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미학

#3 - 미증유

새 학기 첫날의 학교 뒷골목은 한산했다.

아무래도 이 학교에는 새 학기 첫날부터

담배를 태울 간 큰 학생은 없는가 보다.

김여주

아무도 없구나…

김여주

다행이다.

여주는 가방 깊숙한 곳에서 연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가 뭉근하게 하늘로 올라가는 꼴이 제법 볼 만했다.

흡연이 몸에 안 좋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유일하게 사수한 일탈이 이것뿐이라

도무지 관둘래야 관둘 수가 없었다.

김여주

괜찮은 3월은 개뿔.

김여주

시작부터 망한 것 같은데.

하루가 다 가도록 기우일 줄로만 알았던 조급함은

점점 더 제 몸집을 불려갔다.

원우는 새로이 사귄 친구들과 잘만 지내,

나는 홀로 동떨어져.

윤정한이라는 애는 그냥… 신경 쓰이고.

17년 인생 통틀어 친구라고는 원우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자니 어렵기도 했지만,

혼자 남겨지기 싫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툭 튀어나와

혹시나 원우의 고등학교 생활에 방해가 될까 봐 두려웠다.

원우도 나 말고 다른 친구들 사귀어야지.

아무래도 남자애니까, 나보다는 동성 친구들이 더 편하지 않을까.

마음이 행동에 잘 물드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마음을 다잡으려 몇 번이고 괜찮다 되뇌어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본심은

나는 오로지 나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서.

김여주

나 진짜 못났다…

울컥하는 마음에 하늘을 올려다 보면

나뭇잎 새로 비치는 하늘 덕에 잠시 상념을 덜었다.

그러고 보니 담벼락을 넘어온 나뭇잎이 그늘을 형성하는 모양새가

꽤 마음에 들었다.

이곳도 며칠 후면 누군가의 아지트로 변모하겠지.

어쩌면 바로 내일부터일지도 모른다.

김여주

괜히 시원섭섭하네.

몇십 분 있지도 않은 이 장소와 정이 든 건 아니고,

그냥 아쉬울 뿐이다.

정은 함부로 주면 안 되는 것들 중 하나였다.

다년 간의 경험에 따르면 그랬다.

여주는 치마 주머니에 꽂혀있던 휴대폰을 들어

화면에 적혀있는 시간을 확인했다.

김여주

슬슬 가야겠네.

김여주

아주머니 걱정하실라.

여주는 가방에서 탈취제를 꺼내 온몸에 뿌리더니

곧 가방을 챙겨 뒷골목을 떠났다.

담벼락에 기대어 놔둔 담뱃갑은 까맣게 잊어먹은 채로.

“…갔나? 소리 안 들리는 거 보니까 갔겠지?”

여주가 있었던 골목보다 조금 더 깊숙한 곳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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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으아, 갔다…

석민은 고개를 빼꼼 내밀어 주위를 살피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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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입구에서부터 여기서 담배 많이 피겠구나, 싶은 냄새가 폴폴 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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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새 학기 첫날에도 담배를 피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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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중딩 때는 애들이 학기 초에 사리기라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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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몇 년 더 살았다고 애들이… 간이 커져도 너무 커졌다.

아주 땡땡 부었어, 그치. 하고 석민은 제 발치의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고양이는 아무렴 기분이 좋은 듯 석민에게 계속해서 골골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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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내가 너 울까 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알기나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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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귀여운 자식.

석민은 고양이를 몇 번 다정히 쓰다듬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툭툭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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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형님 내일도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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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또 누가 오면 저 뒤에서 숨어있고.

석민은 가방을 둘러메고 골목 입구로 천천히 걸어갔다.

고양이는 용케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건지,

멀어지는 석민의 뒷모습을 가만 바라보다가

곧 모습을 감췄다.

이윽고 발생한 문제라면 바로 하나,

김여주

아, 맞다. 내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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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여주…?

김여주

…이석민? 네가 왜 여깄어?

석민이 재빠르게 숨지 못했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