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 HOLIC



무제

W. 익명C







적당한 바람이 간지럽게 불고 햇살이 아름답게 
눈부셨고 딱히 기분나쁘진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 하다. 운동장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축구를 하고 야구를 하는 둥 각자만의 방식대로 즐겁게 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늘진 벤치 구석에 앉아 있다.
내 귓가엔 아름다운 선율의 피아노 곡이 흐른다. 
자유롭게 건반을 누비며 움직이는 손이 연상 됐고 
셈여림의 강도가 자연스레 이어졌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지 얼마 되었을까, 어떤 남자애가 내 주변에 앉아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나와 가까워지더니 어느새 내 옆에 앉아 있다. 

"저어... 너 뭐 듣고 있어?" 

이어폰의 소리를 크게 해놓은 탓에 미처 남자애의 말을 듣지 못했다. 그러자 뻘줌한 듯 나의 시선을 피하더니 이번엔 조금 전보다 조금은 더 큰소리로 가볍게 톡톡 
치며 내게 물었다.
"저기... 뭐 듣고 있냐고...!" 

이제야 듣게 된 난 처음보는 남자애의 모습에 어버버 
거리다가 잠시 피아노 곡을 멈추고 이어폰을 귀에서 뺀 다음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답했다. 

"말할 수 없는 비밀 OST Secret. 이곡은 셈여림이 
확실하고 리듬이 경쾌해서 듣기 좋아" 

남자애는 그렇구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신경쓰지 않고 다시 이어폰을 꽂으려 했으나 나를 계속 
쳐다보는 시선에 고개를 돌려 말했다. 

"... 너도... 같이 들어볼래?" 

남자애는 잠시 고민하는 듯 했지만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난 이어폰 한 쪽을 빼서 남자애에게 건내주었다.
둘이 같이 앉아 소소한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고 
한 쪽으로는 피아노의 선율이 아름답게 흘러가고 있었다. 

비록 초면인 남자애지만 나와 잘 맞는 듯 하고 조금의 
호감 정도가 생겼다, 내가 부정하는 걸 수도 있지만 
정확한 건 좋아하는 마음이 내 머릿속에 자그맣게 불쑥 생겨났다는 것이다. 

햇살이 아름답게 운동장을 내리쬐고 점심시간의 끝이 다가올 무렵, 남자애가 이어폰을 빼고 미소 지으며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이제 가야 돼, 다음에도 같이 듣자ㅎ" 

긍정의 의미로 눈웃음을 지었고 남자애도 뒤돌아 
손을 흔들며 점점 학교 안으로 멀어져 갔다. 곧 
점심시간의 끝자락이 되자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 나도 교실을 향해 갔다.다음에 그 남자애를 또 우연히 마주치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과 이어폰을 접어 내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