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모질게 굴어야 해. 여지조차 주면 안돼.
이를 꽉 깨물고 속으로 되뇌였다.
“가. 네가 안 가면 내가 갈 거니까.”
“누나, 나 이제 진짜 안 그럴게... 믿어주라, 응?”
“어제 보낸 문자 내용 기억 안 나?”
“누나가 번호까지 바꾸니까 너무 무서워서,
술 마시고 홧김에 보낸거야...”
우형이 힘 없이 무릎 꿇었다.
그 큰 덩치가 내 앞에 한참이나 작아져 있었다.
“일어나.”
“나, 나 연애 티 안 낼게. 다른 남자 프로듀싱 해도 돼. 그리고 또...”
“우형아.”
혹여 내가 말을 자를까 다급히 애원하는 모습에,
가슴 한 켠이 푹 꺼져 들어가는 것처럼 아파왔다.
눈물을 꾹 참고 우형 앞에 눈을 맞추고 앉았다.
“맞아, 넌 변할 수 있을 거야. 원래 좋은 사람이니까.”
내 답변에 우형의 얼굴이 환희로 가득 찼다.
“누나...”
“다음 연애부터는.”
그리고 이내 절망으로 변했다.
“나를 만나는 한 넌 그대로일 거야.”
“누나아...”
“다신 찾아오지마. 하민씨랑 친구라도.”
“...”
“그때부턴 작정하고 미워할 거야.”
그대로 일어서서 계단을 올라가려는 순간,
우형이 내 손목을 돌려 세웠다.
그리고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민우형. 나 진짜 화낼...”
“흐어어엉-”
이건 반칙이지.
나한테 혼나서 부스 안에서 울던
그때의 네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건.
내 어깨가 우형의 눈물로 젖어가고 있었다.
더 강하게 마음 먹고 있는 힘껏 우형을 밀어냈다.
짝-
그리고 우형의 뺨을 때렸다. 내 손으로.
“...더 실망하게 만들지마. 제발.”
그대로 우형을 두고 계단을 한참 오르고 올랐다.
반쯤 열린 옥상 문이 보일 때까지.
그제서야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오고,
눈물을 참느라 깨물었던 입술에선 피 맛이 났다.
우형의 뺨을 때린 내 손바닥을 보고 있자니
내 자신이 죽도록 미웠다.
그 어린 애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아니, 그럼 난 잘못이 있나? 그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게 맞는 거다.
미친 사람처럼 왔다갔다하던 그 순간-
흐릿한 시야에 휴지가 보였다.
익숙한 섬유유연제 향에 고개 들면,
예준이었다.
“쓰세요.”
“...아.”
예준이 건넨 휴지를 받아들자,
그가 말 없이 내 옆에 앉았다.
그냥 그만둔다고 할까.
어떻게 비즈니스 파트너한테 이런 꼴까지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와중에 예준이 생수 뚜껑을 따서 쑥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우느라 추해진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건네는 내게
그는 옅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말 없이 계속 내 옆에 앉아있었다.
이따금 하늘을 바라볼 뿐,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5분쯤 지났을까, 내 가쁜 숨소리가 진정되자
그제야 고개 돌려 나를 바라보는 예준의 시선이 느껴졌다.
눈이 마주친 순간, 처음 보는 예준의 굳은 표정.
“...죄송해요, 이런 모습 보...”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예준의 손가락이 내 입술로 향했기 때문에.
“피 나요.”
예준은 자신도 모르게 맨 손을 대고 놀랬는지
황급히 손을 치우곤 다시 휴지를 건넸다.
“살다 보면 별 일이 다 있다, 그쵸?”
예준이 씩 웃어보였다.
“아무것도 안 물어보시네요...”
“...죄송해요. 봤어요. 복도에서.”
“...어디까지요?”
“거의 다...”
“...”
“찔려서 그냥 털어놓을게요. 문자도 봤어요.”
남예준이란 사람을 만난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난 어디까지 까발려진 걸까.
“의도한 건 아니에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못볼꼴을 보였네요. 조심성 없이...”
“내용이 썩 친절하진 않던데. 괜찮으신 거 맞아요?”
“... 그냥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을 해 보는 거예요.
협박도 해보고, 빌어도 보고, 울어도 보고...”
“그럼 딱 하나만 물어볼게요.”
“...네.”
“또 아까 같은 일 생기면, 끼어들어도 되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