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우주
제 1장:필연(必然) Ep.1


인천 도림동에 위치한 한 2층 주택.


退魔師 이상연
"으..."

열린 창문 틈새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소리와 함께 곤히 잠들어 있던 상연의 미간이 낮은 신음과 함께 살짝 찌푸려졌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피부 깊숙히끼지 한기가 느껴졌다. 상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이었다. 딸랑-♪ 인기척과 함께 뒤쪽에서 작은 방울소리가 들려왔다. 상연이 싱긋 미소 지으며 천천히 뒤를 돌았다.


退魔師 이상연
"할아버지. 또에요?"

상연의 질문에 노인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했다. 항상 웃어주신던 할아버지가 오늘은 얼굴에 웃음기가 전혀 없으셨다. 왜인지 모르게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노인
"오늘이 마지막인 것 같구나."


退魔師 이상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마지막이ㄹ..."

노인
"그건 나중에 알게될게야. 분명."


退魔師 이상연
"그게 대체 ㅁ...어?! 할아버지 몸이!!"

노인
"우리 이쁜 손주...앞으로도 쭉 행복해야 한다."

노인이 상연을 향해 크게 미소 지었다. 노인의 몸이 눈에 띄게 희미해져 갔다.


退魔師 이상연
"ㅇ...안돼!!"

상연이 애절한 외침과 함께 노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안타깝게도 노인의 몸은 상연의 손이 닿기도 전, 고른 가루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 상연의 손이 힘없이 아래로 추락했다. 상연은 아랫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높이 치켜들었다.


退魔師 이상연
"사랑해요. 할아버지...부디 좋은 곳으로 가세요."

인적한 시골 마을에 위치한 깊은 숲 속, 전날 비가 온 탓인지 숲속엔 습기 섞인 안개가 자욱한 상태였다. 습기를 머금은 흙바닥이 미끄러웠다. 상연은 나무를 지탱삼아 조심조심 발걸을 옯겼다.

잠시 후, 목적지에 다다른 건지 상연의 발걸음이 늦춰졌다. 상연의 눈 앞에 시선을 압도하는 음산한 동굴이 나타났다.


退魔師 이상연
"여긴가 보네."

상연이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며 바지 뒷 주머니에서 총 한 자루를 꺼내들었다. 그 순간, 휙!-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상연의 뒤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상연의 오른 어깨에 길게 생채기가 나더니 새빨간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退魔師 이상연
"쳇, 숨어있는 거 다 아니까 당장 나와!"

상연이 한 손으로 피가 흐르는 제 어깻죽지를 감싸쥐며 소리쳤다.

구미호
"훗. 제법인데? 내 공격을 피하다니."

정막이 가득하던 숲에 가녀린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상연은 소리의 근원지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멀지 않은 거리 큰 오동나무 옆에서 하얀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상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의 다리 사이로 여우 꼬리가 보였다.


退魔師 이상연
"너 구미호 맞지? 한 번만 물을게. 천호(天狐) 어디에 숨겼어?"

구미호
"천호(天狐)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구미호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상연과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어느덧 둘의 거리는 1m로 좁혀졌고 구미호의 눈동자에 검분홍빛 아지랑이가 이는 동시에 상연의 눈이 초점을 잃었다.

구미호
"이게 얼마만의 고급진 만찬이야?"

구미호가 두 손으로 상연의 뺨을 살며시 감싸쥐었다.


退魔師 이상연
"내가 한 번만 물어 본다 했지?"

상연이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큰 총소리와 함께 구미호는 외마디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한줌의 먼지가 되어 완전히 소멸됐다.


退魔師 이상연
"이제 이 지긋지긋한 연기도 끝이구나."

상연은 바닥을 적신 제 혈흔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退魔師 이상연
"이거 아끼는 셔츠인데...어쩔 수 없지..."

상연은 총이 꽃혀있던 반대 주머니에서 작은 접이식 단검 하날 꺼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입고 있던 셔츠 자락 끝을 찢어내 상처 부위를 감쌌다.


退魔師 이상연
"이제 들어가 볼까?"

상연은 땀에 젖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동굴 안으로 발을 들였다.

소름이 끼칠 만큼 음산했던 입구와는 다르게 내부는 무척이나 넓고 아름다웠다.


退魔師 이상연
"이렇게 예쁜 곳이 저런 요괴 때문에 폐쇄되다니...안타깝네."

좀더 깊숙한 곳으로 발을 들이니 에메랄드 빛 작은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 여길 찾아온 이유인 천호(天狐)가 쓰러져 있었다, 그 옆을 한 젋은 남자가 지키고 있었다.


退魔師 이상연
"찾았다."

동굴에 울려퍼진 낯선 이의 목소리에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팟 들었다.


半獸 이주연
"살려주세요...저희는 나...나쁜 요괴가 아니에요."

눈에 주황빛이 감도는 걸 보니 사람은 아닌 듯 했다. 반수(半獸)인가? 그나저나 누가 보면 내가 악당인 줄 알겠네. 상연이 선한 미소를 지으며 둘과의 거리를 좁혔다.


退魔師 이상연
"걱정하지 마~나는 너희를 구하러 온거니까. 그 여우 천호(天狐) 맞지?"


半獸 이주연
"그걸...어떻게...?"


退魔師 이상연
"믿고 말고는 네 자유인데 난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께서 꿈속에 나타나 천호(天狐)가 위험에 빠지게 될 장소를 알려주셨어."

알려주셨어? 남자가 슬픔 가득한 눈으로 상연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退魔師 이상연
"에이~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지마. 나도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으니까."


半獸 이주연
"저. 퇴마사님. 실례가 안 된다면 이름 물어봐도 될까요?"


退魔師 이상연
"이름은 왜?"


半獸 이주연
"저희 생명의 은인이시잖아요."


退魔師 이상연
"그래. 뭐. 이름 쯤이야. 이상연, 이게 이름이야. 나이는 스물여섯이고. 너는?"


半獸 이주연
"전 천호(天狐)를 보좌하는 붉은여우 반수(半獸) 스물셋 이주연이라고 해요. 이분은 스물다섯 배준영 형이고요."


退魔師 이상연
"있잖아. 예전에 엄마한테 들은 건데 천호(天狐)랑 반수(半獸)는 인간 모습일 때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던데 사실이야?"

주연이 싱긋 미소지으며 상연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제 목소리 들리세요?" 귓가에 주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退魔師 이상연
"텔레키네시스 능력...??"


半獸 이주연
"네. 맞아요."


退魔師 이상연
"윽...!!"

구미호에 의해 생긴 상처가 벌어진 모양이다.


半獸 이주연
"왜 그러세요?! 혹시 아까 구미호랑 싸우시면서...??"

상연이 긍정의 의미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半獸 이주연
"잠시만 실례 좀 할게요."

스륵- 주연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상연의 어깨를 감싼 옷천을 풀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처가 꽤 깊었다. 주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상연의 어깨 부근에 손을 올렸다.


半獸 이주연
"가만히 계세요."

주연의 검지에 끼워진 진주 반지에서 연둣빛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마치 뚫린 살이 촘촘히 매워지는 듯한 이질적인 느낌에 상연이 작게 앓은 소리를 냈다.


半獸 이주연
"다 됐어요."


退魔師 이상연
"반지 때문에 치유 능력이 가능한거야?"


半獸 이주연
"네.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품이에요. 아버지는 이 반지를 아샤 반지라 부르셨데요."


退魔師 이상연
"고마워. 치료해줘서."


半獸 이주연
"목숨을 구해주신 분한테 이 정도는 기본이죠."

주연이 특유의 눈웃음과 함께 반지를 매만졌다.


天狐
"주...주연아."

천호(天狐)는 여우의 모습일 때도 사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주연과 상연의 고개가 일제히 준영에게로 향했다.


半獸 이주연
"준영이 형! 정신이 좀 들어?!"


天狐
"저...저 사람은 누구야??"

천호(天狐)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상연을 훑었다. 천호(天狐)의 시선이 상연의 왼 바지 주머니에서 꽃혔다. 별, 십자가 문양이 박힌 총, 스피리투스 가문 퇴마사들의 문양이 분명했다.

축 처져 있던 천호(天狐)의 꼬리가 일제히 제자리를 찾았다. 나풀나풀 흔들리는 10개의 은빛꼬리가 실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天狐
"정말 감사해요.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退魔師 이상연
"너희 둘...혹시 나랑 퇴마일 해볼 생각 없어?"

주연과 준영은 갑작스런 상연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었다.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한 또 다른 보답으로 주연은 인간이신 아버지가 물려주신 저택을 상연이 퇴마 사무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저택으로 향하는 길, 준영과 쭉 같이 살던 사이냐는 상연의 질문에 주연은 답했다.

3년 전, 불의의 사고로 부모님을 일찍 잃었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와 다니넌 숲 속 길 이곳저곳을 배회하다 그만 길을 잘못 들어 상급 요괴에게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준영이 그런 저를 구해줬고 안쓰러운 사정을 듣게 된 준영이 동거를 제안해 함께 살게 됐다.

LA공항, 저마다의 시간을 즐기며 공항을 거닐던 이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그곳엔 마치 만화를 찢고 나온 듯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를 지닌 젊은 한국 남성이 큰 캐리어를 이끌고 수속 절차를 밟고 있었다.

직원
"어디 가세요?"

그의 손엔 'Kim Young Hoon' 이란 글자가 새겨진 여권이 쥐어져 있었다.


靑龍 김영훈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