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예뻐해 주세요_
Episode 41. 운명을 깨뜨려 볼게요



운명이라는 게 생각보다 끈질기다는걸.



"나 예뻐해 주세요_" _41화



09:22 PM

한참 동안을 차를 타고 달려 도착한 구석진 곳에 위치하는 펍.

저녁도 못 먹었으니 끼니를 때울 겸, 알코올도 곁들일 겸- 이곳으로 오게 된 둘은 창가 쪽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김태현
…차를 너무 오래 탔더니 멀미를 하나-.

제 가슴팍을 툭툭 친 태현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속이 왜 이렇게 안 좋지.


백여주
요정도 멀미를 하나 보네_

태현을 빤히 보던 여주는, 직원이 가져온 메뉴판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백여주
…뭐 시킬까?


김태현
나는 양식 아무거나.


백여주
스테이크 괜찮아?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인 태현. 여주는 알겠다며 주문을 했고, 이내 메뉴판을 들고 가는 직원이었다.


김태현
오늘 기념식은, 잘 끝냈고?


백여주
…아마 잘 끝내셨겠지_


김태현
……뭐야, 너도 갔잖아.


백여주
잠깐 부모님 얼굴만 뵙고 나왔어.


백여주
엄마가 나 컨디션 안 좋아 보인다고… 얼른 들어가래.

탁자에 놓인 얼음물을 마시던 태현은 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멈칫, 무언가 떠올라 여주 유심히 바라봤고.


김태현
……김태형은, 언제 만난 거야?


백여주
…….

아까, 막 도착했을 때. 조심스레 입을 연 여주는 애꿎은 물 잔만 만지작거리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백여주
…주차를 하다만 것 같아서-ㅎ

차 창문에 끼워져 있는 전화번호로 바로 전화했지. 착잡한 미소를 짓더니, 여주는 이내 표정을 굳히는데….


백여주
……잠깐만. 전화번호가, 있겠네...?

알아채도 정말 뒤늦게 알아챈 여주였다. 어떻게든 연락을 다시 할 수 있겠다 싶어 바로 핸드폰을 꺼냈고.

전원을 켜면… 역시나 통화 기록에 남아있는 핸드폰 번호.


김태현
백여주 바보.

태현 또한 여주와 같은 마음이었다. 잘 됐다 싶었지. 재회할 수 있는 조금의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는 거니까.

그동안 여주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아니까_ 두 사람이 얼른 만나,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김태현
그걸 이제 안 거야?


백여주
…너도 몰랐잖아.


김태현
맞아. 나도 방금 알았어.

으이그... 태현을 향해 미간 한 번 찌푸려서 보란 듯이 토라진 표정 지은 여주는, 좀처럼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뗄 생각이 없었다.

통화 버튼을 가만히 바라보며_ 희망이 조금은 생겼다는 기쁨에, 입꼬리에는 서서히 옅은 미소가 스며들었고.


백여주
…….

"음식 나왔습니다-."

이때 마침 다가온 직원에, 들키면 안 될 걸 들고 있던 사람처럼 급히 휴대폰을 가방 안으로 밀어넣는 여주였다.

그런 여주 보고 있던 태현은 알게 모르게 웃고 있었다.



김태현
김태형 만약에 여자친구 있으면 어떡하지.

이 말 할 생각에.


백여주
……….


백여주
……좀 마음 아프겠네.


김태현
그럼 포기할 거야?


백여주
…원하는 대답이 뭔데-.

태현의 짓궂은 장난조차도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태연하게 다 받아줬다.

사실 속으론 정말 그러면 어떡할까, 심장이 요동치는 중이었고.


백여주
…….


백여주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그냥 먹기나 해...!



···


10:33 PM

저녁을 알코올과 같이 먹어서인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마침 허리 부분이 고무줄 밴드도 아니고, 단추로 잠그는 긴 치마여서 한계다 싶었지.


백여주
…간만에 과식했네...


김태현
나도.


김태현
소화 좀 시키고 집 가자.


백여주
그래-.


백여주
나 잠깐 밖에 바람 좀 쐬고 올게.

알았다는 듯이 눈 지그시 감았다 뜬 태현이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쌀쌀하니까 일찍 들어와, 감기 걸려.


백여주
네에-

그럼 이런 걱정이 한 두번 아니라는 듯 웃으며 대답한 여주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곳을 벗어났고.




백여주
…비 오네?

식당 출입문을 열자마자 쏴아아- 제 앞으로 불어오는 비바람에 화들짝, 놀란 여주가 우선 가게 천막 밑에 섰다.

아무 생각 없이 빗방울들이 길바닥에 닿아, 톡톡 튀는 모습을 가만 지켜보던 여주.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건물과 건물 사이 작은 틈의 길이 보여 주저 없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림막이 없어서 건물 사이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옷이 다 젖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가만히 벽에 등을 기댄 여주.

적당히 정신도 알딸딸해진 데다가, 기분 좋을 정도로만 마신 여주는 이유 없이 지그시 웃음을 지었다.


백여주
…….


백여주
김태형…….


백여주
김태혀엉…….


지었던 미소도 잠시, 금세 입꼬리가 쳐진 여주는 급기야 손으로 무릎을 감싸 모으고 주저앉았지만.


백여주
…….


백여주
…누가 이런 모습으로 보고 싶대.


백여주
김태형 보고 싶댔지...


백여주
날 기억 못 하는 김태형 보고 싶단 말 아니었는데......


눈가에 울음이 차오르는 것도 머지않아, 점차 여주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눈물이었다.

이름만 꺼내도 보고 싶고, 이름만 꺼내도 울음부터 나오는_

생각만 해도 그리워지는 존재.


그런 존재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족할 줄 알았는데, 그에게는 내 기억이 없다면.

충분히 지칠 법도 하고, 마음이 미어질 법도 한 거지.


그칠 줄을 모르고 엉엉 소리 내어 운 여주는 제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과 빗방울을 동시에 닦아내기 바빴다.

다행히 빗줄기가 거세어, 지나가던 사람들이 여주의 소리를 아무나 듣지는 못했지만.


백여주
……지짜 보고싶은데...


백여주
……지짜 많이 보고 싶었는데...


백여주
……왜 못 보게 해... 왜.

왜 못 봐... 내 운명은 왜 이것밖에 못 돼... 한참을 그렇게 목 놓아 울던 여주.

자기도 목이 슬슬 아파오는지, 켁켁 연이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백여주
…아야야...


마음 놓고 울지도 못하게 되니까, 갑자기 밀려오는 서러움에 이 세상 불공평하다고 소리치려는 찰나-


백여주
…….

제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그늘에,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챈 여주가 고개를 들어 우산이 있는 걸 확인했다.

게다가 제 시야를 가리는 실루엣까지.



백여주
……아...


백여주
……아니야, 나 사실 운 거 아니고...


백여주
그냥 잠깐 생각 하고 있었어... 정말이야아...


백여주
금방 들어가려고 했는데……

태현인 줄 알고 열심히 변명을 하는데… 이상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 사람.

눈물을 닦다 말고 고개를 들어봤지만, 어두운 탓에 누군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백여주
…….


백여주
너 김태현 아니야...?

여주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묵묵부답인 그.

이제서야 겨우 눈물을 그친 여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한 발 늦게 알게 된 누군가의 정체.


백여주
......

믿기 힘들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눈을 뜬 여주. 아무리 다시 봐도, 제 앞에 서있는 남자의 정체를 믿기 힘들었다.


백여주
…뭐예요…….


백여주
…김태형 씨가 여기 왜......





김태형
…….


갑작스레 내 눈 앞에 나타난 이 남자는 나를 모른다.


그의 눈빛이 이미 말해주고 있다. 단순히 낮에 마주쳤던 사람이라, 거슬렸을 뿐이라고.

거슬려서, 잠깐 우산만 씌워준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왜 자꾸 작은 기대를 하게 되는지.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이 남자가 뭐라 말하면, 우리는 다신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정말 이게 우리의 끝일까 봐.

이 남자가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아주기를 바랐다.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백여주
……미안해요, 지금은 잊어줘요…….

하늘이 우리 운명을 갈라놓은 거라면,

신이 우리의 끝을 매번 새드 엔딩으로 만든 거라면,

시간이 우리를 서로 그리워하게 만든 거라면_


나는 그 운명을 깨뜨려 보려고요.



점차 태형에게로 가까워진 여주는 천천히 까치발을 들어 그에게 입을 맞췄다.

혹시나 이게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은 마음에_ 그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_ 그의 목을 제 팔을 꼭 감싼 채로.




드디어 41화를 올렸다. 드디어. 호우.

여러분 잘 지내셨나요 ㅠㅠㅠㅠㅠㅠ 진짜 오랜만입니다요 ㅠㅠㅠㅠㅠㅠ 보고 싶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