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나는 오늘 죽으려 했다.


이젠 다 모르겠다.

그녀의 마음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입 밖으로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지만, 그 생각은 사무치도록 차가웠다.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옥상 위에 스치는 바람은 서늘했다.

해가 기울고, 건물 그림자들이 저녁빛 아래 길게 늘어지던 시간.

임고은, 스물여섯.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대형 기획사에 입사해, 꿈같은 무대의 뒤편에서 스태프로 첫발을 내디뎠지만, 현실은 조금도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말단이니까.’ ‘신입이니까.’

그저 그런 이유로 시작된 불필요한 지시와 잡무.

하지만 그것은 점점 선을 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은근한’ 괴롭힘이라는 단어로는 담기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항의도 못 했다. 누구 하나 편들어줄 사람 없이, 그들은 하나같이 끈끈하게 단합했고, 그녀만 고립되어갔다.

자신을 가리키며 웃는 소리, 불필요한 야근, 반복되는 지시.

그리고 집에서는, 더 지옥 같은 말들만 날아들었다.

“돈 좀 붙여라. 너밖에 없잖아.” “네가 뭔데 가족을 외면해?”

“보육원에서 그딴 걸 배웠어? 우리가 괜히 다시 데려온게 아니야 네가 좀 나아졌으면 책임을 져야지.”

그녀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마치 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견뎠다.

보육원에 자신을 버렸던 가족들이 다시 다시 찾아와 그녀를 데려갔을때 조금은 나아질거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돌조차 부서지는 날이 오듯, 오늘 그녀는 무너졌다.

옥상은 조용했다. 누구 하나 없는 시간.

죽으러 오자는 건 아니었지만, 막상 서보니 그렇게 끝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하나, 후회가 있다면.

지켜주고 싶었던 그 아이. 자신처럼 버려졌던 작은 손.

그 아이 곁에 더 이상 있어줄 수 없다는 게, 참 슬펐다.

임고은
"고생했다, 진짜..."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이 모든 세상과 작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온 아주 많이 놀란듯한 외침.


도겸(석민)
“으아아악?!! 지금,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놀란 고은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익숙한 얼굴. 세븐틴 도겸, 이석민. 그가 서 있었다.

쉬러 잠시 올라온 거였을까. 분명히 아무도 없었는데,

놀람과 경악이 그대로 담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임고은
"…도겸님…?"


도겸(석민)
"아, 아뇨 잠깐만요… 지금 혹시… 진짜… 그, 그러려던 거예요?"

도겸은 말이 꼬였다.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듯, 두 눈은 동그랗고, 목소리는 떨렸고, 발끝은 옥상 바닥에 불안하게 멈춰섰다.


도겸(석민)
"… 진짜… 왜 그런 생각을…"

고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겸의 눈빛이 복잡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망설이던 그는 어느 순간 아차 싶었는지, 급히 다가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도겸(석민)
“안 돼요!”

팔을 잡히자 그녀의 몸이 가볍게 휘청였고, 도겸은 반사적으로 그녀를 끌어당겨 난간에서 내렸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고은은 놀라 숨을 들이켰고, 두 사람은 옥상 난간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그 자리에 멈춰섰다.

도겸은 그제야 가쁘게 숨을 쉬며 말했다.


도겸(석민)
"…이런 건… 진짜 좋은 생각 아니에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겸(석민)
그래도… 죽을 만큼 아파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그 말. 그 목소리.

도겸은 당황했지만 조금은 절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은은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존재를 누군가 알아봐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