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를 잘못 했을 때
02| 너의 비겁함을 미워했다


빙의를 잘못 했을 때_by.공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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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욱-! 푸우욱-!

한 걸음 뗄 때마다 물을 잔뜩 먹은 신발이 푹 꺼지는 소리를 내며 머금었던 구정물을 토해냈다 그게 너무 찝찝해서 괜히 짜증이 났다.


서여주
" 하...찝찝해 뒤져버리겠네 "



최연준
" ...신어. "

..짜증나.

그래 이 소설을 읽을 때마다 유일하게 여주의 곁을 지켜주었던 남주 최연준은 늘 이렇게 느려터졌었다 단 한번도 제때 와 주지 않았으면서

그러면서 내미는 그 한가닥의 희망고문이 서여주를, 그리고 나를 얼마나 미치게 했는지 너는 알까.

아무 대꾸도 않고 몸을 숙여 신발을 갈아 신겨주려는 그를 무시하며 앞만 보고 걸었다 이제부터 그가 내게 주는 그것들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게 마음을 틀어쥐며 넘기려고 했다

적어도,


최연준
" ....미안해. "

그 이기적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서여주
" 너 진짜 최악이구나 "


최연준
" ...... "

책으로 보기만 했을 때보다 더 최악이었다 최연준은.

소란소란- 도란도란-


최연준
" 좀 있다가 들어 가. "


서여주
" 비켜. "


최연준
" 지금 들어가지 말라고. "

드륵- 아-


장원영
" 진짜 언제 퇴학되냐 서여주 "


이현서
" 돈많은 애들 잘도 꼬셔서 여태 거머리마냥 붙어있는 거 존나 X같다니까 "


한서원
" 너무 그러지 마 얘들아 "


장원영
" 하여튼 울 서원이는 착해서 탈이야 "

나의 지옥이 그 작은 틈새 안에서 새어들었다 너는 이 모든 것을 알면서 나를 막아섰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또 한번 무너져야 했다


서여주
" 내가 도망치길 바래? "


최연준
" ...저런 말 듣지 않길 바래 "


서여주
" 그랬으면 막아서지 말았어야지. "

단 한번이라도 막아서지 말고, 도망치라고 하지 말고 그냥 뒤에 있어줄 수는 없었는지 네 비겁함에 질책을 던졌다


최연준
" 저런 말들이 널 얼마나 다치게 할 지 아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


서여주
" 지금 니가 날 더 아프게 해 "

터벅 터벅- 탁-!!


최연준
" 서여주 "


서여주
" 놔. 나한테 손 대지 마 "


최연준
" ...미안해. "


서여주
" 뭐가 미안한데? "


최연준
" 다...전부 다 미안해. "

[너에게 닿기를]에서 서여주는 최연준을 많이 좋아했다 차가운 얼굴 속에 숨긴 다정함을 좋아했고, 가끔 보여주는 작은 미소를 좋아했다.

그래서 제 세상이 무너졌을 때 좋아한만큼 딱 그만큼 서여주는 최연준을 미워했고,


서여주
" 세상이 무너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아? "


최연준
" .......... "


서여주
" 모르겠지 네 세상은 늘 꽃밭이었으니까. "

한번도 햇살이 진 적도, 수없이 많은 비가 쏟아진 적도 없는 아름다운 꽃밭만 보았을 네가 어떻게 알겠어


서여주
" 근데 난 그 꽃밭 필요없어 "


최연준
" 여주야 나는, "


서여주
" 내 꽃밭은 내가 가꿀 거거든 "

나는 그 비겁함을 미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