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왕족 [시즌 2]

48.

사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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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으음."

잠결에 들려오는 바스락 소리에 깬 듯, 태형은 몸을 꼼지락거리며 일어났다. 약간 낮아진 기온을 느껴 제 옷을 벗어 은비에게 덮어준 태형은 가만히 앉아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막막했다.

애초에 호석이 형이 희생양이 되겠다고 했을 때 안 된다고 딱 잘라 말렸어야 했고, 예전부터 기어오르던 승우도 미루지 말고 다 처리했었어야 했다.

그낭 가만히 모닥불을 보고 있자니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닌, 그냥 겨울이 다 가기 전도 이닌 이 시점이 마치 몇 년은 흐른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모든 일의 시작은 저인 거 같아서 태형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석진이랑 이렇게 사이가 틀어졌었던 적은 또 처음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더 막막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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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 하."

마음이 걸려 깊은 한숨도 내쉬지 못하고 짧게 기침의 형식으로 답답한 숨을 뱉는 태형이다. 그러곤 가만히 은비의 머리를 정리하는 그의 손길이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그때, 태형은 제 옆에 누군가가 앉는 느낌을 받았다.

"왜 그러고 있어."

우뚝 -

주변에서 마른 짚을 끌어모으던 태형의 손이 순식간에 정지했다.

"왜 그러고 있냐고."

일순간의 정적이었다. 태형은 제 눈에 순식간에 물이 차오르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걸 닦아낼 정신은 가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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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 형... 형?"

스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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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27)

"울긴 또 왜 울어. 그렇게 무서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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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 형... 은 지금, 그걸 말, 이라고!!"

호석이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주자 그제서야 울음이 터진 태형이다. 들려오는 목소리, 보이는 미소, 느껴지는 피부의 감촉까지 다 제 형이었다. 다 호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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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내가 얼마나!!! 어!!! 그렇게, 혼, 자 가면 어떡, 하는데!!"

끅끅대느라 말도 제대로 못 잇는 태형의 목소리에 얕은 잠을 자던 모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태형을 응시한 모두는 자연스럽게 그 옆에 위치한 자를 봤고, 부드러운 미소에 다들 눈이 커졌다.

그 중에서도 석진의 반응은 태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똑같이 눈물을 쏟은 석진은 호석이 안아주며 달래자 그제야 숨을 가다듬으며 진정했다.

정호석 (27) image

정호석 (27)

"김석진 너 이렇게 많이 울 줄 아는 애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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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닥, 쳐!! 이 개,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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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27)

"..."

김남준 (27) image

김남준 (27)

"너... 근데 어떻게 이렇게... 돌아왔어? 몸은 좀 괜찮아?"

전정국 (22) image

전정국 (22)

"다친 데 있으면 얼른 치료하자. 형은 불안해서 그냥 못 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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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27)

"야, 전정국 너는 또 몸이 왜 이래?"

전정국 (22) image

전정국 (22)

"... 이건 나중에 얘기하고, 사실 우리의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은 다 형이야. 그러니까 일단 형 다친 데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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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27)

"아니. 나 눈 떠 보니까 어떤 애가 앞에서 떨고 있길래 도와줬어. 기억이 끊기기 전 마지막 기억은 계곡에서 정한이 놀아줬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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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블타병 샘플은, 언제 가져가서 먹은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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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27)

"아, 그냥... 몰라,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어."

꼬옥 -

문 빈 (23) image

문 빈 (23)

"그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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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27)

"응? 얘가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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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빈 (23)

"그냥... 그러지 말고 이제 계속 우리 옆에 있어. 우리 다 엄청 무서웠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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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27)

"아니, 뭐야... 그래 알았으니까 좀 떨어져라, 징그럽다. 근데 우리 정한이는 왜 말이 없어. 아저씨 안 반가워?"

윤정한 (14) image

윤정한 (14)

"..."

어느새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있는 정한이다. 호석을 향해 한 번 웃어준 정한은 천천히 은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무거운 숨을 내쉬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은비는 정한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제 옷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곧이어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이 끄집어졌고, 은비는 그 종이를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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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23)

"다들 대충 예상은 했으리라 믿지만 이걸 직접적으로, 공식적으로 이렇게 말한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우선 아저씨랑 누나들한테 인사드려요. 정한이에요."

김남준 (27) image

김남준 (27)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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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23)

"일단 요 며칠... 제 목소리 들어보신 분 손 한 번 들어주시겠어요."

멈칫 -

다시 한 번 뭐냐고 물으려던 남준의 행동이 허공에서 정지했다. 나머지도 다 곰곰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조금씩 생각을 거듭하면서, 서서히 얼굴색들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조금 기다린 은비는 떨리는 목소리로 종이를 계속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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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23)

"없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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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정한아... 너 그러고 보니까 요새 계속 말할 때 고개만 움직이거나 어디에 짧게 적어서 주던데 그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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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23)

"말을 못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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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27)

"...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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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23)

"남준 아저씨는 특히 더 못 알아채셨을 거예요. 제가 더 열림히 숨겼으니까요. 죄송해요, 제일 먼저 말씀드려야 하는데 제일 늦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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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23)

"제 생각에는 그냥 단순한 쇼크로 인한 거 같아요. 다들 모르셨겠지만, 인간 세계에서 잠시 지낼 때 뭐 거의 죽은 자 취급 받으며 지냈어요. 그런 거 다 처음이었고, 적응도 안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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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23)

"그래서 남준 아저씨가 다시 돌아가자고 데리러 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근데 뭐... 하교하는 길에 아파트 입구에서 남준 아저씨를 봤는데, 야단을 좀 맞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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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23)

"그 뒤로 목소리가 안 나와요. 그냥 단순한 뭐 공포 그런 거 때문인 거 같아요. 걱정 크게 안 하셔도 괜찮아요. 지금까지도 이 난리통에 말 안 하고 잘 지냈잖아요.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 저 때문에 신경 크게 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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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23)

"그냥 다들 제 곁에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이에요."

은비는 다 읽었는 지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긴 글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정신이 나간 채로 정한이만 보았다.

그중에서 가장 놀란 건 단연코 남준이었다. 내가 이 아이의 보호자인데 지금 이것 하나 잡아내지 못하고, 한 번도 도와주지를 못했다는 소리다.

절로 드는 죄책감에 남준은 정한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숙임과 동시에 툭 떨어진 눈물이 모두에게 보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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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27)

"정한아... 아저씨가 미안... 미안해... 진짜."

그때 남준이게 세상 밝게 웃어주곤 천천히 호석에게 다가가는 조그만 아이. 제 무릎에 앉으라는 정국의 말을 들어 정국 다리 위에 앉은 정한이 손을 들어 호석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 하는 행동이, 입만 벙긋거리며 입모양으로 뜻 전달하기.

다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진짜 저러는 걸 보니, 현실로 무섭게 와닿은 것 같았다. 정작 당사자는 호석이 알아들을 수 있게 열심이었지만, 나머지는 그냥 얼이 빠져 있었다.

남준은 호석과 소통하려 하는 정한을 보며 결국 눈물을 떨어뜨렸다. 저 어린 아이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을까, 놀랐을까를 생각하면 지금 자기는 죽어도 할 말이 없는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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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27)

"... 내가 눈 떴을 때 보이던 남자? 두 명인데. 아, 여기까지 같이 왔던 남자가 있냐고? 응. 착하던데. 어디갔냐고? 나야 모르지. 근데 왔던 길로 돌아가지는 않았어."

호석이 정한의 말을 알아들은 듯 대답을 줄줄이 뱉어냈다. 근데 또 미련하게 호석의 대답에 저절로 정한은 나중에 해결할 문제가 되어버렸다. 겨우 고개를 든 남준은 최대한 상황 설명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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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27)

"그러니까 그 자를 찾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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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분명히 혼자 짊어지려 할 거야. 그건 막아야 해."

정한은 옅게 미소지으며 끄덕였다. 아마 제가 전달하려 했던 뜻이 맞는 모양이었다. 언제 또 백현이 없어진 걸 인지하고 있었는 지, 남준은 저 아이가 참 기특하고도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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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가자,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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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빈 (23)

"근데 거기가 어딘 줄 알고 무식하게 출발해. 적어도 간단한 계획은 있어야 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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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원 (23)

"우리 지금 가면 밀릴 확률이 커. 다들 몸 상태를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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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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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방법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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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무슨 방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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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남준 형, 라화랑 족 형제자매 지간에서 뭐 특별한 거 없어? 신호를 주고 받을 수 있다든 지 아니면 뭐 위급 상황에 뭐가 온다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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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27)

"... 그런 건 없는 걸로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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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그럼 다른 뭐 정보 없을까? 백현 씨는 라화랑 족이야. 그리고 은비의 동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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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23)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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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인간들의 경우에는 기억이 없대. 뭔가 좀 복잡하지만 그럴 일이 있었어. 그래서 넌 백현 씨를 기억 못하지만 백현 씨는 늘 널 지키려고 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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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23)

"그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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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형... 무슨 방법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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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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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27)

"일단 다 때려치우고 한승우 집부터 가자. 거기라도 가야 무슨 답이 나오겠지. 뒤지다 보면 하나는 얻어 걸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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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 시간이 많이 없을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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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27)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지. 전정국, 몸 괜찮아?"

전정국 (22) image

전정국 (22)

"멀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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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그럼 가자."

"가서, 찾아서, 꼭 구해오자."

은비의 손을 다부지게 잡으며 일어서는 태형의 눈동자에 모두가 담겼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고통이길. 부디 백현을 구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그리고 태형이 일어서서 가자고 말하고 다들 벌떡 일어나 결의를 다지는 순간, 정한은 조용히 기도했다.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아무도 안 아프게 해주세요.

행복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전 세계에 있는 망글 다 때려박으면... 제 글 될 것 같아요... 이 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