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53분만 기다리는 너와 나
03. 5시 53분의 규칙

약속은 분명했다. "XX동 근처 놀이터"
그 말은 전화 속에서 분명히 오갔다.
하지만 채연은 놀이터에서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끝났다면, 단순한 장난 전화 또는 오류로 넘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날 밤, 채연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계속 같은 생각이 맴돌았다.
'왜 아무도 없었지?'
'아니, 정말 올 수 있었을까?'
상대는 분명 "지금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채연은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아주 단순한 질문 하나에 가로막혔다.
'만약 그 사람이 정말 존재한다면, 왜 우리는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없었을까?'
그때부터 모든 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오후 5시 52분 _
채연은 무의식적으로 공기계 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강채연 (18)
설마 또 오겠어...
그렇게 생각한 순간,
띠리리리리링 -
이번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했다는 듯, 숨을 삼켰다.
05:53 PM
시계는 정확히 5시 5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강채연 (18)
...여보세요.
??
어제 왜 안 나오셨어요?
상대의 목소리는 어제보다 또렷했다.
불만이 섞여 있었고, 약간의 당황도 느껴졌다.

강채연 (18)
저는 나갔어요.
채연은 즉시 말했다.

강채연 (18)
XX동 놀이터에 있었어요. 아무도 없었구요.
잠깐의 침묵.
??
...이상하네요.
??
저도 거기서 한참 기다렸는데요.
그 말에 채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강채연 (18)
혹시...

강채연 (18)
지금 날짜가 어떻게 돼요?
상대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
...2025년 3월 4일이요.
그 순간, 채연의 숨이 멎었다.

강채연 (18)
...지금은 2026년 3월 4일이에요.
정확히 1년 차이.
하루도, 한 시간도 아닌 딱 1년.
??
그럼.. 어제 우리가 못 만난 게.. 서로 다른 시간에 있었던 거네요.
상대가 먼저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분명한 떨림이 있었다.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아떨어졌다.
현재에 있는 채연이 아무리 그 자리에 가도 과거의 상대는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상대가 아무리 기다려도 현재의 채연은 그 시간에 있지 않다.
이 약속은 처음부터 성립될 수 없었다.
05:54 PM
뚝 -
통화는 정확히 1분 만에 끊겼다.
어제와 똑같았다.
05:52 AM
그날 새벽, 채연은 잠에서 깼다.
시계는 오전 5시 5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가슴이 이상하게 뛰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공기계 폰을 쥐었다.
05:53 AM
띠리리리리리링 -
오전 5시 53분 _
전화는 또다시 울렸다.
이번엔 둘 다 동시에 확신했다.

강채연 (18)
지금.. 또 5시 53분이죠?
??
....네.
짧은 대화 속에서 규칙이 선명해졌다.
1. 통화는 오전 5시 53분, 오후 5시 53분에 걸고 받을 수 있다.
2. 하루 2번만 통화할 수 있다.
3. 연결 시간은 정확히 1분
그 외의 시간에는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리 걸어도 연결되지 않았다.
??
그럼.. 제가 과거에 있다는 건가요?
채연은 대답 대신 어제 자신이 나갔던 놀이터를 떠올렸다.
그리고 오늘도 어제도 변하지 않았던 풍경을.
채연은 조용히 말했다.

강채연 (18)
그래서 못 만난 거예요.

강채연 (18)
..서로 다른 시간에 있었으니까요.
통화 시간이 1분이 다 되어가기 직전, 상대가 급하게 물었다.
??
그럼.. 당신은 누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