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다.

04 | 너 하나 잠깐 없어진다 해도

김태형. image

김태형.

그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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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나에게 다른 마음을 품어도 좋다는 뜻이다.

오늘 처음 만난 그를 왜 그렇게 잡고 싶은것일까. 아직 확실치도 않은 마음이었지만 분명 신분이 바뀌었음에도 나의 옆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는 설을 질투한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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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전 아가씨를 호위하는게 일입니다. 그 이상의 마음을 품어선 안됩니다. 그럴일이 생길일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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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그럼 왜 설이랑은 그렇게 붙어다니는것이냐. 넌 나를 지키는 역할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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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저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혼자 외롭던 궁에서 그나마 저와 말을 할 수 있는 상대였습니다. 혹시 불편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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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난 너에게 그렇게 편한 존재일 순 없는것이냐.

내가 만약 신분을 속이지 않은채, 지안아가씨의 시녀였다면 그가 나를 조금 더 바라봐줬을까? 난 사랑을 받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어서 이런짓까지 벌였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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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아니다 그냥 가보거라. 오늘 좀 예민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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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오라버니,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것입니까? 표정이 안좋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에 잠을 설친 설은 조금씩 걷다 어제 얘기를 나눴던 벚꽃나무 아래서 태형이 한숨 쉬는것을 보자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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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설아, 만약 누군가에게 계속 관심이 가고 떠오르는것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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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정녕 몰라서 물으시는것입니까? 사랑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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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사랑이라.. 만난지 별로 지나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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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랑이라는 답에 도달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문제는 태형이 연모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말에 지안언니가 떠올랐을뿐. 아니겠지 싶었지만 최근에 만난 사람이라면 지안언니가 가능성이 가장 높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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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오라버니, 혹시 연모하는 사람이 있는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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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네 말이 맞다면 누군갈 연모하게 될 듯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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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누군지 묻진 않겠습니다. 이후에 그 분과 좋은 사이로 발전한다면 그때 저에게 살짝 귀띔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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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왜 그리 뚱한 표정인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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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상관쓰지 마시지요. 근데 계속 여기 있어도 괜찮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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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아.. 이따보자 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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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누구일까.. 태형오라버니가 연모하는 사람이..

첫눈에 반했다라는 말은 종종 쓰이진 않는다. 첫눈에 사람을 사로잡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태형과 설은 첫눈에 서로를 끌어당겼다. 언제나 붙는 N극과 S극처럼. 그 둘만 상대방이 누굴 좋아하는지 모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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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어디 있었던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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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아.. 설이와 잠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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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나를 지키는게 의무라 하지 않았느냐. 근데 왜 매번 너의 입에선 설이의 이름만 나오는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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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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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그냥.. 날 조금만 더 신경을 써달란 뜻이니 안좋게 받아들이지만 말거라

어제 태형의 생각에 잠도 못잤는데 그가 날 보러왔을땐 기분이 좋아보였다. 근데 또 설이와 있어 좋았던 것이다. 나와 있을땐 한번도 웃질 않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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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혹시 연모하는 사람이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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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갑자기 이런 질문을 왜 하는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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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친해지려면 이 정도의 대화는 가능하다 생각했는데 아닌가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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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아닙니다. 모르고 있었는데 오늘 알았습니다. 연모하는 여인이 생긴듯 합니다.

그의 말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설이겠구나. 어떤 옷을 입든 무슨 신분이든 주연은 어디서나 튀었다. 주연이 되고 싶어 소중한 사람을 잃어가며 쟁취한 자리였는데. 어째서 난 노력할수록 더 초라해지는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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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아가씨는 연모하는 분이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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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있지만 그는 날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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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저 또한 연모하는 상대가 절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 그게 너무 신경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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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만약 네가 연모하는 상대가 너에게 별 생각이 없다면 넌 어쩔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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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절 싫어하는것은 아니라면 그녀의 옆에 머물고 싶습니다. 만약, 싫어한다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접는게 옳은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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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주변도 둘러보면서 그녀에게 다가가야 하지 않겠느냐. 주변에 너를 바라봐주는 상대가 있을 수 있으니.

나를 봐달라는 말이다. 제발 나를 좀 신경써주고 봐달라고. 매일을 사랑받던 설이와는 달리 난 매번 누군가를 챙겨주는 입장이었다. 태형이 나가고 밤이 찾아왔다. 여러가지 생각으로 잠이 오지 않자 설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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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설아, 잠이 안와서 그런데 이 책들을 찾아줄 수 있겠느냐.

결국, 설에게 해서는 안될짓을 하려한다. 과거 어두운곳에 혼자 갇힌 아가씨가 얼마나 어두운걸 무서워했는지 잘 알기에. 내가 빛나지 못하게 막는것에 대한 소심한 복수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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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너 하나 잠깐 없어진다 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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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책이 굉장히 많구나..

지안언니가 말한 책들을 다 찾고 나가려 문고리를 열었지만 문고리는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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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어..? 이게 왜 이러지 밖에 누구 없습니까? 안에 사람이 있습니다.

어두운 공간속 나를 비춰주는건 조금한 불빛 뿐이었다. 밤이라 그런지 너무나 춥고 무서웠다. 왜 아무도 없는것일까 계속 외쳐봐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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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제발 누구라도 와주십시오.. 너무 무섭습니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계속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달라고 울고 있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문을 열다 지쳤는지 문 옆에서 잠이 들어버린 공주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

계속 들려오는 여자아이의 목소리와 깨질것처럼 아파오는 머리에 손으로 귀를 막고 있었다. 그 아이의 소리침을 듣고싶지 않았다.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결국 나도 모르게 울다 지쳐 잠이 들었을때일까 누군가 문을 열었다.

갑자기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조금씩 뜨니 나의 눈 앞엔 태형 오라버니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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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태헝 오라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