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issant de lune

__1942년 3월 31일
지민은 저가 머무는 여관 옥상에 앉아 있었다. 그믐달과 손목시계를 번갈아 보고 시각을 확인한 그는 여관 옥상에서 내려와 종로로 걸었다. 지민은 신발을 벗고 휘청거리며 큰 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영락없는 술 취한 한량이었다. 행인들은 쯧쯧거리며 그를 흘겨볼 뿐 달리 무언가 의심하는 구석이 없었다. 그렇게 종로의 거리를 걸어간 한량은 곧 미라보 호텔이라 적힌 곳에 다다랐다. 그의 눈빛이 바뀌더니 지민은 안으로 들어갔다. 호텔 안은 적막만이 감돌았다. 지민은 현관 앞에 선 직원을 쳐다보았다. 그를 발견한 직원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


“박지민. 맞으십니까?”
“그렇소. 내 주인장에게 따로 예약한 것이 있어 왔는데.”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여직원이 다른 방으로 들어가더니 다시 나왔다.


“들어오시랍니다.”


지민은 여직원의 안내를 따라 긴 통로의 복도로 들어갔다. 여직원은 또 다른 복도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추었다.


“여기서부터는 저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고맙소. 나 혼자 들어가지.”


얼마나 걸었을까. 복도 끝의 방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누구요?”


노크 12번.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민은 다시 심호흡을 한 후 입을 열었다.


“나요, 동지들.”


문이 열렸다. 지민은 픽 웃었다. 벽난로 가까이에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지민은 두 팔을 벌리고 크게 미소 지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벽에는 태극기 위에 빨간 인주로 찍은 손바닥들이 보였다. 정확히 10개였다.


“모두 여기 모여 계셨구려.”


다들 차례로 일어섰으나 몇몇이 보이지 않았다. 지민이 의아해하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남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지민이 다시 날카로운 눈으로 단원의 수를 세었다. 여전히 그 자신을 포함하여 일곱이었다. 지민이 더욱 심각한 표정으로 남준을 다시 노려보자 태현이 일어섰다.


“월송 동지와 전 동지는 아직 만주에 계십니다. 군을 방치할 순 없으니까요.”
“그래도 한명이 남는데?”
“어이, 말모이. 좀 진정하지 그래.”


지민이 당장이라도 총을 겨눌 듯한 눈으로 모두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 순간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렸다. 비에 흠뻑 젖은 코트를 신경질적으로 벗어던진 남자는 젖은 머리칼을 털었다. 카펫에 빗물이 잔뜩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지민이 반가워하며 연준에게 다가왔다. 아까의 형형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어, 이게 누구신가. 우리 ‘지붕 위 암살자’ 아니신가.”
“밖에 비가 오더군.”


연준이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연준이 팔짱을 끼며 벽난로 옆자리에 앉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연준은 잠시 시선의 연유를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얼마 후 아- 하고 짧게 소리를 내었다.


“따로 일이 있어서.”
“앞으로는 시각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예서 바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잖습니까.”


태현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조금 더 일찍 오도록 하지. 더는 이런 일이 없길 바랍니다. 두 사람의 짧은 대화가 오갔다.


“仕事があるとは?(일이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범규가 물었다. 연준은 잠시 범규 쪽을 바라보았다. 묘한 침묵이 흘렀다. 다른 단원들마저 이상하게 여길 정도였다. 태현이 그를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연준이 입을 달싹이다가 말했다.


“김태형이란 남자, 다들 아나?”


지민이 움찔거렸다. 그러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다들 저마다 아는 ‘김태형’을 떠올리기 바빴기 때문이었다. 태현조차 마땅히 해답을 주지 못했다. 그때 지민이 슬쩍 손을 들었다.


“경성의 제국보통학교 교사라 합니다. 과목이 음악이었던가…”
“…그렇군. 잘 알겠습니다.”


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연준이 물기가 거의 사라진 코트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


“어디 가십니까?”


태현이 물었다. 연준이 뒤를 돌아보았다.


“암살자가 죽이는 것 외에 할 일이 더 있나?”
“잠깐, 누굴…”
“그 김태형이란, 남자. 암살 현장을 봤어.”


적군인지 아군인지 몰라 살려뒀더니. 낮게 중얼거린 연준이 문을 소리나게 닫고 나갔다. 지민은 넋이 나간 채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있었다. 무려 연준이다. ‘지붕 위의 암살자’라 불리우는 독립운동가. 다른 암살자들과 달리 암살단에 속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키면 언제든 조선으로 총구를 겨눌 수 있는 사람. 지민은 황급히 미라보 호텔의 복도로 뛰쳐나가 종로의 거리를 달렸다.




__1942년 3월 31일
그믐달이 떠올랐다. 경성은 파티에 여념이 없는 방탕한 자들의 소음을 뺀다면, 무척이나 조용했다. 달이 어둡고 별 하나 없는 밤이었으므로, 그리고 갑작스런 비가 내리는 중이었으므로, 보드카에 거나하게 취한 취객을 빼고서는 아무도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아무도 하늘에 뭐가 있는 지 알지 못했다. 그것은 늦은 밤의 암살자에게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암살자는 기와집 지붕을 타넘고 경성의 밤을 가르며 달려갔다. 여즉 찬 공기가 그를 휘감았다. 온몸을 칠흑 같은 까만색으로 두른 그의 자태는 마치 검은 범의 것과 같았다. 그믐을 등지고 달리던 암살자가 한 지붕 위에서 멈추었다. 그는 소리 없이 총을 장전하고 목표물을 겨누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겨냥했고, 맹수가 으레 그렇듯이 최적의 시간을 숨죽여 기다렸다. 그 최적의 시간이란 표적과 총 사이 아무런 방해물도 없을 때. 만일 엉뚱한 이가 희생된다면 그만큼 위험한 것이 없으니 말이다. 방아쇠를 당기자 두 발의 총알이 큰 소리를 내며 동시에 날아가 표적의 숨통을 끊었다. 안에서는 피가 흩뿌려진 방 안을 보며 기겁하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여인네들이 비명을 지르고 칼을 찬 남자들이 일본어로 소리 지르며 암살자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거사는 성공이다. 표적이 죽었음을 확인한 경성 밤의 암살자들은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네.”


연준이 말했다. 둘은 한마디의 말도 없이 서로를 겨누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쏠 생각이었다. 두 암살자 사이에서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등을 보이는 것은 상대가 목숨을 앗아가는 것을 허용하는 행위이므로, 둘 다 등을 보이고 뒤돌 생각은 추호도 없는 듯 하였다. 비가 떨어지는 칙칙한 회색빛 비구름에 달이 가려 상대의 얼굴이 희끄무레한 검은색으로 나타났다.


“누구신가. 대답하는게 좋을 텐데.”


연준의 갈라진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물었다. 총구가 대답을 재촉했다. 그 순간 구름이 지나가며 그믐달이 다시 드러나 달 아래 복면으로 감싼 사내들의 얼굴이 드러났다. 이름도 신분도 지위도 없이 그저 같은 목적으로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자들의 얼굴이었다. 마주 본 사내가 대답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김태형.”




지민이 문을 박차고 열었다. 그 커다란 진동에 첼로를 켜던 남자가 그것을 부수고 안에 숨긴 총을 꺼내 겨누었다. 그의 눈썹은 짙었고, 꾹 다문 입술이 강인한 일직선을 그렸다. 지민이 두 손을 들었다. 남자는 아. 하고 총을 바닥에 떨궜다.


“못 쓰게 됐잖아.”


태형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지민은 바닥에 떨어진 총을 집어들고 태형의 유리창으로 겨누었다. 까만 인영이 유리창 너머 건물의 지붕에서 총을 겨누고 있었으므로. 지민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최대한 좋은 수를 생각하려 안간힘을 썼다. 지민이 태형을 한번 응시했다.


“그런거라면 진즉 이야기해줬어야지.”


태형이 배게를 들춰 그 속의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지민이 겨누던 곳을 향해 망설임 없이 총을 발사했다. 총알에 유리창이 깨졌다. 그럼에도 태형은 계속해서 총을 쏘았다. 총에 맞은 듯 인영은 비틀거렸다. 지민의 동공은 더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지민이 태형의 팔을 움켜잡았다. 약속된 악력이었다. 그러자 태형이 고개를 돌렸다. 총은 여전히 창문으로 올라가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비틀거리던 인영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총을 쏘았다. 총은 태형의 오른쪽 어깨에 명중했다.


“김태형!”


지민은 인영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인영은 사라지고 없었다. 지민의 옆에선 태형이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흘렸다. 지민은 황급히 서랍을 열어 천을 찾았다. 그러나 지혈할 마땅한 것이 없었다. 지민은 셔츠 소매를 이로 물어뜯어 길게 찢어내었다. 다행히 총알은 쉽게 빼낼 수 있었다. 지민은 태형의 오른쪽 어깨에 소매를 동여매었다.


“아까 그건 뭐였지?”


태형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지붕 위의 암살자’라고 들어봤어?”
“…?”
“내 동료야.”
“그 사람이 왜 나한테 총을 쏘지? 그자도 독립운동가라 들었어. 그렇다면 나도 같은 편 아닌가.”
“문제는…”


지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람이 죽이려고 한 건 ‘독립운동가 김태형’이 아니었다는 거지. 죄책감이 그를 짙게 내리눌렀다. 지민은 지붕 위의 인영이 부디 안전한 곳으로 갔기를, 그리고 급소를 맞지 않았기를 간절히 빌었다.


“이제 여긴 그만두는건 어때? 다 들통난 거 같은데.”
“다른 학교를 찾아볼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아니. 지민이 말했다. 내가 아는 곳이 하나 있어. 태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라면 믿을 수 있지.”
“말이 나온 김에 말이야.”


너, 아예 단체에서 일할 생각은 없냐?
태형은 의아한 표정으로 지민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 끝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민은 태형의 손을 움켜잡고 결연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것이 지민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수였다. 그믐밤에 총격전을 벌인 상대가 서로라는 것을 안다면 아마 두 사람이 길길이 날뛸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허나 앞으로 이러한 조선 사람끼리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라면 이 방편이 낫지 싶었다. 지민은 태형의 손을 어루만졌다. 그의 눈이 말했다.


‘이젠 다 괜찮잖아.’


태형은 마지못해 웃었다. 이 최면과도 같은 말을 믿고 싶었으므로.


‘그래.’


태형이 왼손을 들어 지민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제 다 괜찮아.’





__1942년 4월 3일
정국은 책상 앞에 앉아 삐뚤빼뚤하게 수식을 썼다. 그의 앞에는 윤기가 팔짱을 낀 채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윤기의 눈치를 보며 글씨를 써내려가던 정국이 마침내 펜을 놓았다.


됐죠? 다 풀었잖습니까! 저도 기관총 쓰게 해주십시오!”


정국이 팔자에도 없는 수학 문제를 푼 데에는 기관총의 역할이 컸다. 윤기가 수학 공부를 하면 정국이 기관총 쓰는 것을 ‘생각’ 해보겠다 했기 때문이었다. 윤기가 대장으로 있는 대한독립군은 이번에 양이들에게서 꽤 좋은 기관총을 수입해 들어왔었다.


“안돼. 내래 된다고 할 거 같았어?”
“그럼 그 조건은 왜 거신 겁니까!”


대장님 진짜 치사하십니다. 아십니까? 정국이 책상에 엎드렸다. 윤기가 쯧쯧 혀를 찼다. 푼 것도 반쯤 틀렸잖아. 공부하라고 하셨지 다 맞으라고는 안 하셨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치사하게 기관총 안 주시깁니까?


“내래 생각해본다 했지. 너 아직 열일곱 살이야.”
“다른 형들도 다 쓰지 않습니까!”
“말이 많다. 우리 곧 경성 갈 거니까 준비해.”


그 말에 정국이 고개를 바투 들었다. 똘망똘망한 눈이 더 크게 빛났다. 이럴 때 정국이 학생이라는 것이 참 뼛속 깊이 느껴졌다. 만주에서 나고 자란 정국은 경성을 가본 적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그것이 무슨 이유로 그러는 것이든, 정국은 벌써 설레기 시작했다.


진짭니까?”
“그래.”
“다른 형들도 다 같이 말씀이십니까?”
“아니?”


미쳤다고 부대를 다 끌고 가냐? 우리 둘만 간다. 윤기가 씩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