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아파트
5화


나는 미소까지 날리며 자신 있게 말했다. 고모가 의외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가 뭐 징징거릴 줄 알았나보지?

고모는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컴퓨터 안으로 들어갈 사람처럼 컴퓨터를 노려보며 자판을 두드려 댔다.

나는 자판 두드리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다.

잠결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늦게 잠이 들어서인지 눈이 떠지지 않았다. 그 소리는 곧 잦아 들었고 '쿵!' 문소리가 들리더시 고요가 찾아왔다. 나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떴을 때 고모는 보이지 않았다.

07:20 AM
7시 20분! 나는 벌떡 일어났다. 화장대 위에는 돈이 놓여 있었다.

눈곱을 떼어 낸 후 손등으로 입가를 쓱쓱 문질러 침 자국을 없앴다. 엄마가 참견하지 않는 첫날, 세수를 하지 않는걸로 시작이다.

돈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고모에게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방학 동안만이 아니라 줄곧 고모와 같이 지내도 된다는 말을 받아 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갓 구운 빵으로 아침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24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고 있었다. 23층을 그냥 지나친 엘리베이터는 22층에 섰다.

순간 내 심장이 펄떡펄떡 뛰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는 19층, 17층, 13층에 한 번씩 더 선 후 곧장 내려왔다.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백발의 할아버지, 모자를 갚이 눌러쓴 젊은 남자, 40대로 보이는 아저씨, 그리고 긴 생머리에 짧은 치마를 입은 아가씨와 뚱뚱한 아줌마.

다섯 명은 거울도 없는 엘리베이터 벽을 향해 그림처럼 서 있었다. 작은 움직임도 없었다.

나는 다섯 명의 뒷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22층에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엘리베이터는 6층에 섰다. 무스로 머리카락을 고슴도치 털처럼 세운 남자가 탔다. 그 남자가 타는 순간 엘리베이터 안이 진한 향수 냄새로 가득 찼다.

남자도 벽 쪽을 보고 섰다. 이 아파트에서는 엘리베이터른 타면 벽을 보고 서야 한다는 규칙이라도 있는 건지.

내가 살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풍경이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 사람들은 엘리베이터에 타면 일단 인신부터 한다. 친한 사이라면 소리 내어 인사하고 얼굴만 본 정도라면 고개라도 끄덕여 보인다.

뭐, 이것도 나쁘지는 않다. 나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보며 내가 살던 아파트의 아래층 아줌마를 떠올렸다.

아래층 아줌마는 잠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타서도 끝없이 말을했다.


아래층 아줌마
다현아. 어제 너네 엄마 또 아빠랑 싸우셨니? 뭐 집어 던지며 싸웠지? 우리 집 천장 무너지는 줄 알았다니까, 호호호.

아래층 아줌마는 엄마 아빠가 싸운 날은 용케 알고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만나면 이렇게 묻곤 했다.

다른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말이다. 자존심 상하게.


아래층 아줌마
다현아. 요즘은 엄마 아빠 안 싸우시니? 이상하게 조용하더라? 호호호.

엄마 아빠가 며칠 조용하면 아래층 아줌마는 이렇게 묻는다.


김다현
아줌마랑 무슨 상관이에요? 남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거는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요.

언젠가 나는 참다못해 아래층 아줌마에게 눈을 똑바로 뜨고 따지고 들었다. 아래층 아줌마는 얼굴이 벌게져서 어쩔줄 몰라 했다.

그 뒤로는 아래층 아줌마를 만나기 싫어 계단으로 걸어 다닌 적도 많다.

17층에서 말이다. 그 아줌마 성격에 동네 사람들에게 17층에 사는 여진이는 어른에게 대드는 버릇없는 아이라고 말하고 다녔을 게 뻔하다.

그래, 그렇게 남 일에 참견하는 거보다야 벽 보고 서 있는게 훨씬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