ...


전정국
아니 못하는 건 아닌데, 그만큼 내가 한 때 공부를 너무 많이 했어.


전정국
독학 재수로 연대 수석이 어디 쉬운 줄 아ㄴ,


고윤수
......?


전정국
아! 아무튼!


전정국
너 나보다 좋은 대학교 가.


전정국
이거는 진짜 내가 장담한다.


전정국
중1때 경쟁 아무 의미 없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임마.


전정국
아버지가 뭐라고 하면, 똑같이 대들어.


전정국
그때 아버지가 너 또 못살게 굴면,


전정국
그때는 내가 혼내줄게.


전정국
달려가서.


고윤수
......


고윤수
고마워.


고윤수
말 만이라도.



윤수는 그 뒤로 학교를 잘 나왔다. 전보다는 확실히 밝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는 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 펜을 놓지 않고 공부하는 건 똑같았다.


시간은 너무 빨랐고,

2학년은 금세 찾아왔다.


"야, 고윤수 아빠 감빵 갔다며."

"헐... 그래서 윤수 전학간거야?"

"ㅇㅇ 그런듯. 애초에 친아빠도 아니었대."

"윤수 어떡해... 너 윤수 어디로 전학간지 알아?"

"모르지 내가 어떻게 알아."


"걔랑 특별히 친하게 지낸 애, 한 명도 없었잖아."



윤수는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아무도 모르게 전학을 갔다. 나에게도 마지막 인사 한 번 없이, 정말 갑작스럽게.

윤수가 전학 간 뒤에도 나는 평범한 학교 생활을 반복했고, 태형이와 여주랑도 크게 바뀌는 변화 없이 무탈하게 지냈다.


과거도 더 이상 바뀌지 않았다. 엄마도 건강해졌고, 이제 정말 아무 걱정이 없을 것만 같았다.

'2010년 연화고등학교 신입생을 환영합니다.'



김태형
...진짜 고딩된 거 실화 맞냐고.


전정국
시간 빠르긴 빠르네 ㅋㅋㅋ


전정국
아우 김태형 얘는 언제 이렇게 컸대.


전정국
내가 엎어 키웠더만...



김여주
ㅋㅋㅋㅋㅋㅋ쟤는 중1때부터 저 소리야.


김여주
태형이한테 사랑 주면서 키운 건 나지.


김여주
그치 태형아?


김태형
웅웅


이 둘은 생각보다, 아주 많이 오래 갔다. 중1때의 시작한 만남을 고1인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니.



전정국
니들도 오래 간다.


전정국
나는 솔직히 일주일 안에 헤어질 줄 알았는데.


김여주
당연하지 ㅋㅋㅋ 김태형을 어떻게 안 좋아해?


김태형
김여주를 어떻게 안 좋아해.


김여주
근데 김태형 얘 나이 좀 먹었다고 말 없어진 거 알아?


전정국
ㅇㅇㅇ 격공


전정국
중3때부터 갑자기 분위기 잡아.


전정국
목소리도 그렇고....


김태형
원래 이랬거든.


전정국
아니거든. 엄청 촐싹 댔거든.


전정국
니 초딩때 동창 애들 너 절대 못 알아봐.


김태형
뭐래... 아저씨가..


전정국
아저씨...?


김태형
너 이제 서른 다섯이다...


김태형
진짜... 꼰대 아저씨...


전정국
뭐? 내가? 서른 다섯?


김여주
아 얘네 또 나이 가지고 싸워.


김여주
누가보면 전정국 진짜 서른 다섯 꼰대 아저씬줄.


전정국
...서른 다섯이 왜 아저씨야.


전정국
아저씨 아니야.


김태형
네 아저씨.


시작이라는 건 두려움을 동반한다. 마냥 설렘만이 시작의 전부는 아닌거다.

과거로 돌아온, 아홉 살의 몸에 스물 일곱의 영혼이 들어온 이 몸이 너무 익숙해져버린 탓일까.

나도 모르게 몇 년간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잊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죽기까지 딱 10년 남은 이 시점.

10년뒤 죽을 걸 알고 있는 내가, 과거로 돌아온 현 시점에서 어떤 것을 해야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두려워 피하기만 했던 지난날들.


나는 오늘부터,

내가 여기로 돌아온 가장 큰 본질적인 이유를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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