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게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45, 운명 (2)


이미 한 바탕 전투가 있던 것 같았다.

주변의 혈흔은 누구의 것인지조차 모를 만큼 한껏 흩뿌려져 있었고,

상처 또한 가늠할 수 없었다.


은우
...

은우는 얼굴의 절반 가량이 피로 물들어 한 쪽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으며,

베인 상처와는 관계없이 어딘가 크게 다친 것 처럼 다리를 절었다.


승철
....

확실히 검술 실력은 승철이 우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으나,

승철 또한 상처를 입어 한쪽 팔에 계속해서 피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은우
.. 폐하.


승철
...

승철이 은우를 응시했다.

은우는 숨을 가쁘게 쉬었다.


은우
외람된 말씀이지만,



은우
폐하, 께서 죽어버렸으면, 하옵니다.

은우가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피는 더해져갔다.


승철
....

승철은 그런 은우를 흘겨보다,

이내 금방 숨이 끊어질거라 판단하곤 뒤돌아 채향성으로 향했다.

승철이 떠난 자리엔 드러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는 은우가 있었다.


은우
... 참 많은 일이 있었죠.

은우는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은우
.. 정한 폐하는,



은우
지금쯤 어떤 모습이실지 •••

은우는 희미한 시야 그대로 푸른 하늘을 응시했다.


순영
... 내가 이대로 물러설 줄 알았다면,


순영
완전 잘못 판단한 거야.

순간 순영의 눈이 번뜩여, 아차 싶을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순영은 순식간에 달려들어 여주의 허리춤을 베었고,

그것은 정말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순영
근화는, 단독으로 행동하지 않아.


순영
혼자 뒤지진 않는다고.


여주
...!

고통에 여주가 허리춤을 부여잡으니,

검을 쥔 원우의 손에 힘이 한껏 들어가기 시작했다.



원우
.... 권순영.

원우는 주변에 있던 날카로운 바위 하나를 집어,

그대로 순영의 머리를 향해 강하게 던졌다.


순영
윽!

거친 바위가 제대로 할퀴고 지나간 듯, 돌을 맞은 부근에서 피가 베어나오기 시작했다.


순영
무슨 ...

순영이 원우를 한껏 노려보려 했지만,


원우
...

이미 원우의 눈동자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분노에 휩싸여, 억눌리는 것만 같아 시선을 피해버리고 말았다.

그 사이, 한솔은 여주가 베인 허리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원우
야.

원우가 순영, 그리고 지훈을 불렀다.


원우
안 꺼져?


순영
....

순영이 인상을 찌푸리며 쓰러져있는 지수를 이끌어 가려고 하자, 지훈이 말했다.


장병 이지훈
내려놔.


장병 이지훈
그 새끼 죽었어.

순영의 눈동자가 꽤 흔들렸다.

입을 꽉 다물며, 순영은 지수를 놓고 근화로 향했다.


원우
...

마침내 그들이 채향성에서 보이지 않게 되자,


원우
괜찮아, 여주야?

당연하다는 듯 원우는 여주를 걱정했다.


여주
응 ..


한솔
상처가 깊지는 않아서 다행이에요.


한솔
허리는 쓰지 말아요..


여주
그럴게, 고마워.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