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예뻐해 주세요_

Episode 40. 기억해 주길 바랐는데

"나 예뻐해 주세요_" _40화

무언가 눈앞에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처럼, 그 뒤에 따르는 공허함을 안고 아빠가 있을 중앙 홀로 들어섰다.

좀 더 발걸음을 옮기면 보이는, 제일 앞 좌석에 앉아있는 엄마.

신미진

아~ 우리 딸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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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응_

꽃다발과 가방은 한 칸 띄운 자리에 두고 자연스레 엄마 옆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단상에서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가는 중인 아빠가 보였다.

백 회장

· · · 그래서 우리 기업은 이 프로젝트를 계획함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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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

신미진

딸 무슨 일 있어?

신미진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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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아, 그래 보여?

혹시나 울었던 티가 날까 봐 손가락으로 눈 주변을 만졌는데, 다행히 화장이 번진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신미진

오늘 축하연 끝나고 외식하러 갈까- 하는데, 우리 딸 같이 갈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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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외식?

이 상황에 뭘 더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우선 생각을 하는 척이라도 해야 엄마가 덜 무안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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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글쎄... 오늘은 잘 모르겠다.

신미진

이것 봐-. 오늘 몸 안 좋은 거 맞지?

아니야 엄마... 몸 안 좋은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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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아니래도-.

신미진

…안 본 새에 수척해진 것 좀 봐.

신미진

…외식 강요 안 할 테니까 아버지한테 인사만 드리고 오늘은 들어가서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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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그래도 돼...?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보는 눈이 많아서, 축하연 끝날 때까지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신미진

그래도 돼-.

신미진

엄마가 아빠한테 잘 말해둘게-.

백 회장

뭐가 그래도 돼-?

어느새 기획안 브리핑을 마치고 단상 아래로 내려왔던 아빠. 궁금하다는 듯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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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참, 아빠- 선물.

내 얼굴 오랜만에 보셨을 텐데, 처음부터 컨디션 안 좋다는 말로 좋은 날 분위기 흐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 화제를 바꿔 보려 했고.

백 회장

아, 뭐야-ㅎ 꽃 선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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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응. 예쁘죠?

백 회장

이야- 그러니까. 향기는 또 되게 좋네.

남자들은 보통 꽃 선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길래, 조금은 걱정했는데 아빠 반응 보고 걱정 한시름 덜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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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아, 오는 길에… 한 번 떨어뜨려서 포장지가 조금 구겨졌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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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그래도 괜찮으려나_ 모르겠네.

백 회장

괜찮아 괜찮아. 괜찮고 말고.

신미진

아휴- 딸한테 꽃 선물 하나 받았다고 입꼬리 귀에 걸리겠다, 걸리겠어.

누가 딸 바보 아니랄까봐. 탄식하며 내 눈 마주치며 고개 절레절레 젓는 엄마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백 회장

딸, 아빠 사진 하나만 찍어주라.

내게 폰을 내밀더니, 어느새 종종걸음으로 뛰어서 '제1회 우리 기업 건설 사업 프로젝트 기념식'라 적힌 현수막 아래에 자리를 잡고 계시는 아빠가 눈에 띄었다.

빨간 장미가 풍성한 꽃다발을 품에 꼭 안으신 채로 맑게 웃고 계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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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하나, 둘, 셋- 하면 찍을게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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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하나 둘 셋-

···

조수석에 가방을 던지듯 놓고, 운전석에 앉아 핸들에 머리를 기댔다. 눈을 감으니 잠깐이었던 그의 모습이 스치더라.

분명 하루하루 애타게 기다려왔는데, 막상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

이기적이게도 그가 나를 기억해 주길 바랐다면, 그건 너무 과도한 기대였을까.

그조차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저물어 가는 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을 쳐다봤지만, 그 차는 이미 가고 없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멍청하게 울지만 말고 그에 대해 좀 더 알아볼 걸.

무식하게 울음만 나오던 불과 몇 시간 전의 내가 한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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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아 백여주 바보.

그래도 뭐 어쩌겠어, 싶은 마음에 그냥 시동을 걸었다. 여기 있다간 자꾸 그 생각만 날 것 같아서.

그렇게 이제 이곳을 벗어나려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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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뭐야, 갑자기 자기반성하는 시간이야?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짓궃은 목소리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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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아,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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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언제부터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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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좀 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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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내가 너… 그렇게 아무데서나 나타나는 능력 좀 그만 쓰랬지.

심장 떨어질 것 같다고, 정말. 여주가 한숨 쉬자, 태현은 들은 체조차 안 하고 재차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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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들으면 아마 뒤로 자빠질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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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뭐야, 그 정도로 놀랄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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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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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무슨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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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태형 씨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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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어. 근데 그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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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태형이 본 게 ㅁ…

잠깐의 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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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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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정말? 네가 헛것 본 게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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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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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파란 머리도 그대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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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어디서 본 차 같다 했더니 나 데리러 올 때 몰고 오던 차도 똑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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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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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뭘 해, 바보같이 아무 말도 못 했어.

아무 말도 안 나오고 그냥 눈물만 나오더라. 태형 씨 입장에서는 진짜 당황스러웠겠지. 여주가 탄식하자, 태현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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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당황스러웠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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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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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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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날 기억 못 해.

태현이 그와 동시에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선 두 눈만 꿈뻑꿈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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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이제 만날 수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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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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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아, 술 당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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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오늘 하는 과음은 합법적이야, 그치?

평소 여주의 건강을 위해 음주마저 제지하던 태현도 이번만큼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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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아, 근데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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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집에 가서 마실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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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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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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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운전은 누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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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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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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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당당한 거 봐라. 언제 내가 해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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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그래~ 안 해줘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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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주

음주운전 단속 걸리고 벌금 좀 내면 되지, 뭐-

태현이 들으라는 듯이 말하는데, 태현 입장에서는 어이 없는 상황.

하다 못해 알겠다며 수긍해줬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이때까지만 해도 여주는 몰랐겠지.

운명이라는 게 생각보다 꽤 끈질기다는 걸.

곧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