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나 좀 살려줘.

나 좀 살려줘. 날 가만히 냅둬줘.

한여주

"우으음...안녕히 주무셨어요?"

여주 엄마

"어. 잘잤니?"

여주 엄마

"엄마 지금 나가야 되니까 냉장고에 있는 반찬 꺼내서 아침 꼭 먹어. 비 오니까 우산 챙겨가고, 알았지?"

한여주

"네, 잘다녀오세요!"

엄마는 내가 일어나자마자 짧은 인사를 건낸 뒤, 곧바로 일을 하러 집을 떠났다.

한여주

"...밥 먹기 싫은데.."

엄마가 아침을 꼭 먹으라고 당부했으나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입맛도 별로 없었고...

한여주

"에이, 몰라."

나는 밥을 먹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닥...땡기지 않았다.

한여주

"에휴..학교나 가야지..."

오늘도 지루하고 반복적인 하루가 시작됬다.

° ° °

##고등학교

드디어 학교에 왔다. 교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교실 문을 열기 겁났다.

드르륵-

결국 문을 열었다. 이게 한두 번인가...익숙해져야지...

들어오니 아이들이 날 '저 새끼가 여길 왜 와?'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사실 무서웠다. 너무 겁이 났다. 하지만 신경쓰지 않으려 노력하며 태연하게 가방을 자리에 놓았다.

한여주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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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연

"오? 왕따! 일찍왔다?"

아, 맞다. 내가 얘기 안 했구나. 나 왕딴거.

한여주

"어..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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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희현

"채연아~ 나 우유 먹기 싫어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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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연

"잔말말고 먹어. 그 조그만 키로 어쩌려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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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희현

"정채연 진짜 나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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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연

"그래 나 나쁘다. 어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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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희현

"치...진짜 흰우유 극혐..."

희현은 그 말을 하며 여주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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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희현

"어머~ 넌 나보다 작구나? 우유 많이 먹고 키커ㅋ"

왜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주르륵-' 나의 머리엔 가차없이 우유가 흘렀다.

한여주

"........."

눈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참으려 해도 참아지지 않았다. 이 상황이 너무 싫었다.

나도 모르게 학교를 나왔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간 곳.

강가.

투둑- 투둑-

한여주

"어? 비다..."

하늘마저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한여주

"오랜만에 오빠 보고 싶다..."

나는 주머니에서 어느 한 종이를 꺼냈다.

아, 이 종이가 뭐냐고? 따돌림 때문에 자살한 내 친오빠의 유언장.

오빠가 너무 보고싶다.

항상 내 앞에선 밝았던 오빠가 너무 보고 싶다.

항상 가족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감추고 웃었던 우리 오빠가 너무 보고 싶다.

한여주

"....씨발"

사실 한땐 오빠를 원망했다.

아빠가 엄마와 싸운 뒤 집을 나간 것도, 내가 따돌림을 당한 것도, 전학을 가도 '자살한 오빠의 동생'이란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것도 다 오빠의 탓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날두고 떠난 그가 너무 미웠다.

한여주

"........"

아무 말 없이 물을 손으로 움켜줬다.

한여주

"으..차가워..."

비오는 날엔 물이 불어나서 위험하다는 엄마의 말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문득, 오빠가 이 물에 빠져 차가운 시체로 건져진 몇 년전 그날이 생각이 났다.

인간의 무능함을 처음 깨달았던 그 날.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어서 나 자신을 원망했던 그 날...

오빠가 고2에서 고3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 날이였지..?

구급대원

"빨리 이송해!!!!"

여주 엄마

"윤기야아...제발 살려줘요...우리 윤기 아직 19살 밖에 안됬다고요...제발...!!!"

한여주

"윽..."

여주는 그 날의 생각만으로도 고통스러운 듯 애써 눈을 감아 그날의 기억을 지워버렸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벌떡-

여주는 서서 강가를 바라 보았다.

한여주

"엄마 있잖아요. 난...난..."

한여주

"이 세상이 너무 싫어요..."

한여주

"모든게 다 외모, 성적으로 평가되는 이 세상이... 평생 잊지 못 할 상처를 주고도 나의 존재마저 잊는 사람들이..."

한여주

"따돌림 때문에 자살한 오빠를 보고도 '오빠가 그랬으니 피해야지...' 라는 생각밖에 못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가..."

한여주

"곧 어른인데 내가 뭘할지, 뭘 하고싶은지 조차 모르겠고 나만 뒤쳐진 것 같아요..."

한여주

"나 이 세상이 너무 무서운데... 어찌할지 모르겠어..."

한여주

"가슴이 먹먹해 이 기분을 설명할 수가 없어..너무 시렵고 아파와... 난 애써 웃는데 내 마음 한 칸에선 날 지옥으로 몰아가고 있어..."

한여주

"나 좀 살려줘...제발..나 좀 가만히 냅둬줘..."

여주의 눈에선 백옥같은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한여주

"나 엄마를 봐서라도 살고 싶었는데, 나라도 보란듯이 잘 살고 싶었는데... 미안해요 나 너무 지쳤어."

여주는 덜덜 떨리는 다리로 물을 향해 점점 다가갔다.

그리고 빗소리가 물에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리던 그 순간...

풍덩-

???

"어딜..."

여주는 물에 뛰어들려 했지만 누군가에 의해 신발만 물에 빠졌다.

한여주

"...씨발..."

한여주

"왜 막아요? 대체 왜!!!! 이제 용기내서 죽겠다는데... 더는 살기 싫어서 죽겠다는데 뭐가 그리 불만인데..."

한여주

"자해하지 마라..자살하지 마라... 나한테 해준 건 아무것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간섭이 심해요?"

???

"이러지 말아요...제발..."

???은 여주의 손을 쎄게 잡았다.

한여주

"아~ 내가 참 한심하죠? 하긴...나보다 힘든 사람도 많은데...그 사람들은 다 잘 이겨내는데 난 이러니까..."

한여주

"이것밖에 안되서 미안하네요..."

민윤기 image

민윤기

"이것밖에 안되다니요...세상 모든 게 다 소중한데...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소중하고, 모든 것이 다 소중해요."

한여주

"제발..나 죽기로 마음 먹었다고...날 흔들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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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알아요...무서운거...아니, 당사자가 아니니 난 다 알순 없겠죠. 얼마나 힘든지 내가 어떻게 감히 헤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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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근데 있잖아요..."

뚜벅뚜벅- 윤기는 여주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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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이 시간만 지나면 다 행복해질 수 있어요."

한여주

"...거짓말... 당신도 다 똑같아. 희망고문과 같은 말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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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희망고문 같을 수 있어요...충분히... 근데 나 진심이예요. 내 경험 상 지금 힘들어도 나중엔 다 추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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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지금 죽을 것 처럼 힘들고 지쳐도...나중엔 다 '그땐 그랬지~' 해요... 지금 이것만...이 위기만 버텨내면 다 괜찮아지고 빛나."

한여주

"미안한데 난 그딴 거 안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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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한 번만 속는셈 치고 믿어줘요..딱 한 번만..."

한여주

"가까이 오지마요... 내 맘 변할것 같아..."

한여주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이 행동을 선택했는지 알아요? 죽는다는 게 너무 무섭고 두려운데... 생각만해도 싫은 이 생을 마감시키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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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제발..."

한여주

"지금 여기서 내가 사라지면 오빠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난 오빠가 너무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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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난 당신을 위로해주고 싶어요. 난 당신을 좋은 길로 인도하고 싶은데... 난 아직 미숙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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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힘내란 뻔한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근데 난 아직 성숙하지 않나봐요. 그동안 수고했어요. 그동안 마음 고생 많았어요."

한여주

"흐으윽...난 매일 숨죽여 울고...무시당하고 감정이 없는 것처럼 대해지는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아...나 너무 지쳤다고..."

여주는 눈물을 흘렸다. 어느새 윤기는 여주를 꽉- 안고 있었다.

한여주

"제발 날 놔줘요... 이 상태로 죽으면 행복할 것 같아. 아니, 최소 불행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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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제발 그만해요! 나도 이제 화나요. 자살은 탈출구가 아니라고..."

한여주

"미안해요. 이렇게라도 회피하고 싶었어요. 지금의 고통을 다시는 느끼기 싫어서... 근데 나 이렇게 살다간, 안 사니만 못할것 같아."

여주가 다시 강가 쪽으로 걸어가려던 그때, 여주의 다리가 풀리고 여주는 물에 채 닫기도 전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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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ㄱ...괜찮아요?!"

한여주

"흐으으..."

윤기가 여주의 이마를 짚어보자 빗물에 젖어서 그런 듯 열이 심하게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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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아...이걸 어쩌지..."

윤기는 주머니에서 여주의 폰을 꺼내 여주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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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저 지금 딸 분이 쓰러지셔가지고요... ♤♤병원에서 뵈요. 거기에 있을께요.

여주 엄마

-예? ㅇ..여주가 쓰러졌다고요?! 당장 갈께요..!!!!!

° ° °

♤♤병원

한여주

"으으..뭐지... 방금 전까지만해도 강이였는데..."

이 냄새...내 손에 꽃혀있는 링거 바늘... 아무리 생각해도 병원이였다.

한여주

"....나 살았나보네..."

여주가 옆을 보자, 여주를 걱정하며 간호하다 잠든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한여주

"살아서 너무 싫은데...엄마 보니까 좋다ㅎ..."

여주 엄마

"우으음...어? 여주 깼니?ㅎ"

한여주

"엄마...사랑해."

여주는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를 꽉 안았다.

여주 엄마

"아유 애가 참... 엄마도 여주 많이 사랑해. 여주가 내 옆에 있어서 너무 든든하고 좋다ㅎ"

몇 년 뒤

한여주

"윤기오빠! 이 꽃 봐봐! 완전 이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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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오~ 이쁘다! 물론 여주보단 아니지만ㅎ"

한여주

"에이...뭐야ㅎㅎ"

윤기오빠는 나에게 친오빠같은 존재가 되어줬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너무 힘들었는데...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너무 좋다. 힘든 시기를 버텨내고 맞이한 나의 삶이 너무 행복하다.

민윤기 image

민윤기

"여주 무슨 생각해?"

한여주

"응? 그냥 친오빠 생각..."

뭐...그렇다고 오빠를 잊은 건 아니지만...

한여주

"그래도 나 지금 너무 행복해ㅎ 내 옆에 윤기오빠가 있어서. 나에게 관심가져주는 친구들이 생겨서."

한여주

"우리 오빠랑도 이 기분을 같이 느끼고 싶다..."

너무 행복하고 좋아서 오빠의 존재를 잠시 눈감은 적 있다. 하지만 계속 떠오른다. 오빠는 멀리 있으면서도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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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여주야, 우리 햄버거 먹으러가자!"

한여주

"좋아ㅎ"

M도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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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여주야 여기. 네가 좋아하는 버거!"

한여주

"오~ 내가 좋아하는 버거가 뭔지 아네?"

어쩌면 오빠는 환생했을 수도 있다. 지금 내가 숨쉬는 공기로. 내가 신고있는 이 신발로. 밤하늘 가장 빛나는 별로.

어쩌면 지금 먹고 있는 햄버거일 수도 있겠지.

한여주

"오빠 미안..."

여주는 작게 속삭인 뒤, 햄버거를 베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