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아파트
1화


'802호'

현관문을 여는순간 내 상상은 무너졌다.

정체를 알수없는 퀴퀴한 냄새와 아무렇게나 흩어진 신발들로 현관문은 어수선했다.

나는 거실과 오른쪽으로 보이는 주방, 문이 활짝 열린 방을 천천히 훑어봤다.

먼지는 쌓일대로 쌓여 발자국까지 선명하게 보이고 구석구석 빨랫감들이 제멋대로 나뒹굴고 있었다.


김다현
끝내주네.

여기가 정말 고모가 자는 곳이란 말이지? 입고있는 옷에 티끌 하나라도 묻으면 테이프로 떼어내고 언제나 달콤한 향수 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고모.

그런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누 운동화를 벗고 발꿈치를 든 채 안으로 들어섰다. 발가락 끝으로 뭔가 끈적끈적한 것이 느껴졌다.

가방을 거실에 내려놓고 물을 마시려고 주방으로 갔다.

1인용으로 보이는 식탁 위에는 식빵과 잼 병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빵을 보는순간 배고픔이 밀려왔다. 하지만 식빵과 잼에는 곰팡이가 까맣게 슬어 있었다.

거기에다 대체 언제 먹던 빵인지 돌처럼 딱딱했다. 먹기 싫으면 냉장고에 넣어 놓든지 아니면 버리든지.

그리고 식탁위에 놓여있는 식칼! 칼 위에도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이건 폐가 공포체험도 아니고 도저히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주방 벽에는 거미줄까지 쳐져 있었다.

부르르 부르르.

그때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울렸다. 고모였다.


고모
잘 찾아갔니? 일단 뭐부터 먹어라. 싱크대 열면 안에 음식점 스티커 붙어있을거야. 돈은 있지?

고모는 자기 할말만 하고는 전화를 뚝 끊었다.

사람이 냉정하기는. '찾아오기는 힘들지 않았니'라든가 '집이 지저분해서 놀랐지?'라든가, 이런 말 좀 해 주면 누가 뭐라고 하나.

나는 휴대전화를 흘겨본 후 주머니에 넣었다.

고모가 옆에만 가도 찬바람이 쌩쌩 부는 사람인 거는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고모는 말도 잘 하지 않는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두 모여도 물어보는 말에만 마지못해 간단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이러쿵 저러쿵 길게 말하는 거는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 하긴 고모의 그런 점이 내 마음에 더 들었다.

그래서 단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고모 집에서 지낼래' 이렇게 말했는지 모른다.


엄마
네가 언제부터 고모랑 친했다고?

내가 고모 집에서 지내고 싶다고 말하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말도 틀리지는 않다. 나는 고모와 친하기는 커녕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거의 없다.

하지만 말을 많이 해봤다고 해서 마음이 통하는 거는 아니다. 딱 꼬집어 설명할수는 없지만 나는 고모와 뭔가 통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엄마
혼자 살고 있는데 가면 싫어해. 그러지 말고 할머니 댁에 가 있어.

엄마는 반대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참견 받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보나마나 눈칫밥을 먹을거라고 했다.


김다현
아니, 나는 고모한테 갈래.

나는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할머니 집은 싫었다.

할머니는 말이 많았다. 한번 말을 꺼내면 실타래에서 실이 풀어지듯 끝없이 말했다. 그저 혼자 말하는거면 괜찮다.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꼭 질문을 한다. 그 질문의 대부분은 엄마와 아빠가 왜 사이가 좋지 않은지에 대한 이유와 내 생각을 묻는거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일로 엄마 아빠는 끈질기게 싸웠다.

밥을 먹을 때 밥을 먼저 먹지 않고 국부터 떠먹는 거 가지고도 싸웠다. 심지어 그거 가지고 사흘을 싸웠다.

지난 봄에는 치약 때문에 일주일을 싸웠다. 엄마가 치약 중간을 꾹 눌러 짜 썼다는거다. 아빠는 아래부터 눌러 쓰라고 말했다. 그냥 알았다고 하면 될것을 가운데를 눌러 쓰나 아래부터 눌러쓰나 다른게 뭐냐고 엄마는 따지고 들었다.

내가 아빠라면 그럼 그냥 알아서 눌러 쓰라고 했겠다. 그런데 아빠는 아침 저녁으로 엄마가 양치질을 할 때마다 따라다니며 참견을 했다.

엄마는 보란 듯 치약 가운데를 더 '꾸욱!' 눌렀다. 그러면 아빠는 불같이 화를 냈다.

내가 보기에 싸울일이 절대 아닌데 엄마 아빠는 악착같이 싸웠다.

나는 할머니에게 시시콜콜 그런 이야기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초등학생인 내가 생각해도 엄마 아빠의 행동은 유치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딸이 엄마 아빠가 유치하다고 떠들고 다니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혼자 살면 저런 걸로 싸울일도 없을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게 지겨웠다.

그래서 고모가 부러웠다.


엄마
그래, 그럼 당분간이니까 아빠보고 고모한테 잘 말해달라고 할게. 엄마가 자리 잡으면 바로 데리고 갈 거니까.

엄마는 내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고모 집으로 온 것이 과연 잘한 일일까, 살짝 후회가 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