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운명
01ㅣ알코올에 미쳐버린 나에게 다가와준 유일한 당신.


유혜는 오늘도 힘겹게 회사 일을 끝내고 나와 편의점으로 향한다. 들어가자마자 술 코너로 직진 해 소주 9병과 맥주 10캔을 가지고 계산대로 간다. 새로운 알바생인지 처음 보는 알바생이 유혜가 사는 술들을 보고 놀라 묻는다.

알바생
저, 혹시… 오늘 파티 하시는 거예요?


신유혜
아니요, 저 혼자 마시려고 사는 거예요.

알바생
이, 이 많은 걸… 다요?


신유혜
네, 얼른 계산해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유혜는 계산을 하고 편의점을 나왔다. 봉지에 가득 담겨있는 술들을 보며 행복한 듯 표정을 짓고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유혜
크… 나는 알코올 없으면 어떻게 사냐, 진짜.

띠링, 한창 술을 먹고 있을 무렵 울리는 휴대폰. 흥이 깨져 짜증이 나는 듯 유혜는 인상을 찌푸린 뒤 휴대폰을 들어 문자에 들어갔다. 문자에 들어가니 제일 첫 번째에 뜬 이름은 다름 아닌 “정신과 담당 김석진 선생님”


김석진
내일 병원 오는 거 알고 있지?ㅣPM 10:38


신유혜
PM 10:38ㅣ네네, 그럼요.


김석진
또 술 마시고 있는 거 아니지?ㅣPM 10:39


김석진
왜 답이 없어? 술 마시고 있는 거 맞지?ㅣPM 10:43


신유혜
PM 10:43ㅣ아시잖아요, 저 술 없으면 안 되는 거.


김석진
그래도 안 마시는 게 신체적으로는 좋잖아.ㅣPM 10:43


신유혜
PM 10:44ㅣ정신적으로는 안 좋으니까 그렇죠.


김석진
그래… 너를 누가 말려, 내일 병원이나 제시간에 와.ㅣPM 10:44


신유혜
…

여주는 1년 전부터 우울증으로 정신과를 다녔고, 1년간 다녀서 그런지 담당 의사와 꽤 친해졌다. 물론 이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은 전혀 믿지 못 하지만.


신유혜
선생님.


김석진
아, 유혜 왔어?


신유혜
네.


김석진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 내 담당 환자가 한 명이 더 있어서 말이야.


신유혜
뭐… 알겠어요.


김태형
형, 빨리 안 와요?


김석진
어어, 간다 가.


신유혜
되게… 밝은 사람인가 보네.

선생님한테 형이라니, 엄청 친한가 보네. 하고 생각하던 여주는 할 거 없이 병원 의자에 앉아 바닥만 보며 술 먹고 싶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김석진
유혜야, 들어와.


신유혜
아, 네.


김석진
요즘은 좀 어때?


신유혜
저번 달이랑 똑같죠, 뭐.


신유혜
술 마시고, 울고… 반복이에요.


김석진
약은, 잘 챙겨먹고 있어?


신유혜
네, 매일 챙겨 먹는데… 전혀 나아지지 않아요.


신유혜
회사에서는 매일 구박만 받고, 집에 오면 혼자고… 진짜 너무 힘들어요.


김석진
우울증이 심각하네…


김석진
약 처방해줄게.


신유혜
아, 맞다… 선생님.


김석진
응?


신유혜
나… 요즘 잠도 안 오는 것 같아요.


김석진
누우면 몇 시간 정도 못 자는데?


신유혜
4시간…?


김석진
불면증이네… 심각한 우울증에 불면증까지.


신유혜
잠이 안 와서 더 미치겠어요, 잠에 겨우 들어도 악몽 꾸고.


신유혜
그래서… 술에 더 의지할 수밖에 없어요.


김석진
울지마.


신유혜
…


김석진
하아… 내 담당 환자들은 다 심각한 환자들 밖에 없네.


신유혜
선생님 담당 환자 중에 심각한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어요?


김석진
응, 아까 그 사람.


김석진
너도 봤지?


신유혜
아, 선생님한테 형이라고 했던…?


김석진
응, 걔는 불안증세가 정말 심하거든.


신유혜
그렇구나…


김석진
음, 이제 가봐.


김석진
또 힘든 일 있거나 악화되는 것 같으면 언제든 연락 주고.


신유혜
응, 항상 고마워요.

유혜는 병원에서 나와 약을 처방받고는 편의점으로 갔다. 들어가려던 찰나 유혜의 발목을 잡은 한 장면. 아까 그 불안증세에 시달린다는 환자가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유혜는 그 모습을 보고는 그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신유혜
왜…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김태형
으응? 석진이 형 담당 환자 분이네에…


신유혜
나… 알아보시네요.


신유혜
음… 불안증세가 심하다고 들었는데, 뭐가 그렇게 불안해요?


김태형
내 직업은… 작가예요.


김태형
사람들이… 다 내 다음 작품을 기대하고 있어요.


김태형
하지만, 난 사람들의 기대만큼 거대하고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 자신이 없어요.


신유혜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김태형
전 작품이 베스트셀러에 올라갈 정도로 히트를 쳤어요.


김태형
하지만… 나는 그 작품보다 더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낼 능력이 없어요.


김태형
그렇게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운이 좋아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 뿐이니까요.


신유혜
운이 좋아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작가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신유혜
작가가 글을 잘 쓰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을 쓰니까 그게 가능한 거지.


김태형
그렇게 말해주시니 고맙네요…


김태형
우울증… 겪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우울해 보이지 않아요.


김태형
왜… 우울증에 시달리고 계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