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왕족 [시즌 2]
51.



"폐하."

하얀 가운을 적당한 길이로 두른 자, 궁의 의사를 맡고 있는 뱀파이어였다. 몇 년간 이 세계에서 일절의 반박 없이 최고의 의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의 입이 살짝씩 움직이며 태형을 불렀다.


김태형 (25)
"... 아, 네."

태형의 눈은 초점이 흐릿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신을 놓을 것 같은데,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 태형은 누구보다 강해져야 한다. 그걸 태형은 제 스스로 잘 알고 있었고,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형들, 정국이, 정한이는 어떻게 전투를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시 지금 위험한 상황은 아닐까. 숲을 달리고 달려 우여곡절 궁으로 도착하자 마자 수많은 하인들에게 호위를 받으면서도 입을 쉬지 않고 움직여 갖가지 명을 내린 태형이다.

그 중에는 당장 군사들을 파병시켜 석진 일행을 도우라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바로 찾은 자가 바로 의사. 긴 말, 설명 따위는 모조리 잘라먹은 태형은 곧바로 의사에게 수술을 명했다.

무조건 살려내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자는 살려야 한다는 거.

태형 제 스스로의 생각에도 주축이 많이 흔들리는 명령이었다.

큰 소란은 다행이 일지 않고 바로 백현의 수술은 집도되었다. 수술실 문이 닫히는 것까지 확인한 태형은 바로 말 없이 기력을 다 소진해 쓰러지기 직전인 은비, 예원, 빈을 방에 눕혔다.

은비가 일어나면 왜 이런 순간에 재웠냐고 난리를 칠 것 같았지만, 지금 얘들을 그냥 두었다가는 진심으로 백현이 생명이 위독해지는 순간에 먼저 하늘로 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강행한 거였다.

그렇게 온 몸에 생채기를 내고 피를 흘겨가며 달려온 이 자리인데, 애들은 아직 죽은 듯 쓰러져 자고 있는데. 왜 제 앞에 선 의사는 저에게 한없이 흔들리는 목소리를 선사하고 있는가.


김태형 (25)
"..."


김태형 (25)
"말씀... 하십시오."

"그, 그것이... 말씀드리기 송구스러워서 차마 입에 담질 못하겠사옵니다."


김태형 (25)
"괜찮습니다."

아니, 태형은 지금 전혀 괜찮지 않았다. 오히려 심각한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혼자 백현의 소식을 감당하라니. 태형은 지금까지 꿋꿋하게 버텨온 자신이 신기할 정도로 갑자기 자신감이 확 떨어졌다.

눈앞에 서서 천천히 말을 꺼내는 의사의 입이 보였다. 정신에 이상이 생긴 걸까. 갑자기 주위가 아득해지며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근데, 사방이 막힌 듯 어지러운 와중에 왜 저 입 모양의 글자들은 선명하게 잘 읽히는 걸까.

그것도 하필이면 끔찍한 내용으로.

'백현 님... 방금 전에 몸의 균형이 완전히 깨어져 사망하셨습... 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폐하.'

이것이 태형이 읽어낸 입 모양이었다.

그렇게 읽는 스스로가 미웠던 태형. 의사에게 다시 말해달라고 요청한 그는 정확하게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왜, 한 토씨도 틀리지 않고 다 맞춘 걸까.

쿠구궁-!!!!!

천장에서 거대한 소리가 나며 사방이 슬슬 돌가루로 지배되기 시작했다. 아찔하게 스쳐가는 돌맹이들에 석진의 일행은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천장의 가운데가 슬슬 무너지고 있었다. 그것도 꽤나 큰 금이 그어져서.


정호석 (27)
"... 얘들아."


김남준 (27)
"저거, 오래 못 버텨."


김석진 (27)
"기적적으로 길어야 5분이겠지. 대충 가봐야 3분이 최대야."


전정국 (22)
"형들, 저거에 안 깔리고 싶으면 여기서 당장 나가야 해."


김석진 (27)
"그걸 누가 몰라서 이러냐, 우리 여기서 나가는 즉시 밖에 대기타는 얘네 병력에 그대로 총살이야. 쥐도새도 모르게 죽을래?"


전정국 (22)
"농담이라고 하자."


김석진 (27)
"아주 재밌네."


김남준 (27)
"나가서 싸워라, 지금은 그냥 정신 붙들고 나가야 될 것 같다."


정호석 (27)
"응, 나가자. 나가다 보면 또 길이 열릴 거다. 정한아, 아저씨 손 잡, 정한아?"


김남준 (27)
"윤정한!!!"

스르릉 -

승우의 손에 들린 붉은 불길을 반사시키며 번뜩이는 칼날. 온통 피투성이로 인간의 모습을 한 정한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목에 들여지는 차가운 느낌에 떨고 있었다.

아마, 늑대로 싸우다가 기력이 다 해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일 거다. 그 말은, 정한의 체력이 거의 다 떨어져가고 있다는 거겠지. 저 상태면 위험하다.


김석진 (27)
"... 한승우, 정한이 내려놔."

한승우 (27)
"네가 여기로 온다면 생각해보지."


김석진 (27)
"내려 놓으라고!!!"

한승우 (27)
"네가 오거나, 김남준이 와라. 둘 중 하나는 와야 얘를 살릴 수 있을 거야. 아, 전정국이랑 정호석 중 하나가 와도 좋아."


김석진 (27)
"뭐?"


김남준 (27)
"정한이 내려놔, 두 번 이상 말 안 한다. 걔는 내려놓고 말해. 어린 애잖아. 어린 애까지 인질로 붙들면서 비열하게 싸우는 놈이었나, 네가?"

한승우 (27)
"권력만 내 손에 들어온다면 상관 없다."


김석진 (27)
"정한이 내려놔!!!"

한승우 (27)
"그 말 이미 충분히 들었고, 나도 충분히 대답한 것 같은데."


정호석 (27)
"너희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나? 폐하께서, 김태형이 가만히 있을 거 같아?"

한승우 (27)
"당연히 아니지. 그래서... 같이 살거나, 같이 죽거나. 나는 둘 중 하나다."

정한의 목과 살짝 떨어뜨려뒀던 칼날을 살에 붙였다. 정한의 차가워진 표정이 한눈에 읽혔다. 순간적으로 남준은 몸을 움직였다. 저 아이를 구해야 했다. 더 이상 상처를 줄 순 없다.


정호석 (27)
"김남준!!!"

하지만 곧 저를 꽉 붙잡는 호석에 남준은 더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 지금 정한을 구하겠다고 가면 자기 스스로 불길로 들어가는 꼴이 되는 거였다. 거대한 불길 너머에 승우에게 잡혀 바들거리는 정한이 있었다.

지금 안 구하면 저 아이는 정말 죽는다. 남준은 쉽게 불길로 던지지 못하는 제 몸이 미치도록 답답했다. 이제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정한아, 제발.

한승우 (27)
"... 선택의 시간은 충분히 준 것 같군."


김석진 (27)
"그만둬!!!"

한승우 (27)
"김태형을 증오한다. 그래서 내가 꼭 처단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지금까지 그 일을 벌였는데, 역시 한 세계의 왕은 단단하고 강하구나."

잠시 주위를 휭 둘러보던 승우가 샐쭉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한승우 (27)
"그래도 폐하의 측근들은 그렇게까지 정신력이 강하지 못하더군. 특히 김남준 넌 이 아이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져. 본래 너의 이성을 잃을 정도로."

스릉 -

정한의 목에 굵은 핏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몸이 피투성이인 탓에 잘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그 뿐이지 주르륵 피가 흘러내리는 건 다 느껴지고 보여졌다.

한승우 (27)
"... 그래서, 난 결정했다."

한승우 (27)
"김태형 측근을 없애거나, 김태형을 없애는 짓은 하지 않을 거야. 대신에, 김태형의 측근에게 고통을 선사하지."

한승우 (27)
"제일 가까운 자 중 한 명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걸 보면, 김태형도 미치도록 괴로울 거니까."

한승우 (27)
"안 그래?"


전정국 (22)
"정한아!!!!!"

쾅-!!!

"왕자님이랑 총리님 여기 계신다!!!"

한승우 (27)
"... 하, 지민."


박지민 (25)
"예."

촤광-!!!!!

"아아악!!!"

"야, 김남준 잡아!"

"김남준, 그만해! 일단 정한이 옮겨야 한다고!"

"형, 정한이 누르지 마! 위험해!"


어제 여러분들이랑 저 500일이었습니다 :) 제 시간에 못 와서 죄송해요 ㅠㅠ 정말 저와 500일이란 시간을 함께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방학인데 자주 못 와서 미안해요 ㅠㅠ)

오늘 내용... 이따구여서 더 죄송합니다... (도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