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민의 나비 이여주 입니다
EP.39 마지막 인사


문득 눈을 떴을 때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건 그때의 눈밭처럼 새하얀 천장이었다 .


박지민
아 ...

하인
어 , 깨어나셨습니다 !!

비서
얼른 회장님께 연락드려 ! 도련님 , 괜찮으십니까 ?


박지민
아으윽 ...!!

순간 자신을 덮쳐오는 두통에 머리를 싸맨 지민이 가만히 누워 가쁜 숨을 골랐다 . 내쉬는 숨이 호흡기에 걸려 숨쉬기에 답답했다 .


박지민
... 나 이거 떼줘

지민이 힘 없는 손가락으로 호흡기를 톡톡 건드리며 주문했지만 지민을 둘러싼 이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

비서
안됩니다 도련님 . 안정을 취하셔야 해요 .


박지민
으으 , 답답한데 ..

아무도 자신위 주문에 반응하지 않으니 자기 손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 지민이 직접 손을 올려 호흡기를 떼어내려 힘을 주는데 ..


박지민
아윽 ..!!!

엄청난 통증이 허리를 관통했다 . 허억 , 내쉰 숨을 모조리 삼킨 지민이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통증이었다 .


박지민
허억 .. 헉 ..

하얀 이불에 얼굴을 묻고 있으니 자연스레 눈앞에 선명했던 하얀 눈밭의 기억이 머리 속을 스쳤다 .

정말 추운 밤이었다 . 더 이상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

발끝은 꽁꽁 얼어붙었고 , 내쉬는 숨마다 터져나오는 입김에 앞이 흐려질 정도였다 .

그날 밤 , 나는 왜 그렇게 추운 눈길을 올랐던걸까 . 단정한 교복과 따뜻한 목도리를 벗어둔채로 ..


박지민
하아 ... 하아 ..

나는 겁도 없이 그 험한 산길을 오르고 또 올랐지 . 희미하게 들려오는 익숙한 그 목소리에 의존한 채로

그날 밤 . 내가 그 험한 산길을 올랐던 이유는 , 단 하나 . 목숨을 걸고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를 위해 겁도 없이 자기 목숨을 내어둔 그 사람을 꼭 쫒아가 . 끝까지 지켜주고 싶었는데 .


박지민
.. 나비 , 나비야 ..!!

나는 왜 이렇게 멀쩡히 숨을 쉬고 있는걸까 .

지민이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 스쳐지나간 기억속에 남은 나비의 모습이 떠올라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진 채였다

눈꼬리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볼을 타고 여러 갈래로 나뉘어 흘러내렸다 .


박지민
나비는 ? 나비는 어디에 있어 ??


박지민
얼른 가자 .. 병실이 어디야 ? 어서 와서 나 좀 일으켜봐 ..


박지민
나비가 괜찮은지 확인하러 가자 , 응 ?

무작정 맨발로 바닥에 선 지민은 자신의 양옆에 한줄로 선 하인과 하녀들을 쳐다보았다 .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박지민
... 다들 뭐해 ? 귀 먹었어 ? 이리와서 앞장서 . 얼른 나비 보러 가자

떨리는 목소리가 그들을 재촉했지만 그들은 그저 눈을 꿈뻑이며 지민을 바라볼 뿐이었다


박지민
얼른 !!!

지민의 고함이 고요한 병실에 날카롭게 울렸을 때 ,

끼익 -

하얀 병실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


박지민
어 ?? 나비 왔어 ?

링거의 바퀴를 끌며 걷는 지민은 온몸이 찢어질 듯한 고통도 잊은 채였다 . 붕대로 꽁꽁 싸맨 옆구리를 감싸안으며 겨우 겨우 도착한 문 앞엔 ..

회장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엄한 표정으로 지민을 내려다보는 아버지가 서 있었다

아 , 왜 나비가 아니지 ? 몸이 많이 안 좋은가 ?

그럼 내가 얼른 찾아가서 간호해 줘야겠다 . 소독도 해주고 , 약도 발라주고 , 쓰담 쓰담 쓸어주고 안아주어야지 .

밥도 먹여주고 , 손도 잡아주고 , 많이 춥지는 않았느냐고 물어봐야 하는데 ..

지민은 무언가에 홀린 듯 아버지를 지나쳐 복도로 나왔다

뚜벅 뚜벅 걸어 복도를 걷는 지민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나비야 .. 나비야아 ...

내가 너를 지켜줬잖아 . 오직 너를 위해서 그랬잖아


박지민
아악 !!!

순간 , 누군가가 지민의 뒷통수를 강하게 잡아 끌었다 . 그 우악스런 손길에 이끌려 병실로 돌아온 지민은 바닥에 던져지듯 넘어졌다 .

회장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

찰싹 -


박지민
아악 ..!!

아픈 소리가 병실을 울렸다 . 커다란 손이 손쓸틈도 없이 지민의 뺨을 내려쳤다 . 울음을 참는 지민의 턱이 떨려왔다 . 지민이 아비를 올려다보자

분노로 물든 눈빛이 지민을 관통했다 .

회장
뭐가 불만이길래 이렇게 천박하게 구는게야 . 어 ?

맞은 볼이 얼얼하게 아파왔다 .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눈물이 얼굴을 덮었다

아프고 , 서럽다 . 그리고 . 보고싶다

여러 복잡한 감정이 섞여 눈물이 다시 한번 차올랐다 . 볼 안쪽에서 베어나오는 핏물에 지민이 헛구역질을 하자 아비는 허리를 숙여 지민의 양 볼을 붙잡았다 .

잔뜩 충혈된 눈동자가 지민을 경멸스레 내려다봤다 . 볼을 너무 세게 움켜 쥔 것인지 터졌던 자리에서 더 진한 핏물이 세어나왔다 .

그에 지민이 끊임없이 도리질 치며 아비에게 매달렸다 .

회장
다 줬다고 생각한다 . 너를 위한 것이라면 이 아비가 다 해줬어 .


박지민
아빠 .. 아빠아 ..

회장
시중 들 사람들 붙여줘 , 입을 것 먹을 것 다 내어 줘 . 위험한 일 당하지 말라고 지켜줄 이까지 붙여줬건만 ..!!


박지민
아빠아아 ...

회장
도대체 왜 네 발로 그따위 짓거리를 하다가 이 꼴이 되어서 돌아오느냔 말이야 !!!

회장의 고함은 절규에 가까웠다 . 지민의 볼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줄도 모른 채


박지민
아아 , 아흑 .. 아빠아 ..

그제서야 지민이 걱정된 회장이 지민의 볼을 끌어다 눈을 맞추었지만 지민의 눈동자는 회장을 지나쳐 복도를 향해 있었다 .

혹여나 나비가 지나가진 않을까 . 아니 , 그 비슷한 실루엣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눈동자를 굴렸다 . 바삐 움직이는 지민의 눈은 거렇게도 간절했다 .


박지민
나비는 어디있어요 ?

회장
... 뭐 ?


박지민
알려주세요 .. 제 나비요 .

아빠 . 아빠아 . 제발 알려주세요 . 제 나비는 어디에 있을까요 . 제가 꼭 , 꼭 지켜주기로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 했을까봐 너무 두려워요 .

회장
하 ...

회장은 차라리 피식 웃었다 . 하 , 하하 . 한숨처럼 시작된 웃음이 실성한 듯한 폭소로 이어졌다 .

이 꼴이 되고도 . 산 중에서 총을 맞아 몇날 며칠을 혼수 상태에서 허덕이다 깨어나자마자 한다는 말이 고작 .

회장
.. 아하 . 그 자를 찾는게야 ?


박지민
네 ? 네에 ..

회장
너를 이런 죽을 위기에 처하게 한 그자 말이지 ?


박지민
아니야 .. 아니예요 .. 나비는 나를 위험하게 만들지 않았어요

회장
그렇다면 누가 너를 위험하게 만들었단 말이지 ?


박지민
제가 그랬어요 . 이 모든건 내가 자초한 일이란 말이야 ..

아빠 , 아버지 . 그 자는 잘못이 없어요 ..

제멋대로 찾아갔어요 .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제가 떠난 길이예요 .. 저를 위험에 빠뜨린건 저예요 ..

회장
.. 그 자가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니다 ?


박지민
네에 .. 네 .. 아니예요 . 나비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

그러니 얼른 알려주세요 . 그 자가 어디에있는지 . 어디로 가야 나의 나비를 만날 수 있는ㅈ ..

회장
그렇다면 참으로 안타깝게 되었구나 .


박지민
.. 네 ?

은은한 미소를 띄운 채 웃는 아비의 얼굴을 마주한 지민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 두려움을 느낀 탓에 보인 반응이었다

더이상 나의 나비를 보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서 .

회장
글쎄 .. 가는 길이 평안했어야 할텐데 ..


박지민
.....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 그리곤 흐려지는 시야에 덩달아 희미해지는 아비의 실루엣을 매섭게 노려봤다 .

회장
추위에 얼어 죽었다면 조금은 편안한 마무리였을 테고..


박지민
아 ...

회장
추위에 죽어가다 짐승의 눈에 띄기라도 했다면 ..


박지민
아니 .. 아니야 ..

회장
지금쯤 사람의 형체가 아니게 되어있겠지

자 , 우리 아들 . 어느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마음에 더 편하겠니 . 골라보련 ?


박지민
어으으 , 아아 .. 하윽 .. 아아 ...

고통에 몸부림치는 지민은 더이상 사람의 말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 바닥에 깊게 쓰러져 숨을 헐떡이는 지민을 , 회장은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

웅얼이는 입술은 여전히 나비를 찾았다 .

나비 ... 나비이 ...

목소리를 잃은 입모양이 회장은 끝끝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회장
너라도 살아 돌아올 수 있었으니 이 아비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단다 . 아가


박지민
아아 ...

회장
부디 이번 일로 깨달음이 있으리라 믿는다 .

회장
아가 , 모든 일은 순리대로 돌아가는 법이란다 .

순리 . 그 말에 지민이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 도대체 무엇이 순리이며 ,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회장
..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는 자는 .

회장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탐하는 자는 ..


박지민
아아 ......

회장
그에 마땅한 벌을 받는 것이란다 .

자신이 언젠가 나비에게 해 주었던 말이기에 더 눈물이 나는 듯 했다 .

숨이 턱 막혀왔다 . 모든 일의 시작은 나였는데

나비는 그저 나의 장난을 받아주고 나의 장난을 감당해준 죄밖엔 없는데 ..

나의 철 없던 불장난이 빛어낸 나비 효과가 . 이토록 끔찍하고 또 괴로울 줄이야 .

회장
며칠 째 눈이 그치질 않는구나 .


박지민
.....

회장
얼른 퇴원해서 돌아가자꾸나 . 따뜻하고 안전한 우리의 집으로

정신없이 내리는 눈이 창가에 내려앉았다 . 지민은 그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혹시 그 눈에 나비의 마지막 인사가 서려있을까 . 생각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