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왕자님은 오늘도 아름답습니다

04

며칠이 지나 드디어 휴일이 되었다. 나는 마차를 타고 레브 저택으로 향한다.

나플리

드디어..노아 왕자를 볼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을 안고 마차 창 밖을 내다본다. 얼마 후 마차가 레브 저택에 도착한다. 마차에서 내려서니 릴리아가 미리 마중 나와 있다.

릴리아

어서와, 나플리.

나플리

그동안 잘 지냈어?

릴리아

그럼. 세이라 영애도 미리 도착해 있어. 고모님 댁에 갈 마차에 타러 가자.

릴리아를 따라 레브 저택의 마차에 올라탄다. 미리 타 있던 세이라 영애가 나를 보더니 코웃음을 친다.

세이라

흥, 진짜 왔군요. 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나플리

누구와는 다르게 순수한 목적으로 방문하는 거거든요?

세이라

이익...흥!

세이라 영애는 미간을 찌푸리며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내 옆에 릴리아가 앉으며 곧 마차가 출발한다. 1시간 쯤 지났을까. 마차가 멈춰선다.

릴리아

도착했네.

마차에서 내리자 웅장하고 고즈넉한 에릴 고모님의 저택이 보인다. 우리는 저택의 입구로 향한다. 마차가 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저택의 집사가 우리를 맞이한다.

그리드 저택 집사

어서 오십시오.

릴리아

안녕하세요. 고모님은 어디 계신가요?

그리드 저택 집사

영애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응접실에 계십니다.

우리는 집사의 안내에 따라 응접실로 향한다.

긴 복도를 지나 응접실 앞에 다다른다. 집사가 노크를 하며 우리가 도착함을 알린다. 안에서 나지막한 허락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윽고 문이 열린다.

응접실 안으로 들어서자 소파에 앉은 에릴 고모님이 보인다. 인자하면서도 강인한 인상이었다. 그녀는 남편인 백작을 사별한 후 그리드 백작가를 홀로 지키며 지내고 있었다.

릴리아

고모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그리드 백작부인

그래, 어서 오렴. 간만에 혼자가 아니구나.

세이라

그리드 백작부인을 뵙습니다. 세이라 빈첸입니다.

세이라 영애는 우아한 예법과 함께 그리드 백작부인에게 인사한다. 나는 뒤이어 인사한다.

나플리

오랜만에 뵙습니다. 나플리 리즈에요.

그리드 백작부인

나플리.. 정말 오랜만이구나. 아주 어릴 때 봤었는데 많이 컸어.

그리드 백작부인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우리는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세이라 영애가 찻잔을 내려 놓더니 입을 연다.

세이라

부인께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리드 백작부인

..말해보세요, 영애.

세이라

.....여기에 노아 왕자님이 계시는 건가요?

세이라 영애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나와 릴리아는 숨을 헉 하고 삼킨다. 그리드 백작부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찻잔을 내려놓는다.

그리드 백작부인

왕자님의 행방은 왜 묻는 거죠?

세이라

...왕자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저를 도와주세요, 백작부인.

세이라 영애는 간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지만 그리드 백작부인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세이라 영애를 응시한다.

그리드 백작부인

..왕자님께선 여기에 없어요.

세이라

..노아 왕자님과 닮은 공주님을 본 사람의 목격담도 있지 않나요? 진실을 알려주세요.

세이라 영애의 요구에 그리드 백작부인이 눈빛을 살짝 가라앉힌다.

그리드 백작부인

릴리아의 요청으로 방문을 수락했지만..무례하군요, 영애.

세이라

..그, 그게...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노아 왕자님을 꼭 뵙고 싶어요!

그 뒤론 그리드 백작부인의 모른다는 대답만 이어졌다. 결국 세이라 영애는 시무룩해져 더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드 백작부인이 하루 머물다갈 것을 제안 했으나 세이라 영애는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마차를 호출해 타고 되돌아갔다.

릴리아

..후우, 저렇게까지 고모님께 무례할 줄은 몰랐어요. 죄송해요, 고모..

그리드 백작부인

괜찮단다, 릴리아. 사실 저렇게 찾아오는 영애들이 여럿 있었단다.

역시 다들 소문에 빠르게 움직였던 것이다. 나와 릴리아는 그리드 저택에서 하루 머물기로 결정해 각자 방으로 안내받는다. 내가 안내 받은 방은 릴리아가 머물 방과 많이 떨어진 반대편에 있는 방이다.

나플리

휴우, 소문은 소문일 뿐인 걸까.

나는 방을 둘러보다 창가로 다가간다. 저택 외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창문을 열자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나플리

좋다..

풍경을 멍 하니 구경하는데 순간 내 시선이 한 곳에 멈춘다. 커다란 나무 한 그루의 잎들 사이로 금빛이 반짝인다. 초록색 사이에서 선명하게 반짝이는 금빛은 햇빛에 따라 결이 나타났다. 나는 곧 그것이 머리카락이란 것을 깨닫는다.

나플리

......설마.

머릿 속에 떠오르는 건 한 가지였다. 노아 왕자가 금발이라는 것. 나는 눈을 빛내며 창문을 닫는다. 그리곤 방 한가운데 서서 생각에 잠긴다. 이윽고 계획이 대충 세워지자 나는 발걸음을 옮긴다.

나플리

...진짜 얼굴이라도 제발 보자.

나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리드 저택 밖으로 향한다.

저택에서 나와 정원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정원에 핀 꽃들을 구경하며 최대한 여유롭게 걸음을 옮긴다. 어느새 정원을 지나 나무들이 모인 숲 입구에 다다른다.

나플리

..와..멋지다.

나는 웅장한 나무들을 보며 감탄한다. 푸른 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사라락 소리를 울린다. 나는 재빠르게 나무들을 훑으며 금빛을 찾는다.

나플리

'찾았다!'

그리 멀지 않은 나무의 푸른 잎들 사이로 금빛이 반짝인다. 나는 긴장하며 그 나무로 천천히 다가간다. 나무 앞에 다다른 순간 위에서 툭 하고 무언가 떨어진다.

나플리

...!!

딸기가 여러 개 담긴 바구니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나무 위로 시선을 올린다.

나무 위에선 긴 금발을 휘날리며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왼쪽 눈 밑 눈물점이 유독 눈길이 간다.

나플리

......저기..이거 떨어뜨리셨는데.

여자는 내 말에 딸기가 담긴 바구니로 시선을 옮기더니 이내 몸을 일으켜 나무에서 능숙하게 내려와 땅에 선다. 우아한 몸놀림으로 내려선 그녀는 말없이 바구니를 집어든다.

나플리

..그..딸기는 무사해요!

내 말에 그녀가 나를 보더니 피식 웃는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그녀가 천천히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곤 딸기 하나를 집어 나에게 내민다. 나는 얼떨결에 딸기를 받아든다.

나플리

..감사합니다.

나는 살짝 당황해 그녀를 올려다본다. 가까이서 보니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큰 것 같다. 잠시 침묵이 맴도는 그 때 순간 돌풍이 불어와 우리를 지나간다.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웅크린다. 곧 고요해지며 나는 눈을 뜬다.

나플리

....아..???

눈을 뜬 나는 바닥에 떨어진 긴 금빛 가발을 주우려던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다. 그녀는 순간 굳더니 작게 한숨을 쉬며 가발을 땅에 둔 채로 몸을 바로 세운다. 그리곤 나를 응시하며 나직히 말한다.

노아 image

노아

방금 본 건 비밀로 해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