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로잡히다 (14) 취중 진담
아침이 되니 전정국이 난리 났다.
"야 흑해주, 너 내 방에 들어왔었어?"
"어, 근데?"
"니가 이거 만졌지??"
"맞는데? 왜? "
"너 이거 확실한 거야?"
전정국이 아침에 버럭 문을 열며 들어오더니 말을 다다다다 쏴붙이기 시작했다.
"그냥 내 예상.... 정확한 건 아니야."
그러니까 내 예상이라 함은, 오소리 뒤에 배후 세력이 있다는 것. 오소리끼리만의 공조는 아닌 것 같단 부분이었다.
한달에 한번씩 있는 정기모임.. 몇차례 모임에 가고 나서 느낀 것은 아 여기 오소리만 있는 게 아니다. 사냥을 공모하는 사람들 간에 느껴지는 이질감이었다.
처음에는 사회의 장래 유망하거나 사회적 권위가 있는 오소리들의 모임이라기에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정기 모임에서는 자신의 외현화된 모습이 무엇인지 아무도 밝히지 않았기에 정말 이사람들이 모두 오소리인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아 이상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뭔가 서열이 있었다. 그리고 자주 나오지 않는 인물 중에 오소리들의 위에 있는 누군가가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그런데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정국은 나에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런 것 같아? 뭐 근거가 있어?"
"그게... 나도 설명하기가 어려워.. 거기서 1년 간 사람을 만나보고 느낀 점이야.
우린 사실 중종 사이에서는 서열이 그닥 높지 않잖아. 오소리가 상위포식자이기는 해도 사자나 곰 같은 종들에게 완전히 밀리니까...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오소리 위에 군림하는 누군가가 있어.. 직접 만나보지 못했지만, 사냥 날짜 같은 게 그 사람에 의해 정해지는 것 같아"
"그렇군,,,"
어느새 나는 정국이와 방에서 인물 관계도를 자세히 살펴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보아하니 정국이도 몇몇 오소리들을 잡아들이긴 했지만 심부름꾼 같은 사람들이어서 심문해 봤자 내가 가진 정보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번에 내가 현장에 갔다면,
그 사람을 만났을지도 모르지..."
내가 아쉬운듯 말하자, 정국이 내 머리에 손을 앉더니 꾹 눌렀다.
"아씨 뭐야!!!"
"헛소리하지마.
나한테 잡히는 바람에 좀 괴롭긴 했겠지만,
안 간 걸 다행으로 여겨"
정국의 말이 맞는 것 같아서 더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왠지 시무룩해있는데 정국이가 차라도 한잔 하자며 거실로 불렀다.
"차 대신 나는 술 한 잔이 좋은데... ㅋㅋㅋㅋ"
내 말에 정국이는 씩 웃더니 맥주를 꺼내왔다. 땅콩에 따뜻하게 구운 먹태를 곁들이니, 근사한 맥주 안주상이 완성 되었다.
"너 진짜 센스있다... 난 집에서 그냥 과자에 맥주 마시는데..."
"기왕 먹는 거 제대로 먹어야지...ㅋㅋㅋ
난 먹는 데에 진심이거든~"
"그러고 보니 너, 왜 자꾸 나한테 현장에 가지 말라느니 첩자는 그만두라던지.. 하는 거야?
너 입장에서는 내가 더 많은 정보를 가져오면 좋은 거 아냐?"
"뭐 경찰로서는 그렇긴 한데,
왠지 니가 그 자리에 썩 잘 어울리는 것 같진 않아서.."
"웃기네, 니가 날 뭘 알고..."
"넌 주변에 걱정해 주는 사람도 없냐..? 솔직히 위험하잖아..?"
"그치 위험하지, 근데 안타깝데도 걱정해 줄 사람이 없다.
남자친구는 석사생이 된 이래로 사궈어본 적이 없고,
너무 공부만 해서, 베프도 없고...
그리고 가족은.. 없어.. 나 혼자야."
뭔가 말하다보니 기분이 참 씁쓸하다. 나 참 없어보이네...
고개를 들어 정국을 보니 뭔가 당황한 것 같기도, 안타까운 것 같기도.. 아 그런 표정 싫은데.. 동정받는 것 같잖아.
"그러고 보니, 너도 가족을 잃었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솔직히 난 부모님이 안 계셔... 솔직히 난 예전에 장학금 신청할 때도, 학교에서 뭔가 할 때도 하도 이야기했던 부분이라 너처럼 욱한다던지, 슬프다던지 하는 감흥은 없어. "
"아 그래... 그랬구나..."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 살해당했어. 현장에서 오소리가 범인인 것 까지는 확인했는데, 도주했기 때문에 이유를 몰라.
나도 참 상황을 이해해보고 싶었지만 왜 그랬는지, 무슨일이 있었던 건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아무리 답답해 봐야 바뀌는 건 없더라고..
이후에는 성적과 관련된 장학금을 따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기 때문에, 죽어라고 공부만 하면서 지냈어. 덕분에 친구도 없고.. 성격만 더럽게 컸지. ㅋㅋㅋㅋ
그나마 학교 선후배정도가 시덥잖은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이야.. 밥도 같이 먹고 고민도 좀 나누는 정도..? 그 사람들도 내 본 모습은 잘 몰라. 뭐, 보여준 적이 없으니까 모르겠지...
그러고 보니 너한테는 희한하게 내 본색을 참 많이 보여줬네.. 워낙 극적으로 만나서 그런가...?
그너저나 너는? 너도 가족을 잃었다매...?"
정국은 내 말에 조용히 맥주를 한 보금 삼켰다.
"난 아버지가 실종되었어.
왠지 오소리들에게 납치 당한 게 아닐까 추측 중이야.
우리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몸이 불편하셨었거든, 아무래도 그래서 표적이 된 게 아닐까 싶어.
오래 뒤에 아버지의 DNA가 사냥 사건 현장에서 발견됬었어. 그래서 더욱더 이 일에 매달리게 되었지."
"원래 피해자 가족은 수사팀에서 빠져야하는 거 아니야?
너도 참 피곤하게 산다."
"그런 게 아니라..
이미 내가 수사팀에 들어간 이후에 밝혀진 거여서..
내가 어떻게든 남겠다고 윤기형에게 빌었어.
윤기형 알지..? 그때 너랑 같이 있었던 수사팀장..
내가 그동안 세운 공적도 있고 해서 다행히 아직 빠지지 않고 남아있어. 형은 나가고 싶으면 언제든 나가라고 했지만, 절대 안 나갈 꺼야.
내가 다 밝혀낼 꺼니까.."
"그러니까.. 전정국, 너 힘든게 산다는 거야... 밝혀서 뭐하냐...? 살아서 돌아오지도 않는데... 차라리 잊어.."
힘없는 내 말에 정국이 표정이 굳었다.
아, 내가 말이 좀 심했나..?
"너도 범행 동기를 몰라서 답답하다고 하지 않았어?
난 다 밝혀내고, 더이상 그런 피해자가 없도록 할 꺼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너도 솔직히, 어떤 면에서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잖아. 스파이까지 자처하면서 말이야.."
"나야 뭐.. 우연히 얻어걸렸으니까 기왕이면 이렇게 된 바에는 다 부수고 싶어진 거지..
어떻게 보면 알고 싶지 않았던 부분인데, 알게 되었으니.. 내가 알게 된 것을 마땅히 처리하고 책임지고 싶은 거야.
마냥 그 모임에 생각 없이 나갈 수는 없었다고...
이제와서 빠져나가기도 애매하고.."
"알게 된 것을 마땅히 처리하고 책임진다라...
뭔가 학자다운 말이다ㅋㅋ"
"뭐래..
여튼 이게 다 김석진 서장의 영향이 있어. 내가 석사 때 연구실에 자문을 받겠다고 찾아오는 바람에 많이 만났던 분이기도 하고 ..
성정이 바른 분이시더라고.. 그땐 밥도 많이 사주고 고민도 많이 얘기했었는데.. 진짜 믿고 따를 수 있는 어른 같았어...
작년에 다시 만난 김석진 서장은 뭐랄까.. 좀 권위적으로 바뀌었더라... 원래는 더 다정한 분이었던 것 같은데.."
"뭐 서장이라는 위치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마음은 바뀌지 않으셨을 거야..."
정국은 내 어께에 손을 얹더니 위로해주듯 도닥였다. 짜식.. 고맙네.. ㅋㅋㅋ 에휴 나도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이후로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 새끼는 요 며칠 왜이렇게 다정하게 구는 건가.. 외로운 사람 마음 홀리게... 내가 되게 외로운가 보다 싶었다.
"야, 전정국, 너 어느쪽이 니 본체냐?
으르렁 거리다가 갑자기 다정해지니까 어색하잖아~~"
"그게 중요해? "
어느새 정국이 성큼 다가왔다. 하.. 녀석, 키 되게 크다..
그 녀석을 의식하는 순간, 가슴이 순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 망할 놈.. 정신을 진짜 못차리겠잖아.. 내가 맥주 몇 모금에 취할 사람은 절대 아닌데.. 지금의 두근거림은 호감인 걸까...
내가 미쳤지 나흘 전 만 해도 내 목을 문 뱀새끼인데.. .. 슬쩍 상황을 피하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정국의 양 팔안에 가두어져 있었다. 정국의 얼굴이 다가오자 나는 뒷걸음 쳤다. 하지만 금새 등 뒤는 벽이었다.
"이번에는 도망 안 갈꺼지?"
정국의 말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정국은 그런 날 보더니 쓰윽 웃고는 입술을 맞붙였다. 흐헙... 그의 입술은 달콤했다. 얘는 왜 이렇게 쓸데 없는 것 까지 잘하는 거야.. 가슴이 너무 콩닥거려서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얜 킹코브라가 아니라 능구렁이가 아닐까... 아직 얘한테 넘어가고 싶지 않은데.. 마음은 여전히 망설여졌지만, 몸은 그러질 못했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맞붙이고 정국의 목에 팔을 감았다.
아 전정국은 진짜 교활한 녀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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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작가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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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머릿속에 지진정 (2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