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흰 눈이 소복히 쌓이던 날.
18


- 한돌 책방 -

원우와의 화해 이후로 인원수가 늘은 탓 일까, 그들의 생활은 좀 더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매일 조합을 바꾸어가며 어느 날은 둘씩, 어느 날은 세명과 한 명으로 책방과 병원을 드나들었다.

더 이상 거리가 분홍빛이 되지 못 했을때, 기어코 봄이 져 갈때 여주는 이야기를 끝마쳤다. 소량만 뽑아 책방 경력을 통해 본인이 엮어 만든 책은 승철, 지수, 원우에게 나누어주었고.

남은 둘 중 하나는 잠들어있는 정한의 곁에 놓아두었다.


여주
.. 정한아

정한의 병실, 여주 혼자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여주
이 책은 내가 읽어주는 것보다 네가 직접 읽는게 나을 것 같아.


여주
왜냐하면, 이 책은 -..

아무리 잠들어있다고 해도, 직접 마주보고 말하려니 어려웠다. 여주는 눈을 꼭 감고 내뱉었다.


여주
너를 향한 내 마음을 엮어 써내려간 거니까.


여주
아주, 길고 길게도 풀어놓았으니까.


여주
꼭, 네가 읽어줘. 정한아-..

- 한돌 책방 -


여주
와, 진짜 여름이긴 하네. 엄청 덥다-


승철
푹푹 찐다, 쪄..


원우
책이나 봅시다. .. 어?


더워하는 둘 사이에 원우가 책 한 권을 꺼내들자 책 사이에서 곱게 접어놓은 종이 하나가 툭- 떨어졌다.


승철
오, 그 책 강여주가 아끼는 건데.


원우
.. 아니, 책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쪽지는 뭐야?


여주
.. 우린 그런 거 넣어둔 적 없는데?

적잖게 놀란 여주가 원우의 곁으로 가 함께 쪽지를 펼쳐보았다.

둘은 눈동자를 열심히 굴리며 쪽지의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여주
.... 승철아, 빨리 책장 가-2번에 위에서 3번째 줄 책 하나하나 다 뒤져봐.


승철
..어 ?


여주
빨리..!

승철은 당황하면서도 곧장 여주의 말을 따랐다.

승철이 뒤져보자 3번째줄 책장 중 한 책에서도 쪽지가 하나 나왔다.

승철은 쪽지를 읽었고, 곧장 여주에게로 달려가 내용을 보여주었다.

세명은 먼저 발견한 쪽지를 힌트삼아 내내 책장 곳곳을 뒤지며 책을 찾아내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전부 종이 쪽지가 끼워져있었다.



여주
... 첫번째 거 부터, 읽는다?


승철
...응

여주는 깊게 심호흡을 하곤 쪽지 하나를 펼쳤다.


여주
.. To.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안녕, 난 정한이야. 이게 아마 첫 쪽지가 되겠지? 막상 쓰려니 딱히 할 말이 없는데, 고등학교때 갑자기 마을을 떠나서 미안. 너희한테 걱정 끼칠까 그랬어.


여주
너희는 나 없이도 씩씩해서 걱정되지는 않네. 내가 없을 미래에도 꼭 행복해야해. 알았지? Ps. 두번째 쪽지는 다-3 위에서 4번째줄!


여주
.... -정한이가.

여주의 목소리에는 점차 감정이 복받쳐오는 듯 떨려왔다.

그 후로도 여주가 읽은 수장의 모든 편지에는 정한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었다. 투병 생활 도중 흐린날의 불꽃놀이를 창문 너머로 즐긴 것, 부작용으로 인해 몇번이고 생명이 위험했던 것, ..우리가 너무나도 보고싶었다는 것.

생각보다도 아픈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았고, 마지막 편지에는-


여주
.. Ps. 달이 참 예쁘다, 여주야.

작은 고백 또한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