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미워해주세요
Episode. 나를 위한 핑계


나를 미워해주세요_단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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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 으음... "


지여주
" 원우 씨 정신이 들어요?! "


전원우
" 너... "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원우 씨가 정신을 차렸다 그 후 안박사님이 와서 수면제는 더 이상 안된다고 한바탕 으름장을 놓고 가시고 창밖을 바라보는 그에게 식판을 내밀었다


지여주
" 일단 먹어요 "


전원우
" 입맛 없어, 안 먹어 "


지여주
" 떠먹여줘요? "

수저와 젓가락을 들고 밥을 퍼 위에 멸치볶음을 올려 입에 갖다 대주자 그제야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벌려 밥을 먹기 시작했다 뾰로통한 얼굴이 왠지 귀엽다고 생각했다면 이상한 걸까

앞으로 나는 당신을 지킬 수 있다면 뭐든 할 생각이에요


지여주
" 이렇게 잘 먹으면서 왜 안 먹어요 안 먹길. "


전원우
" ..안 가냐 너. "


지여주
" 안 가요 "

이제 아무 데도 안 가요 곁에 있을 거예요

당신을 위해서 아니, 어쩌면 나를 위해서 당신 곁에 남겠다고 결심했다 그래 솔직히 이건 온전히 나를 위한 그리고 내 마음을 위한 핑계였다 아마 당신은 끔찍해할 핑계.


전원우
" 너..진짜 안 가냐? "


지여주
" 안 간다니까요? 속고만 살았나 얼른 누워요 "


전원우
" ..자게 나가. "


지여주
" 알았어요..잘 자요. "

다음날 퇴원 후 원우 씨와 함께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신혼집으로 돌아왔다 신기하게도 내가 쓰던 모든 물건이 그대로 제자리에 있어 내심 놀랐다

왜 이러는 걸까 혹시 나, 기대라도 하는 걸까.


지여주
" 그딴 거..하면 안 되는 거잖아... "

자꾸 기대를 품고 혼자 설레발치는 심장을 붙잡았다 나는 그런 기대를 할 자격이 없는데 자꾸 기대하는 심장이 미워졌다 무슨 염치로 기대라는 걸 할까 나는 그 사람의 고통과 다르지 않은데

조용히 죽을 끓이기 위해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찾아 다듬었다 먹기라도 해주는 게, 안 내 쫓는 게 어디냐 다행스러웠다 사실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서 이런 거라도 하는 중이었다

핑곗거리가, 그를 마주 볼 핑곗거리가 생기니까.


전원우
" 으윽...싫어...하지 마..아니야 안돼!!! "


지여주
" 원우 씨, 원우 씨!!! "


전원우
" 아. "

알고는 있었다 그 수많은 약들과 수면제를 발견한 그때부터 원우 씨의 상처가 깊고 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그를 그리고 그의 마음을 좀 먹고 있는지는 몰랐다

처음 마주한 괴로운 표정을 한 원우 씨의 발작에 놀라서 원우 씨를 흔들어 깨웠다

내 아버지의 죄가 이렇게까지 당신을 죽이고 있었네요..


전원우
" ...나가. "


지여주
" 원우 씨, 괜찮아요? 이거, "


쨍그랑-!! 철퍽-!!


전원우
" 나가, 나가라고!!! 나가!!!!! "

절규하듯 소리치는 원우 씨의 목소리에 엎어져 깨진 그릇은 치울 생각도 못 한 채 방에서 서둘러 나왔다

얼마나..얼마나 괴로웠을까..얼마나 무서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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