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지쳐버린 하루의 끝에


새벽 세 시경.

이미 모든 스태프와 멤버들은 퇴근한 시간.

고은은 마지막 옷가지를 접고 조심히 자리를 정리했다.

딱딱하게 굳은 몸, 한참을 숙였던 허리를 겨우 펴자 삐걱거리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다.

간신히 정리를 마친 그녀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끊긴 막차, 한산한 도로. 창밖의 불빛들이 무겁게 눈꺼풀을 자극했다.

좁은 원룸.

샤워를 대충 마친 뒤, 고은은 침대 위에 털썩 쓰러졌다.

시간은 새벽 다섯 시를 넘기고 있었다. 세 시간 뒤면 다시 출근이었다.

임고은
“…하…”

마른세수를 하며 눈을 감다, 도겸의 얼굴이 떠올랐다.


도겸(석민)
‘그게 죽는 거예요…?’

그 물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녀는 천천히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손등, 손가락,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어두운 천장.

임고은
“…사는 게 이렇게 지옥 같은데…”

죽음이 오히려 해방일 수 있다는 생각. 오랜 시간 자신을 따라다녔던 그림자.

임고은
'살 이유가 있는 사람들만 사는 거지. 나는… 뭐지? 여태까지 뭐 때문에 버틴 거지.'

몸을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무의식중에 휴대폰을 켰다.

환한 화면이 그녀의 얼굴을 조용히 밝혔다.

임고은
"아...."

그 아이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임고은
‘이런…’

그 순간 문득 스쳤다.

만약 그때 죽었더라면, 그 아이의 생일을 못 챙겨줬겠지.

임고은
“…다행인가… 안 죽어서…”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너무 조용하고 너무 무겁게 울렸다.

고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한참을 그렇게 고요한 공기 속에 몸을 뉘였다.

아까 전 상황 대기실에 있던 도겸은.


도겸(석민)
“흠…”

스케줄 대기실, 조명이 희미하게 비추는 벽 앞. 촬영을 마친 도겸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민규
“뭐야, 이도겸. 왜 이렇게 심각해? 무슨 일 있어?”

민규가 다가와 앉으며 묻는다.

도겸은 잠시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도겸(석민)
“…아니야, 그냥…”

민규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도겸은 시선을 멀리 두며, 하하호호 떠드는 다른 스태프들을 바라봤다.

익숙한 얼굴들. 하지만 그들 사이에 고은은 없었다.


도겸(석민)
‘왜 아무도… 모르는 척 하는 거야.왜 그렇게 괴롭히는 거야.


도겸(석민)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게 당연해?’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녀의 무표정, 떨리는 손끝, ‘괜찮다’며 밀어내는 눈빛.


도겸(석민)
‘그냥 일자리 때문인 건가… 아니면… 그보다 더한 이유가 있는 거?’

도겸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방금 전 옥상에서 마주친 고은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그건, 한참을 방치된 마음이 결국 터지기 직전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