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아무 상관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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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겸(석민)

“헉… 하은 누나… 지금 뭐 하신 거예요?!”

의상실 안, 순식간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그 목소리는 분명히 도겸이었다.

성하은 팀장은 그쪽을 돌아보다, 한 박자 늦게 당황한 얼굴로 표정을 바꿨다.

성하은 팀장

“아하하하, 뭐긴~ 우리 다 정리 중이지~”

익숙한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억지스러운 웃음이었다.

그러고는 슬쩍 주위를 살폈다.

고은을 모른 척했던 스태프들을 향해 눈치를 주자,

어색한 공기 속에 그들도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고은이 정리하던 옷가지들을 하나둘씩 손에 들었다.

성하은 팀장

“그냥 우리끼리 빨리빨리 정리하려다 보니까… 좀 그런 것처럼 보인 거지~

성하은 팀장

별거 아냐, 도겸아. 가서 남은 촬영 준비하자~!”

도겸은 그 말을 가만히 들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딘가 억지스러운 그 웃음과, 맞지 않는 상황이 분명히 불편했다.

그는 다시 고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고은은 마치 들키기라도 한 듯, 재빠르게 그의 시선을 피했다.

매니저

“도겸아, 어딨냐~”

멀리서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하은 팀장은 곧장 그 소리를 기회 삼아 말했다.

성하은 팀장

“어이구, 너 찾는다! 얼른 가봐~”

등 떠밀듯 말하는 그녀에, 도겸은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지만… 결국은 조용히 입술을 다문 채 돌아섰다.

고은은 그대로 입술을 꾹 깨문 채, 아무 일 없던 듯 다시 옷가지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뒤편에서는 스태프들이 수근거렸다.

???

“뭐야, 뭐야.” “아까 분위기… 장난 아니었네.”

그 말들 사이로 의상을 대충 던지듯 정리하던 이들은 이내 무관심한 표정으로 의상실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성하은 팀장이 고은 앞으로 다시 다가왔다.

성하은 팀장

“야, 너 여기 있는 거 다 끝날 때까지 나올 생각도 하지 마.”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그녀는 이미 정리되어있던 옷가지들을 일부러 다시 바닥에 내던지고는, 휙 돌아서 나갔다.

조용히 고개를 숙인 고은. 그녀의 손끝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임고은

“…저렇게까지 해야 속이 시원한 걸까.”

가슴속에 무언가 올라오는 듯했지만, 그녀는 끝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다간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지금은 평온함을 유지해야만 했다.

자신을 지켜야했다.

의상실 한가득 널브러진 옷들. 스태프 여섯이 달라붙어도 오래 걸릴 분량이었다.

명백한 괴롭힘이었다. 그 누구도 말하지 않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고은은 묵묵히, 다시 손을 뻗었다.

한참 시간이 흘렀다. 혼자 조용히 정리하기 시작한 지 벌써 40분은 넘은 듯했다.

슥--

임고은

"...???"

손을 뻗어 다음 구역을 정리하려던 순간, 그녀의 시야 아래로 누군가의 손이 함께 내려왔다. 놀란 고은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임고은

“…도겸님…?”

그곳엔, 도겸이 있었다. 아까 떠났던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의외의 얼굴에 고은은 눈을 꿈뻑이며 얼어붙었다.

도겸은 의상을 하나 들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말투엔 분노보다 당황이, 실망보다 걱정이 더 많이 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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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겸(석민)

“…이거, 혼자 하래요? 진짜… 이 많은 걸요?”

고은은 그런 도겸을 보며 잠시 멈칫했지만, 곧 시선을 피하며 손을 움직였다.

침착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임고은

“…제 일이에요.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씀 주세요. 지금 바로 찾아드릴게요.”

사무적인 말투. 단단히 닫힌 벽이었다.

그러나 도겸은 그런 태도에 선뜻 물러서지 않았다. 같이 손을 움직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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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겸(석민)

“…진짜 실례인 거 아는데… 이래서 아까…옥상에서 그랬던 거예요?”

그 말에 고은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울컥하는 감정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녀는 꾹 참고 짧은 숨을 들이마셨다.

벅차오르는 눈물을 겨우 눌렀다.

임고은

“…이만 나가주세요. 업무가 밀릴 것 같아서요.”

그러나 도겸은 물러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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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겸(석민)

“…얘기 좀 해줘요. 왜 이러는 건지.”

임고은

“…왜… 관심을 가지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고은은 도겸을 보지 않은 채 일어섰고, 도겸 역시 그녀를 따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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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겸(석민)

“사람이 죽으려고 했는데… 그걸 그냥 모른 척 하라고요?”

도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그는 정말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고은은 숨을 한번 깊게 내쉰 뒤, 도겸을 바라보며 말했다.

임고은

“도겸님이랑은 아무 상관없는 일이에요. 하필 거기 계셨던 거 뿐이시잖아요.

임고은

안 좋은 모습 보여드린 건 죄송하지만… 제가 불편 드린 거라면 그거밖에 없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도겸이 뭔가 더 말하려던 찰나.

임고은

“여기서 안 나가시면 제 업무만 더 늦어지는 거라서… 10분 뒤엔 나가 계셨으면 합니다.”

단호한 말이었다.

고은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문을 열고 의상실을 나섰다.

복도를 걸으며, 그녀의 숨은 거칠게 떨렸다.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