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꺼내지 못한 진심, 닿지 않는 관심

임고은

“…이제 가셨겠지.”

조용한 의상실 앞 복도.

고은은 문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아주 작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녀는 안다.

살아오며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늘 그랬다. 잠깐의 동정, 잠깐의 감정.

금세 식어버리고, 결국엔 차갑게 등을 돌리는 것들.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녀 인생에선 늘 희박했다. 애초에 그런 건 기대하지 않는 쪽이 더 편했다.

억지로 감정을 끌어내듯 장단 맞추는 관심 따위, 받고 싶지 않았다.

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선 의상실. 그 안은 여전히 조용했지만, 그녀는 금세 멈춰 섰다.

임고은

“…어…”

조금은 어질러져 있었던 공간 한쪽. 누군가가 옷들을 가지런히 개어놓고 정리 중이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데까지 해놓은 모습. 도겸이었다.

고은은 당황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가며, 그가 들고 있는 옷을 덥석 붙잡았다.

임고은

“뭐, 뭐하시는 거예요…! 이걸 왜 정리하고 계세요…”

그녀의 목소리에 도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임고은

"...!!"

고은은 놀라 눈을 피하려 했지만, 도겸은 그녀를 그대로 바라봤다.

도겸(석민) image

도겸(석민)

“이 옷… 특이해서 기억나거든요. 아까 봤을 땐 정리돼 있었어요.”

고은은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도겸은 옷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도겸(석민) image

도겸(석민)

“근데… 촬영도 다 끝난 옷이 지금 다시 이렇게 널부러져 있는 건…”

임고은

“그건…”

고은은 입을 떼다, 조심스럽게 그의 손에서 옷을 받아내며 말을 흐렸다.

도겸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고, 옷이 그녀의 손으로 천천히 건너갔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임고은

“제발… 알려고 하지 마세요. 관심 갖지 말아 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고은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간절하게 말했다. 그 목소리는 애원이자 경고였다.

도겸은 잠시 입을 다문 채 그녀를 바라보다, 조용히 입술을 열었다.

도겸(석민) image

도겸(석민)

“…그렇게 내가 모른 척하면, 해결돼요? 아니면 그냥… 계속 이렇게 아플 거예요?”

임고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짧고 단단하게 쐐기를 박는 말.

도겸은 무언가 더 말하려다, 결국 숨을 내쉬며 목소리를 낮췄다.

도겸(석민) image

도겸(석민)

“…그게…”

한 박자 쉬고, 그의 목소리가 조금 더 단호하게 이어졌다.

도겸(석민) image

도겸(석민)

“…그게 죽는 거예요?”

그 한마디에 고은은 더 이상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깊게 숙였다.

한참을 바라보던 도겸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말없이 그녀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가, 발끝을 멈췄다.

도겸(석민) image

도겸(석민)

“…내가 여기 더 있으면, 고은 스텝님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서…

도겸(석민) image

도겸(석민)

일단은 갈게요. 다음에 봬요.”

그는 마지막으로 조용히 인사하듯 말하고, 문을 열고 나섰다.

조용히 문이 닫히고 난 뒤, 고은은 고요한 공간에 혼자 남았다.

그녀는 다시 손에 든 옷들을 정리하며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그가 잠시 정리해둔 옷들, 가지런히 놓여있는 흔적들.

그 조용한 다정함이 묘하게 마음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고은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사소한 동정, 잠깐의 감정일 뿐이다.

곧 식어버릴 감정. 곧 잊혀질 사람. 더 이상… 믿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