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민의 나비 이여주 입니다
EP.35 도망가


뚜벅이는 구두소리가 회장실에 울려퍼졌다 . 고요함 속에 문이 열리고 이내 커다란 문 너머의 복도로 지민이 모습을 감추었다 .

탁 ,

지민의 나른한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회장실의 문이 굳게 닫혔다 .

회장
도대체가 ,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구나 .

지민이 떠난 자리에 혼자 남은 회장이 비릿한 . 기분 나쁜 웃음을 얼굴 가득 띄웠다 .

회장
어어 , 김실장 .

시간이 없었다 . 우리 귀염둥이가 더 미쳐 날뛰기 전에 , 모든 일을 빠르게 처리해야 했다 .

회장
.. 조금 부지런히 움직여야 겠는데_

회장
어어 , 그래 , 그 자 말이야 .

회장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줘 -

우리 예쁜 아들이 더 슬퍼지기 전에 말이지 ..

[ 네 , 알겠습니다 . ]

대답은 간결하고 , 딱딱했다 .

퍽 충성심이 담긴 목소리는 회장의 마음에 들었고 , 당연히 따르는 복종에 회장은 그저 빙긋 웃었다 .

[ ..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겠습니다 . ]

···

해가 중천에 뜬 시각이 되어서야 여주가 몸을 일으켰다 . 일으키는 허리에 진한 통증이 아렸다 .


이여주
아아 ...!!

어젯밤 칼날에 스친 자리가 생각나 옆구리를 더듬은 여주는 자기 손에 닿는 감촉에 눈을 크게 떴다

붕대 ? 왜지 ? 피 묻은 옷들은 다 어디가고 ?

번쩍 몸을 일으켰다 . 아픔을 잊을 정도의 놀람이었다

터지고 찢어진 곳곳에 예쁘게 발라진 소독약 . 연고 . 그리고 반창고들 . 서투르게 마감 된 붕대가 둘둘 감긴 탓에 허리가 더 이상 굽혀지지 않을 지경이였다 .

여주는 알 수 없는 진득한 액체로 축축이 젖은 자신이 머리를 헝클이며 생각에 잠겼다 .

침대도 , 베개도 . 모두 피 범벅이었다 .


이여주
어젯밤에 ...

어젯밤 나는 어김없이 또 불려나갔고 , 언제나 그렇듯 알 수 없는 이들의 샌드백이 되었다 . 또 다시 차가운 바닥에 누워 정신을 잃었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이곳으로 돌아왔는데 ...


이여주
.....

이상한 꿈을 꾸었었다 .

어둠이 내려앉은 방에 들어서서 풀썩 주저앉자 왠 하인 한명이 나타나 나를 받쳐안고 펑펑 우는 꿈이었다

나를 품에 안은 하인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


이여주
... 그런데

코끝에 옅게 내려앉는 그의 향기가 도련님의 것과 매우 비슷해서 .

꿈 속에서 나마 도련님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 그 부름에 하인이 가볍게 응하였다 . 무어라 말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꿈이니까 . 이건 꿈이니까 .

여주는 하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

그리고 말했다 . 나에게서 멀어지라고 . 모르는 척 지나가 달라고 . 그리고 울부짖는 소리는 점점 지민의 것을 닮아갔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 하지만


박지민
" 이건 꿈이야 . 현실이 아니야 "

하인의 당부에 마음이 놓였다 . 그래서 하인의 품에 안긴 채로 그렇게 편하게 잠들었는데

그래 , 그것까진 알겠는데 . 도대체 어째서 ..


이여주
.....

지끈이는 머리는 온통 혼란스럽가만 했다 . 어째서 상처가 모두 말끔히 치료되어 있는건지 . 어떻게 널부러져 있던 약통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건지 .

똑똑 ,

그 때 문 너머로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


이여주
네 , 들어오세요 .

응하는 말에는 대답이 따르지 않았다 . 오히려 문에서 멀어지는 다급한 뜀박질에 가까운 발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이여주
아 ... 뭐야 .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여주가 문 앞으로 향했다 .

끼익 ,

열린 문틈 사이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


이여주
누구지 ?

고개를 두리번 거리던 여주가 바닥을 내려다 보았을 때 .

깔끔하게 개어놓은 옷가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


이여주
.....

분명 어제 입었던 옷들 . 피로 빨갛게 물들었을 . 다 찢어지고 터졌을 옷가지들인데


이여주
아 ....

그리고 , 그 히얀 와이셔츠 위에 놓인 작은 쪽지를 발견한 여주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 했다 .


이여주
.... 도련님 ...?

너무나 익숙한 글씨체 , 희미한 연필로 끄적여놓은 글자가 하얀 종이에 남아있었다 .

[ 도망가 ]

적막한 세글자 . 여주는 부디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의 것이 아니기를 바랬다 .


이여주
ㅇ .. 아 ....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여주가 그 쪽지를 집어들어 뒷면으로 돌렸을 때 ...

[ 제발 ]

이어지는 두 글자가 여주의 마음을 찢어놓는 듯 했다

너는 몰랐어야지 . 나위 위험을 . 나의 고통을

네 옆에 머무르기 위해 난 이 모든 것을 감당해낼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데 ,


이여주
.....

네가 내게 도망을 권해서는 안되는거잖아 .

문득 고개를 든 여주가 주변을 두리번 거렸을 때 . 저 멀리 복도 끝에 작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금세 사라졌다


이여주
... 박지민

절뚝이는 걸음으로 뛰었다 . 그림자는 더 빠르게 멀어져만 갔다 . 돌아선 모퉁이엔 아무도 없었다 . 그저 , 어젯밤 코를 간질이던 익숙한 향기만 남아있을 뿐 .


이여주
나는 ... 도망칠 수 없어 .

네가 이렇게 내 앞에서 아른거리는데 , 어떻게 내가 너에게서 멀어질 수 있겠니 .

여주는 자신의 허리춤에 감겨있는 붕대를 쓰다듬었다 . 어제 그렇게 찢어지고 터졌던 자리가 . 마법처럼 다 나은 듯한 기분이었다 .


이여주
난 괜찮아 ..

지금처럼 네 그림자라도 볼 수 있다면

나는 꼭 , 너를 지킬게 .그리하여 오래도록 아주 오래 오래 너와 함께할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