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알아보기까지
02. 사실 요즘 외로워요


민규씨를 따라 고급스러운 느낌의 파스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민규씨는 익숙하게 주문을했다. 그리고 계산까지. 처음엔 내가 낸다고 하니까 이런건 사장이 내야한다며 카드를 흔들었다.


김여주
근데 이런집은 어떻게 알았어요? 눈에도 잘 안띄던데.


김민규
저만 아는 맛집이에요. 이거봐요 여기 꽃도 올려져 있잖아요. 맛도 일품라구요~

김여주
근데...민규씨가 사장님이면 제 사정은 어느정도 알고있겠네요? 혹시...여기도 저랑 같이 왔었나요?


김민규
음...아마도요? 여주씨랑 저는 워낙 친했어서 모르는거 빼고 다 알았죠. 진짜 그정도였어요.

김여주
그렇구나...저도 너무 답답하네요. 빨리 기억이 되돌아오면 좋겠는데. 그럼 이거보다 안어색하겠죠?


김민규
억지로 기억하려고하지 마요. 나에 대해서 기억을 찾으려고 하면 머리만 더 아파질거에요. 천천히 해요. 내가 기다려줄게요. 나 기다리는거 잘 해요!

민규씨는 애써 웃는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인것 같아서 좋았다.

밥을 다 먹고 나와서 민규씨와 나는 낙엽 사이를 걸었다. 민규씨는 이리저리 여러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찍고 나는 그냥 혼자 걸었다. 이리저리 걷다보니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이런건 남자친구랑 같이 봐야하는데.

김여주
...외롭다.


김민규
네?

김여주
아, 아니에요. 가을이라 그런지 더 외로워지네요. 저 원래 외로움 같은거 잘 안타는데. 왜 여기와서 이러는 걸까요...꼭 여기서 뭔가를 했었던 사람처럼.


김민규
여, 여주씨 혹시 기억 정말 안나요? 여기에 대한?

김여주
아직 안나요...왠지 모르겠지만 뭔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려고 할때마다 머리가 정말 깨질것같아요. 기억하면 안좋은 기억이라도 있는걸까요...


김민규
제가 도와드릴게요.

김여주
네?


김민규
제가 도와준다구요. 여주씨 기억 찾게.

김여주
정말요? 진짜?


김민규
약속해요.


일단 민규씨는 나에 대해서 아는게 많으니까 훨씬 도움이 될거라고 했다. 우린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시간 될때마다 만나서 상의를 해보자고 했다. 누가 들으면 상의까지 하냐며 유치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난 정말 간절했다.

제발 모든 기억들을 다 찾을 수 있길.

계속 얘기하다보니 민규씨와 말도 잘 통하고 재밌는 사람이란걸 알게됐다. 물론 민규씨에 대한 대답은 계속 회피하는거 같았지만 나중에 더 친해지면 얘기해주겠지.

김여주
아 맞다, 저 내일부터 학원 다니려구요.


김민규
네? 갑자기 무슨 학원...

김여주
공무원 학원 있어서 거기 등록했어요! 예전엔 뭐 그리 급한일 있어서 안다녔지? 이제라도 다니는게 어디에요.


김민규
...취업 꼭 해야해요?

김여주
네? 당연하죠! 계속 이 일만 할순 없잖아요. 평생 직장도 아니고.


김민규
그쵸...그럼 내일부터 다니는거에요?

김여주
네. 민규씨도 오후에 시간된다고 하셨고...그래서 오전시간으로 끊었어요.


김민규
그럼 내일 엄청 늦게 끝날텐데요? 진짜 엄청 늦게? 나 사진 이만큼 찍을건데?

김여주
음...어쩔수없죠 뭐, 그럼 돌아가세요 민규씨.

은근 모델일도 나쁘지 않아서 행복했다. 민규씨 리액션이 귀엽다니까. 내일이면 정말 빡세질거 같으니 일찍 잠에 들기로 했다. 민규씨는 그냥 장난으로 하는 말 같았지만 설마 진짜 새벽에 끝나진 않겠지...

이른아침, 나는 어제 미리 챙겨둔 가방을 가지고 나왔다. 원래는 인강도 섞어서 듣지만 첫날이라고 학원으로 나오라고 한다. 같은 취준생 친구도 사귀고 팁도 많이 얻어야지.

학원에 도착하고 나는 짐을 풀었다. 좁은 반 하나에 자리가 정말 많은데 문화충격 그 자체였다. 쇼크였지만 그래도 멘탈을 다 잡고 내 자리에 앉았다. 내 옆자리엔 나보다 한 살 어린 남자애가 있었다.

김여주
선생님은 언제 오시지...


윤정한
그러게요...

김여주
???


윤정한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저는 24살 윤정한 입니다.

김여주
아, 저는 25살 김여주라고 해요. 그럼 아직 대학생이시네요.


윤정한
자퇴했어요. 저랑 좀 안맞는거 같아서. 여주씨 맞죠? 같은 취준생으로서 의지하면서 버텨봐요. 취준이 엄청 어렵다잖아요.

김여주
아...네!


윤정한
아 그리고 말 놔요 어짜피 누난데~그럼 잘부탁해요 누나!

얜 뭐 이렇게 친화력이 좋아. 처음 본 사람하고 이렇게 바로 말 놓는걸 안좋아하긴 하지만 낯이 익기도하고 뭐...취준생 동기있으면 좋잖아. 원래 이런 얼굴이 흔한가?

어후, 답답해. 가을이라고 환기도 안해주고 이렇게 빽빽한 곳에서 사람 꽉 차게 있는데 수업을 들으니 집중이 안됐다. 아니 내가 그냥 수업 듣기를 싫어하는 건가. 몇몇은 몰래 과자를 까먹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 무슨 여기가 학굔줄 아나...

덕분에 음식냄새는 빠르게 퍼지고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쉬는시간도 없이 수업을 해. 불만을 토했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필기라도 열심히 하며 잊어보려 했다.


드디어 끝나고 대충 이런 가정통신문을 몇개 받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였다. 아 배고파. 점심도 안주네. 얼른 민규씨 한테 전화해야겠다.

김여주
여보세요? 민규씨, 저 끝났어요! 어디로 가면 될까요?


김민규
제가 거기로 갈게요. 오늘 갈곳은 좀 멀어서 여주씨 절대 못올걸요~ 어...거기 빠리바게트 앞 맞죠?

김여주
네, 맞아요.


김민규
5분이면 가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윤정한
누나 안가고 여기서 뭐해요?

김여주
아, 나 누구기다리느라...


윤정한
누구요? 혹시...남자친구?

김여주
에이...내가 남자친구가 어딨어.


윤정한
왜요~ 누나 정도면 있을거 같은ㄷ...



김민규
여주씨, 여기에요!

김여주
아 민규씨!


김민규
얼른 타요. 오늘 진짜 근사한데 데려다 줄테니까.


윤정한
...누나 잘 가고 내일봐요!

김여주
아, 너도 잘 들어가 정한아.


김민규
정한이라고 했나...누구에요?

김여주
아 학원 같이 다니는 남자애에요. 이번에 알게됐어요


김민규
보기 좋네요 여주씨.

김여주
네? 뭐가...


김민규
여주씨 예전엔 다른 사람하고 친해지기 엄청 두려워 했잖아요. 좋다구요. 친구 생겨서.

김여주
아하하...글쎄요, 사고 한번 나서 정신 차린건가...


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보니 엄청 예쁜 호수가 있었다. 와...역시 사진작가라 그런지 위치선정 굿이네. 오늘은 그냥 호수에서 찍을거라고 했지 어딘지는 안알려주더니 이래서 안알려주셨구나. 호수가 예뻐봤자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먼 진짜 너무 예뻤다.


김민규
이제 다 왔어요. 좀 오래걸렸지만 진짜 예쁘죠? 합천호라는 곳이에요.

김여주
와...진짜 말도 안나오게 아름다워요...



김민규
여주씨 의상도 좋은데요?

김여주
하하...뭔가 롱스커트가 잘 어울릴거 같아서...



김민규
좋아요. 우선 여기서 찍어볼까요?

김여주
네! 일단...포즈는 어떻게 잡으면 좋을까요...


김민규
일단 그 사다리에 살짝 걸터 앉아서 카메라 보지말고 왼쪽으로 시선처리 하면서...아 좋아요!

위치도 좋았고. 항상 그랬듯 사진 찍는거도 좋았다. 사람도 없고 날씨도 좋았다. 그렇게 항상 똑같이 민규씨와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 우리를 몰래 보고 있는지도 모른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