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멘스쿠나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



김여주
... 이게, 뭐예요?

나와 민 부장님 사이의 책상에는 자그마한 검은 칼이 놓여있었다. 무광의 칼날, 손가락 모양으로 파인 손잡이, 뒤틀려있는 칼의 단면. 설마.



김여주
부장님. 이건 서바이벌 나이프잖아요.


민윤기
어떻게, 알구는 있네.


김여주
... 이걸 왜 저한테.

부장님은 마른세수를 했다. 어수선하게 흐리는 말꼬리에 궁색한 미소는 괜히 나까지 떨게 했다.

정리해고? 아니면, 나한테 해코지하려고?

대체 칼을 어떻게 들고 탄 거지? 탑승 수속에 오류가 있었던 건가, 아니면 정말... 회사에서 나를 해치려고 수를 쓴 건가?


김여주
제,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민윤기
... 무얼 말하는 건지 잘,


김여주
그러니까, 저어기, 저를 해치려고 칼을 들고 오신 건지 여쭤봤습니다.

나 집에 안전하게 가고 싶은데. 공포심이 남몰래 고개를 들었다. 손을 떨고 있는데 부장님이 한숨을 쉰다.

착잡한 말투가 평소보다 훨씬 취한 것 같다.


민윤기
... 피오니어 본사에서는 료멘스쿠나 프로젝트를 우리 팀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게 그 내용이야.


민윤기
료멘스쿠나 프로젝트는...

밭은 숨을 들이쉰다.


민윤기
서로 무기를 들구... 부서의 팀원들을 찌르구, 다치구. 개중에는 죽어나가는 사람들두 있어야 하는 그런 프로젝트야.


김여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민윤기
나두 이런 지시는 응하구 싶지 않습니다. 그냥... 그냥 내려온 대로 하는 것 뿐이지.

말도 안 돼. 충격에 벌어진 입에서 비탄이 흘렀다. 민 부장님은 차마 내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있다. 재차,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민윤기
김여주 대리가 이 공지를 듣는 마지막 실험 후보다. 여주 씨는 사람들을 다, 죽여버리고 혼자... 살아야 해.


김여주
그러니까, 제가, 사람을 죽여요? 에이, 저 무서운 거 좋아해서 그런 농담에는 꿈쩍도 안 하거든요.


김여주
... 표정이, 왜 그러세요? 죽여야 된다구요? 제가 사람을?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렸을 적에 꾸었던 꿈이 있었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을,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눈을 마주친 상태로 칼을 박아넣으며...


김여주
... 말도 안 된다. 진짜. 부장님, 그러지 마세요...

그 악몽을 반복해야 한다. 다만 여기는 정말이야. 나는 나밖에 없어. 나는 나를 공격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차없이...

... 아, 더럽게 끔찍하다.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았는데.


김여주
진심이신가 보네. 저는요, 그딴 실험에 응한다고 한 적 없어요. 입사할 때도 그런 말씀 안 하셨잖아요.


민윤기
대표님의 지시야.


김여주
그래도 그건 너무...

떨리기 시작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감당하기 힘들 만큼 잔뜩 겁을 먹어서 부장님이 어깨를 두드린 손에도 소스라쳤다.


민윤기
여주 씨.


김여주
... 그렇게 친절하게 부르지 마세요.

전체 부서가 함께하는 살인 실험, 그렇다는 건.


김여주
눈 마주치지 마세요. 안타까운 표정도 짓지 말아요. 어차피 때 되면 죽이려고 할 거면서.


민윤기
김여주 대리. 그게 지금... 상사한테 할 말입니까?


김여주
당장 섬에 떨어지자마자 서바이벌 게임을 해야 할 참인데 상사고 뭐고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김여주
저는 살고 싶어요. 악착같이 살고 싶다고요.


김여주
이런 프로젝트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절대 저만 죽지는 않을 거예요. 아시겠어요?

나는 냉큼 서바이벌 나이프를 칼집에 넣고, 코트 주머니에 끼워두었다. 민 부장님은 썩 편치 못한 표정으로 일어서려는 나를 올려다본다.

슬 어처구니가 없어오는 게 느껴졌다. 참나, 방금 전까지 부서원들을 다 죽여버리라던 사람 맞으신지?


김여주
왜요.


민윤기
여주 씨는 참 웃긴 소리를 하네.


김여주
그게... 무슨 말이죠?


민윤기
잘 들어요. 난 여주 씨를 죽이구 싶어두 못 죽여. 여주 씨 뿐만이 아니야. 그게 누구든지 난... 절대 못 죽인다구요.


김여주
... 지금 저를 방심시키시는 건가요?


민윤기
방심이라...

부장님은 혀를 차며 쓰게 웃었다. 간간히 그런 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아니, 아니다.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

곧, 내가 문손잡이를 돌려 나가려고 하자 그의 낮고 조용한 말이 내 정신을 울렸다.



민윤기
방심은 내가 하고 있지.

작은 휴게실을 나온 후, 머리라도 식힐 겸 냉수를 마시러 공용 탕비실에 들렀다.


전정국
어.


김여주
어... 어!

꽤 놀랐지만, 탕비실에는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정국 씨가 고개를 까딱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체했다.

그의 손에는 두 개 정도의 작은 알약이 들려 있다. 그리고 물을 받는 컵.


김여주
뭐예요, 그거?


전정국
... 졸려서.


김여주
약 먹어야 잠드는 체질인가 봐요.


전정국
뭐, 가끔입니다.

정국 씨가 입 안에 약을 털어넣고 그것을 삼킨다. 수면제 들고 왔구나, 남에게 내게는 없는 무기가 하나 더 있는 것 같아 무서웠다.


김여주
아, 미쳤나.


전정국
예?


김여주
아니, 그, 저한테 한 말이에요. 저한테.

잠이 안 와서 약이라도 먹고 자겠다는 사람한테 이게 무슨 헛소리람, 불면증 때문에 먹는 약인데 무기는 무슨 무기...

나도 잠을 좀 덜 잤는가봐.


김여주
안녕히 주무세요! 미야도에서 뵐게요.


전정국
그쪽도.

급한 목례와 함께 정국 씨가 탕비실을 나섰다. 잔뜩 겁먹어 굳어있던 몸이 살짝은 풀어진다.

그런데, 호칭 한 번.


김여주
... 같은 대리면서, 그쪽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