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예뻐해 주세요_
Episode 42. 보고 싶었어




백여주
……미안해요, 지금은 잊어줘요…….



"나 예뻐해 주세요_" _42화



두려웠다. 이 시간이 끝나면, 정말 모든 게 끝나 있을 것 같아서. 이 남자가 날 뭐라고 생각할 지… 생각만 해도 겁이 나서.

숨이 점차 가빠졌지만, 지금 멀어지기엔 내가 이 남자를 두 눈 뜨고 볼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잡다한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동안….


입술은 서로에게 얽힌 채로, 두 눈을 뜨고 나서야 알아챘다. 그의 두 팔이 내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는걸.


백여주
…….

의아스럽긴 했다. 내가 일방적으로 시작한 키스에, 이 남자마저 눈을 감은 채 나에게 맞춰준다는 게.

그렇게 내가 흐름을 멈추고, 머리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하니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작스레 그가 두 눈을 떴다.




전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사람 홀리는 눈빛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지. 얼음처럼 굳어버린 나를 보며, 멀어진 그.

제 입술을 혀로 한 번 훑더니, 얼마 머지 않은 거리에서 나에게 낮게 속삭였다. 살짝 물기 젖은 목소리로.




김태형
……보고 싶었어.

심장이 내려 앉는 기분이었다. 이중적인 의미로.

오늘 몇 시간 동안 이 남자를 만난 이후로 난, 끝도 없는 설움에 빠져들어가는 기분이었더라면

지금은 그 설움을 잊기 위한 당장의 희망이 내 눈앞에 있다는… 안도감.


1분 1초 흘러가는 것조차 너무 느리게 느껴질 정도로,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이 어둠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아무 말 없이 눈에 담았다.

점차 서로의 눈가에 고인 액체가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비쳐 반짝이는 것조차도.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 누구도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냥… 말 없이 서로를 이해하는 지금.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서로를 눈에 담을 수 있음에 이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보고 싶었어, 한 마디. 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금 시야가 눈물에 가려 흐려질 때 즈음, 내 시야를 완전히 가린 그는 다시금 내게 입을 진하게 맞춰왔다.

우산을 언제 놓은 건지, 어느새 그도 빗물에 적셔져갔지만- 그에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았다.

그와 함께 하는 이 순간이, 꿈만 같았다.



#태형의 심판 당일.


태형이 대답하기만을 가만히 기다리던 정국.


김태형
환생… 안 할 겁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뜻밖의 대답에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정국은 최대한 침착하게 왜?를 연이어 물었지.


김태형
……여주가 행복했으면 해서요.


전정국
그 여자가 행복한 건, 너랑 함께일 때잖아.


김태형
…….



전정국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거야?


김태형
그런 거 없습니다.

조금 더 뜸을 들인 태형이 말했다.


이번 생도, 저번 생도_ 백여주라는 사람은 김태형이라는 존재 하나에 묶여 인생을 살았어요. 단 한 번도 백여주 혼자서 행복해진 적이 없잖아.

그냥 나 하나는 백여주에게 꿈같은 존재로도 충분해요. 난 여주가 나 없이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착잡한 표정의 그는 간신히 떨리는 목소리를 붙잡았다.



전정국
……그래, 네 말도 틀린 말은 아니야.


전정국
그래도 난 네 선택이 이해가 안 가.


김태형
…….

태형을 똑바로 응시한 정국은 말을 이어갔다.


백여주가 너 하나에 인생을 묶여왔다고 생각하지 마. 묶여온 게 아니라, 백여주는 제 인생에서 최선의 행복을 택한 거야. 최선의 행복이 김태형_ 너였고.

여태 백여주랑 행복했잖아, 너도. 근데 허무하게 너만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겠다고? 그럼 여기 혼자 남은 네 애인은 어쩌고.

네 애인이 홀로 남아 평생 너 하나를 그리워하다 죽는 게 소원이 아닌 이상, 다시 생각해. 네가 방금 한 선택은 어리석은 거야.


네가 없는데 백여주가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어.



···

#다시, 지금.

상당히 갑작스러웠지만, 그만큼 진득했던 재회를 끝으로- 급하게 비를 피하려 근처 모텔에서 방 하나 잡은 두 사람.

보송보송하게 씻고 나온 여주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나오자, 침대에 앉아있던 태형이 바로 여주에게로 다가가 머리 말려준다.


백여주
……괜찮은데.


김태형
…….

아무 말 없이 수건으로 여주 머리 꼭 짜주는 태형이에, 여주는 그저 가만히 서서 눈알만 데구루루 굴리는 중.

아까 일도 생각나고… 그리고 뭔가 잊었다 싶었는데…


백여주
……아, 김태현.

익숙한 이름에, 태형도 손짓을 멈추곤 거울 속의 여주와 눈을 마주했다. 형은 왜.


백여주
같이 저녁 먹고 있었는데...

그제서야 태현이 떠오른 여주는 급히 화장대에 있는 핸드폰을 드는데… 야속하게도 배터리가 방전된 핸드폰.


백여주
어떡하죠… 다시 갔다 와야 할 것 같은,


김태형
아마 갔을 거야.


영문 모르겠다는 듯이 여주가 뒤를 돌아, 태형을 마주 보고서 고개를 들자 수건 의자에 걸어두고 여주 안는 태형이었다.

마치 짜여진 상황처럼 덩달아 자연스레 태형의 허리를 감싸 안는 여주였고.


백여주
갔다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김태형
요정 세계로 호출당했을 거야.

인간과 똑같이 생긴 요정이 같은 장소에 이 세계에 있으면… 분명 화젯거리가 될 테니까. 다정하게 여주의 머리를 넘겨주며 속삭이는 그였다.


백여주
인간...

그러네, 이제 너도 사람이네. 여주가 맑은 웃음을 지어 보이자, 덩달아 미소 짓는 태형.


김태형
갑자기 말 놓네-.


백여주
그러면 좀 어때요.

짓궂은 표정 보이면, 태형은 이때다 싶어 여주에게 짧게 뽀뽀했다. 그럼 여주는 어째 1년 전이랑 똑같냐면서 웃음 터뜨리고.


김태형
1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귀여운 것도 똑같고.


백여주
그건 좀...

나도 이제 스물일곱인데. 귀엽다는 말에 낯가리는 여주 표정 볼 때면 더 놀리고 싶어진 태형이가 약하게 여주 볼 꼬집었다.



백여주
…살짝 아프니까, 꿈은 아닌가 봐요.


김태형
꿈 같아?


백여주
조금_

이제 막 태형 씨 기억이 희미해져가고 있었거든요. 그냥 조금 긴 꿈이었던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인가.

근데 마침 나타나줬어요, 이 타이밍을 어떻게 알고.


김태형
…나 좀 오래 걸렸지.


백여주
많이.

단호하게 말하는 여주에, 바람 빠지듯 웃은 태형이가 한 번 더 입 맞췄다. 귀여워 죽는 모양이지, 아주.


김태형
……고마워.


김태형
나 기다려줘서.



백여주
……맞아. 나한테 고마워 해요-.


백여주
죽었는지_ 살았는지도 모르는 당신을 꼬박 1년을 기다렸잖아요, 나.

내심 잘했다고 칭찬해 주길 바랐는데… 누가 김태형 아니랄까 봐, 말 대신 행동이 먼저.

다시금 뽀뽀 세례 퍼붓기 시작했다. 그동안 못 보고, 못 했던 걸 한꺼번에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주가 최대한 피해보려(?) 상체 뒤로 젖히기 시작하면, 넘어질까봐 또 등은 받쳐주면서 멈추진 않는.


백여주
…잠깐만 잠깐만…!


백여주
뽀뽀 금지......!


김태형
왜-.


백여주
그 전에 우리 상황 정리…부터 해요.


백여주
그동안 태형 씨 뭐 하고 지냈는지…


백여주
내 앞에는 어떻게 나타난 건지…


백여주
아까 낮에도 날 기억하고 있었던 건지…


기억하고 있었던 거면… 그땐 왜 날 모르는 척 했는지.

나 너무 궁금한데.





++여러분의 소원을 들어드렸습니다. 아임 망개지니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