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아파트
2화


그런데 지금, 고모 집으로 온 것이 과연 잘한 일일까, 살짝 후회가 되려고 한다.

나는 고모가 생긴 것처럼 우아하게 살줄 알았다. 먼지와 빨랫감이 마구 뒹구는 이런 집, 상상도 안 해 봤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혼자 사는 여자들처럼 예쁜 침대가 있는 방과 고소한 냄새가 가득할 것 같은 주방 그리고 향내가 폴폴 나는 화장실을 상상했다.

그런데 한순간, 그 상상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고모는 독진주의자다 스물세 살 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고 서른다섯 살이 되는 지금까지 그 생각은 바뀌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런 고모 때문에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고 했다. 고모가 결혼하는 걸 봐야 마음 편히 세상을 뜰 수 있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고모가 앞으로도 쭉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고모처럼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고 싶다. 툭하면 유치한 일로 싸우는 엄마 아빠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든 생각이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결국 이혼을 했을때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싱크대 문에는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하나같이 치킨집과 피자집 그리고 야식집 스티커였다.


김다현
도대체 뭘 시켜 먹으라는거야?

나는 혀를 끌끌 차며 중얼거렸다.

엄마 아빠가 이혼을 앞두고 굉장한 전쟁을 치를 때 엄마는 밥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때 치킨과 피자는 질리도록 시켜 먹었다.

이제 치킨의 '치' 자와 피자의 '피' 자도 보기 싫었다.

차라리 삼각김밥을 먹는 게 나을것 같았다.

발꿈치를 들고 현관까지 걸어나왔다. 운동화를 신으며 다시 집 안을 둘러봤다. 아! 정말 지저분하다.

엘리베이터는 22층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버튼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려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김다현
첫날부터 이게 뭐람.

나는 꼼짝 않는 숫자 '22'를 향해 눈을 흘기며 계단으로 내려왔다. 1층까지 내려왔는데도 엘리베이터는 아직도 22층에 있었다.


김다현
'엘리베이터를 이렇게 오래 잡고 있는 사람이라면 보나마사 장난을 좋아하는 꼬마겠군. 어떤 꼬마인지 나한테 걸리기만 해 봐라......'

궁시렁 거리며 엘리베이터의 번호판을 흘겨봤다.


김다현
어? 아니지.

순간 내 머리속이 번쩍했다. 이곳은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지어진 아파트다. 그래서 주민들 대부분이 혼자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아이가 있는 집은 없을텐데.

그럼 어른이 엘리베이터 장난을 하는거야? 할 일도 되게 없는 사람인 모양이네.

삼각김밥 세 개와 컵라면 하나를 국물까지 깨끗하게 먹었다. 그래도 배가 차지 않아 바다 냄새가 물씬 풍긴다는 '상어스넥'을 한 봉지 샀다.

와작와작 씹으며 편의점에서 나왔다.

와! 정말 짜증난다.

엘리베이터가 아직도 22층에 있었다.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꿈쩍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장난은 아닌것 같았다.


김다현
고장이네. 고장 났으면 빨리 고쳐야 하는 거 아니야?

8층까지 걸어 올라갈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어쩔수 없이 계단 쪽으로 가려는데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21층, 20층···

땡!

엘리베이터는 금세 일층에 도착했다. 문이 활짝 열렸다. 엘리베이터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부르르 부르르.

엘리베이터에 타는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빠였다.


아빠
고모 집에 잘 찾아갔니? 고모 귀찮게 하지말고 얌전히 지내고 있어. 아빠가 집 구하는 대로 곧 데리러 갈 테니까. 또 그 호기심 발동 시키지 말고.

엄마는 자리 잡는 대로 데리러 온다고 하고 아빠는 집을 구하는 대로 데리러 온다고 했다.

엄마 아빠는 이혼을 하면서 모든것을 반으로 나누었다. 살던 아파트도 팔아서 반으로 나누고 자동차도 그렇게 했다. 그동안 저축했던 돈도 반으로 나눴다고 했다.

반으로 나누지 못하는 것은 나밖에 없다. 아마 사람도 반으로 나누는 것이 가능했다면 엄마 아빠는 나도 그렇게 하려고 했을거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모르는 게 있다. 나는 누구와도 함께 살고 싶지 않다. 고모에게서 혼자 사는 방법을 배워 혼자 살고 싶다.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것은 불편하니까.

특히 엄마처럼 참견하기 좋아하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나 아빠처럼 자신만의 생각을 고집하여 불뚝불뚝 화를 잘 내는 사람과는 더 그렇다.

열세살! 아직 혼자 살기는 이른 나이지만 그렇다고 꼭 불가능한 나이라고도 할 수도 없다. 고모처럼 아파트만 하나 있으면 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