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도겸의 손에 이끌려 옥상 난간에서 내려온 고은은, 순간 멈춰 서서 얼어붙었다.

자신의 팔을 감싸안은 따뜻한 손길. 그 안에 담긴 다급함과 떨림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의 눈만 바라보았다.

빼낼 수도 없고, 남겨둘 수도 없는 감정이 그 짧은 눈맞춤 사이를 채웠다.

도겸은 잠시 말이 막히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도겸(석민)
“아무리 힘들어도… 이런 선택은, 진짜 안 돼요.”

진심이 묻어난 음성이었다. 누구보다 따뜻하고 맑게 울리는 목소리.

하지만 그 말이 닿기도 전에, 고은은 그의 손을 살짝 떼내며 몸을 틀었다.

임고은
“…불편드려 죄송합니다.”

짧게 고개를 숙인 그녀는 도겸을 지나쳐 옥상 출입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급히 뛰어온 걸음 때문인지, 도겸은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의 말, 표정, 걸음. 무엇 하나에도 힘이 실려있지 않았다.

그저 무너져 가는 걸음이었다.

고은이 문을 열고 나설 무렵, 도겸은 뒤에서 소리쳤다.


도겸(석민)
“고은씨죠, 고은씨 맞죠?! 스태프분들이 많아져서 이름 외우는 것도 진짜 힘든데…


도겸(석민)
제가 많이 노력하고 있었거든요! 맞는지 모르겠지만…!”

목소리에 묻어나는 진심. 도겸은 조심스럽고도 간절한 눈빛으로 말을 덧붙였다.


도겸(석민)
“무슨 일인지 몰라도… 진짜… 힘내요!.”

고은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임고은
"감사합니다."

그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그녀는 옥상을 빠져나갔다.

도겸은 그녀가 사라진 문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였다.


도겸(석민)
"....아이고.."

옥상 문을 나와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고은. 그녀는 작게 숨을 내쉬며 천천히 중얼였다.

임고은
“…하아, 뭘 안다고.”

누군가의 위로를 무시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저 그랬다.

힘내라는 말. 괜찮다는 말.

그 모든 말들이 그녀에겐 너무 가볍게만 느껴졌다.

늘 그래왔듯, 사람들은 고은을 향해 쉽게 말을 던지고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다.

그때, 핸드폰이 진동을 울렸다. 카카오톡.

스태프 단톡방


그 중에서도, 고은에게 늘 시비를 걸던 성하은 팀장의 메시지였다.


곧이어 이어지는 메시지.

고은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임고은
“…하아…”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고개를 숙인 채 답장을 적었다.

작게 입술을 깨물었다.

임고은
“…휴식 그동안 못 가다가 이제 썼는데… 10분도 안 됐는데…”

울컥했지만, 참았다. 늘 그랬듯, 지금도 눈물은 삼키는 거였다.

걸음만 빨라졌다.

그렇게 다시 스태프들이 모여있는 장소로 들어섰을 때였다.

퍽---!

임고은
“…!”

고은의 얼굴로 의상이 날아들었다.

의상실 한쪽에 널부러져 있던 옷더미가 그대로 그녀의 얼굴에 맞았다.

성하은 팀장
“야!”

성하은 팀장이 고성을 내지르며 다가왔다.

성하은 팀장
“정리 안 하고 어디 가서 놀고 있었어? 빨리 이거 안 치워? 다음 촬영 들어가야 되는 거 안 보여?”

싸늘하고 날 선 목소리. 모두가 듣는 앞에서 고은을 몰아세웠다.

고은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임고은
“…죄송합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바닥에 떨어진 옷들을 하나씩 주워 들었다.

다른 스태프들은 힐끔거리며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그들의 눈빛 속엔 연민도 동정도 없었다.

그저 익숙하다는 듯한 비웃음만이 떠돌았다. 고은은 그저 묵묵히 손을 움직였다.

감정도, 소리도, 얼굴도 모두 지운 채.

그때였다.


도겸(석민)
“헉… 하은 누나… 지금 뭐 하신 거예요?!”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놀란 듯한 말투.

고은은 순간적으로 손에 쥔 옷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도겸이었다.

놀란 눈으로 의상실 안으로 들어선 그가, 상황을 바라보며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