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만 나 재워줘요,
하룻밤만 나 재워줘요, | 52화




박여주
…….


박여주
무슨 말을 더 하려나.


전정국
…그러게요.

_한동안 어떠한 대화도 주고받지 않은 두 사람. 끝내 먼저 입을 연 건 여주였다.


박여주
……내가 가지 말라 해도, 갈 거죠?


전정국
……어쩔 수 없으니까.

_늘 정국이 한진을 만나러 갈 때면, 먼저 제지하던 여주였는데 이번은 다르게 순순히 허락한다. 다녀와요, 조심히.


전정국
…그럴게요.


박여주
나 정국 씨 그냥 보내주는 거 아니에요.


박여주
나도 충분히 걱정되는데…



박여주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아서 그래요.

_김한진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두 사람이 단둘이서 만날 수 있는 것도. 그의 비리를 알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여주가 건네는 말이었다.


박여주
…제발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어요.

_말은 무덤덤하게 해도, 그 누구보다 떨고 있는 여주임을 진작에 알아차린 정국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안았다.


박여주
…위험할 것 같으면 그냥 와요.

_가지 않아도 돼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국을 붙잡아 보지만, 그는 그럴 마음이 없고.

_이번을 통해 약점이라도 하나 더, 뭐라도 하나 더 잡아오자는 마음이 확고한 듯한 정국이었다.


전정국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전정국
…늘 그래왔듯이.






_정국이가 여주의 집을 나선 후, 혼자 남게 된 여주는 아까 기자가 전화를 안 받았던 게 떠올라 다시금 핸드폰을 꺼냈다.

_그리고 이번에도 걸어보는데…


박여주
…왜 전화를 안 받고 그러는 거야, 불안하게.

_역시나 현우에게 건 전화도, 지훈에게 건 전화도 그 어떠한 응답은 없었다.

_설마 우릴 배신했을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자꾸만 스치는 여주였지만,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고개만 젓기를 반복하고.


_그래도 여전히 불안한 마음에, 제 동생인 지민에게라도 전화를 걸어보는 여주였다. 너는 받겠지….


박여주
…….

_하지만 여주의 예상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이어지는 통화 연결음. 도무지 지민의 목소리가 들릴 기미가 안 보였다.


박여주
…뭐야, 다들. 왜 전화를 안 받아….

_계속해서 자리에 앉았다 일어났다만 반복한 여주. 지민에게 전화를 네 번 정도 걸어보려는 참이었을까,


_띵동, 밖에서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에 인터폰을 볼 새도 없이 현관으로 뛰어가는 여주였다.




_한 편, 마침내 한진의 사무실이자 제 소속사였던 이곳에 발을 들인 정국.

_망설임 하나 없이 '대표실'이라 적힌 무게감 있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텅 비어있는 공간.

_이상하기도 했지만, 우선 화장실이라도 갔나 보다 생각하며 소파에 앉은 정국은 혹시 몰라 꺼내온 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_걱정하고 있을 여주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거는데…



전정국
…….

_그에게 들려오는 건 길고 긴 연결음뿐, 여주의 목소리는 들어볼 수조차 없었다.


_여기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정국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_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번에 여주를 통해 받았던 지민의 전화번호로도 전화를 해보지만… 묵묵부답.


전정국
…….

_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비어있는 한진의 사무실을 응시하던 정국.

_여주의 집으로도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건,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_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여주가 이 상황에 잠에 들었을 리는 없고, 아무리 뭘 하느라 바빠도 자신의 전화를 안 받을 리는 없는데…


_여기서 스치는 불길한 생각.


_한진의 목적은 애초에 정국이 아니라,

_여주였다면.


_정국을 부른 게 아니라, 정국이 여주의 곁에 없는 틈을 타

_한진이 그걸 노리고 여주에게 접근해 그녀를 정국의 약점으로 삼으려 하는 거라면.




전정국
……김한진 이 미친 새끼가.

_낮게 욕을 읊조린 정국이가 사무실을 나서려 하는데… 밖에서 문을 잠그는 듯한 인기척이 들리고.

_한발 늦은 정국이가 문을 힘껏 제 쪽으로 잡아당겨보지만, 끄떡없는 문.

_문 열라고 소리친 그는 대책 없이 마구잡이로 문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모든 걸 알아버린 이상, 그의 눈에는 초점이 잡혀있을 리 없었다.


_어느덧 땀이 흥건해져 그의 머리를 적시고, 목을 타고 흐른 땀줄기가 그의 옷을 물들여 갈 때 즈음

_이곳 어디에 숨어있었던 건지, 그의 뒤에서 말을 걸어오는 이가 있었음을.


"…이미 늦었습니다, 당신은."


전정국
…누구야, 너.


"김한진의 덫에 걸려드신 거예요."

"평생… 김한진을 이겨내지 못할 겁니다."


전정국
너 누군데 나한테 이딴 소릴 지껄여.

_이미 해탈했다는 듯, 헛웃음을 지은 의문의 남성은 뜸을 들이더니 이내 말했다.


"김한진 그 개자식의 비서 되는 사람입니다."


"김한진이 오늘 이 건물을 불태울 거라 했습니다. 자기 비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여기 끌어들여서요."

"…당신뿐만이 아니라 당신의 최측근이 다 이 건물에 있습니다, 지금."


"김한진을 배신하고 당신에게 간 기자들도…,"

"당신의 애인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