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를 잘못 했을 때
04|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


빙의를 잘못 했을 때_by.공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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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서여주란 인간이 알고있던 세상은 전부 무너졌다

그날의 모든 것이 두려움이란 것에 먹혀 흐릿했지만 모두의 뒤에 숨어서서 환하게 웃던 서원의 얼굴만큼은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서여주
" 내가 아니야 제발 믿어줘..!! "

매달렸다 아니 더 보일 밑바닥도 없을만큼 간절하게 애원했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온 건 경멸어린 표정과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불신 뿐이었다.


장원영
" 우리도 아니라고 믿었어 네가 그럴리가 없다고 "

거짓말,


이현서
" 널 믿었는데 어떻게 이래 "

거짓말,


최수빈
" 너 진짜 최악이다 서여주 "

모든 게 다 거짓말이었다 그들에게 나는 단 한번도 친구였던 적이 없었고 그저 딱 이만큼 그렇게 가벼운 존재였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그들은 몰랐다 한서원이 그 예쁜 미소 뒤로 어떤 얼굴을 감추고 있는지 그리고 나도 몰랐다 그녀가 왜 어떤 이유로 나를 갉아들려는 것인지


서여주
" ....내가 미안해. "

그저 찌질하고 못나게 나의 평온을 구걸할 뿐이었다


한서원
" 흐...여주야 이러지 마... "


장원영
" 야 서여주 너 진짜 미쳤구나? "


이현서
" 우리가 요즘 너무 잘 대해줬다니까 "


최수빈
" 저 X년이 "

그렇게 구걸한 평온은 오래가지 못했다

너는 기어이 내 행복을 다 빼앗고야 말겠다는 듯이 말간 얼굴로 나를 궁지에 몰아넣었고 나는 그렇게 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너를 괴롭힌 나쁜 아이가 되어버렸다


최수빈
" 너 당장 서원이한테 사과해 "


이현서
" 지금 사과 안 하면 우리 다시는 너 안 봐 "

있잖아,


최연준
" .......... "


서여주
" !!..연, "


있잖아 세상이 무너졌을 때 드는 절망이 사람을 어디까지 떨어트리는 지 알아?

널 보고서야 알았어 보고도 모른척,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거 그게 잘 안 돼서 그날 그 순간 내마음은 온통 지옥이 되어버렸어 연준아.


서여주
" ....미안해. "


한서원
" 으응....? "


최수빈
" 목소리가 그래서 들리겠냐? "


서여주
" 미안해 서원아 내가 잘못했어 "

나 네가 너무 미워.

이른 아침의 찬바람이 머리칼을 스쳐갔다 몰랐는데 여기 꽤 높고, 많이 추웠네 하늘 아래도 추울까

상처투성이가 된 몸, 다 난도질 당한 교복에 그 위를 덮은 신발자국들 그리고 온몸을 타고 흐르는 쾌쾌한 구정물까지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였다.


서여주
" 푸하- 찌질하게 울고 그러냐 서여주 "

더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살아야 할 이유도 잊었고 왜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도 알지 못 했다 아무것도 모른 체로 내던져진 지옥은 열여덟살 짜리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다


서여주
" 단 한번만이라도.... "

부질없는 미련이었다 그 얇디 얇은 한가닥의 미련이 그렇게 나를 스쳐갔다



한서원
" ...... "

내 남은 자리에 너의 행복이 넘치고 있는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