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님, 남의 일에 신경 꺼"
싸가지 전정국_18


정여주
"남사스러운 말 하지 마."


전정국
"더 남사스러운 말 해줄까."

정여주
"뭔데."

안 돼. 자제해야 돼. 윤기가 정국에게 그랬다. 지나쳐 가는 기분에 불과하다면 관두라고.

알듯 말듯 이 말이 정국의 가슴을 후벼팠는지 그 이후로 그 말을 항상 되새기고 있었고, 더 이상의 말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가 다시금 내려갔다.

키스는 홧김의 실수였어. 더 이상의 실수는 하지 말자. 정신 차려, 전정국.


전정국
"아, 아니다. 서평이나 쓰자."

정여주
"네가 갑자기 말 돌리니까 이상하네."


전정국
"하자고 할 때 해. 나중에 안 할 거니까."

여주가 그에 고개를 끄덕이곤 노트북을 켜 선생님이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둔 서평 양식을 다운로드한다. 서평 양식도 총 세 가지라 이것저것 더 쉬운 걸 찾아보았다.

정국이 여주가 컴퓨터 하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만 보다가 손을 뻗어 여주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정여주
"뭐 해."


전정국
"그냥.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이 잘 안 보여서."

설렜다. 여자의 설렘의 핵심을 잘 꿰뚫고 있는 듯 싶었다. 정국이 턱을 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정국
"이거 다 끝내고 할 말 있어."

정여주
"별로 안 궁금하네."

빈말이다. 궁금했다, 어떤 말을 할지. 여주가 정국을 한 번 쓱 눈치 보더니 이내 마음속으로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신경 쓰지 않으려 서평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띵동-

적막한 정적을 깨고 경쾌한 초인종 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 퍼졌다. 그 초인종 소리의 주인공은 한 번으로는 부족했는지 뒤이어 몇 번 더 울려댔다.

띵동, 띵동, 띵동-

연달아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정국이 인상을 구기며 거실로 나가 인터폰을 확인하였다. 화면에서는 태형이 뭐가 그리 좋은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고, 정국이 문을 벌컥 열어주었다.



김태형
"전정국~"


전정국
"왜 왔냐."


김태형
"형 안 보고 싶었어?"

태형이 능글맞게 정국을 끌어안았다. 정국은 질색 팔 색을 하며 그를 밀어내었고, 그에 태형이 입을 쭉 내빼더니 자연스럽게 여주가 있는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덜컥-


김태형
"어, 너...!"

정여주
"어..."

갑자기 마주친 두 사람은 적잖게 당황했는지 서로를 바라보며 말을 얼버무렸고, 태형이 놀란 듯 소리를 질렀다.


김태형
"ㅁ, 뭐야. 홈 데이트 중이었어?!"

태형이 다시 방문을 닫으려 할 때 여주가 먼저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부정하려 들자 정국이 여주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전정국
"알면 자리 좀 비켜주지?"


김태형
"아, 미안해. 즐거운 시간 보내. 친구들."

태형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손인사를 하고 집을 나갔다. 멍하니 보고만 있던 여주가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더니 정국을 레이저로 쏘듯 노려보기 시작했다.

정여주
"뭐? 홈 데이트? 말 다 했어?"


전정국
"틀린 말은 아니잖아. 집에서 키스도 했는데 이 정도면 홈 데이트지."

정여주
"사귀든지 말든지 해야 그런 게 성립하지. 무슨 스킨십 하나 했다고 홈 데이트야. 괜히 저 새끼가 오해만 했잖아."

윤기 형 저 이제 알 거 같아. 이거 순간 지나쳐가는 감정 아니죠? 형이 설령 그렇다고 해도 전 이걸 사랑으로 믿고 싶어요.

매일 밤에 잠들기 전 이 여자가 자꾸 생각나고 지금 연인 관계도, 그저 그런 친구도 아닌 이 관계가 너무 답답할 따름이에요.

이 정도면 저 많이 참았어요.


전정국
"정여주."

정국의 목소리가 여주의 말을 막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여주도 그에 당황하며 괜히 화를 냈나 싶었다.


전정국
"내가 학기 초에 네 몸에 손댄 거 미안하다, 악의는 없었어.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하고."

정여주
"갑자기...?"


전정국
"근데 더 중요한 게 뭔지 알아?"

정여주
"뭔데."


전정국
"네가 내 눈에 더 거슬리고 신경 쓰인다는 거. 그동안 너에게 호감 가던 것도, 괜히 잘 보이고 싶던 것도 다 그저 순간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확신이 서더라."



전정국
"나랑 연애하자, 정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