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전쟁 시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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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내 눈에만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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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문이 열리고 흰 가운의 택운이 걸어 들어온다. 택운 선생님이 걸어 들어오면 하나하나 주사를 맞기 위해 택운 선생님에게로 다가간다. 매일 주사를 맞는 게 아프지 않을까? 생각해보지만 내 생각에도 저 주사가 아니면 평범한 생활을 유지해나가기 어려운 초이스들이 많은 것 같다.
"주사 맞고 와야겠다. 잠깐만."
가장 먼저 택운에게 다가가는 건 지민이었다. 저 주사를 맞지 않으면 지민은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니까. 택운에게로 다가간 지민이 주사를 맞기 위해 팔을 걷자 여기저기 주사 바늘 때문에 생긴 상처들이 나있다. 그 상처를 보는 순간 나를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환한 미소를 잃지 않던 지민의 얼굴이 필름처럼 흘러지나가서 마음이 아파왔다. 지민뿐이 아니다. 어째서인지 별로 위험해보이지 않는 태형도, 호석도, 남준도 모두 하나같이 주사를 맞고 있었다. 석진오빠랑 윤기오빠는 호르몬 주사를 맞는 게 금지 되어있다면서 태형오빠나 남준오빠는 왜 주사를 맞아야하고 특히 희망을 주는 말을 하는 호석오빤 또 왜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하는지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 박지민. 어디 숨어 있다가 이 시간만 되면 나타나는 거야?"
태형이 지민을 만난 것이 반가우면서도 괜히 지민의 엉덩이에 발길질을 하면서 틱틱 댄다.
"난 이미 오래전에 여기 있었거든요? 지가 못 알아봐놓고는."
"그래서 삐짓나?"
지민의 토라진 말투에 태형이 자연스러운 사투리로 지민을 달래듯 말하자 아직 주사를 맞기 전인 태형의 매력적인 호르몬에 의해 얼굴을 붉히는 지민.
"아! 쌤! 빨리 김태형한테 주사 좀 놔줘요!"
지민이 태형의 호르몬을 버티기 힘들다는 듯 택운을 향해 소리치고 택운은 아무말 없이 태형에게 오라는 눈빛을 보낸다.
"치- 내가 그냥 갈까 보냐~♥"
태형이 얌전히 가지는 않겠다는 듯 지민을 향해 영혼을 담아 윙크를 날리자 지민이 못참겠다는 듯 태형을 향해 하트 눈을 하며 태형에게 다가간다.
"김태형, 너 뭔데 그렇게 귀엽냐? 짜증나 미치겠는데 귀여워. 아. 미치겠네. 망할. 호르몬도 꼭 지 같은 걸 골라서."
지민이 태형에게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자 태형이 지민을 몸에 붙인채로 재빨리 택운의 앞으로 다가가 팔을 내민다.
"쌤 빨리 좀 놔줘요. 얘 좀 떼어내게-"
택운이 별다른 말없이 태형의 팔에 주사를 놔주고 정신이 든 지민이 태형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동안 굳은 채 서있다. 지민이 땡 카운트 다운 5 4 3 2 1!
"우왕아아아아악아아가악!"
지민이 마치 못 할 짓이라도 했다는 듯 괴성을 지르며 태형에게서 떨어져나간다. 태형 또한 지민이 붙었던 몸을 툭툭 털어낸다. 그리고는 지민을 향해 꽤나 피곤하다는 얼굴로 말한다.
"박지민. 날 너무 좋아하지 마라-"
"미...미친! 미쳤냐! ㅇㅇ이면 몰라도 널 좋아하다..."
응? 나?
"오호↗오- 지금 그 발언 뭐야? 지민이의 고백이야?"
지민의 말을 들은 호석이 자신이 더 설렌다는 얼굴로 지민을 보며 호들갑을 떨어댄다. 일순간 태형의 표정이 싸악- 굳어지고 지민도 얼음이 되어선 삐거덕삐거덕- 당황한 표정으로 내 쪽을 돌아본다.
응...? 왜 저런 눈으로 날 보는 거지?
"건방지네- 존재감 없는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윤기가 지민의 발언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 지민을 향해 듣도 보도 못한 자작 속담으로 쏘아붙인다. 물론 달달한 호르몬 때문에 츤데레로 보이긴 했지만.
"그런게 아니라요.. 그냥 어쩌다보니까 말이 그렇게 나온 거지.. 꼭 그렇단 건 아니에요!"
지민이 윤기를 향해 변명하듯 다다다다 말을 내뱉자 지민을 향해 아주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찡긋- 지으면서 말하는 태형.
"아하- 그렇구나. 결론은 넌 ㅇㅇ이가 안 좋다는 거네?"
"야! 말이 꼭 그런 건 아니지! 그럼 넌! 김태형 넌 어떤데!"
"나?"
지민의 말에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나를 향해 상큼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하는 태형.
"난 ㅇㅇ이 좋은데?"
태형의 대답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태형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 지민이 당황한 표정으로 태형을 본다.
"야! 너가 그렇게 말하면 난 어떻게 돼?"
"왜- 그냥 느끼는 대로 말하면 되는 거잖아.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그걸 못하는 건 자신감 없는 자기 자신을 탓해야지."
태형의 말에 지민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그래.. 그렇네."
"지민오빠..?"
"... 잠시만."
내가 지민이 걱정되는 마음에 지민을 부르자 그런 나를 향해 애써 웃어보이고는 교실을 빠져나가버리는 지민. 내가 그런 지민을 따라 나가려고 하자 그런 나의 손목을 붙잡는 태형.
"태형 오빠.. 지민 오빠한테 가볼게요."
"가지마."
태형이 기죽은 얼굴로 나를 본다. 태형의 눈동자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만큼 애정이 가득 차 있을 줄 알았는데 나를 바라보고 있는 태형의 눈동자는 애정이 결핍되어 나에게 애정을 갈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단 지민오빠를 찾아올게요. 그 뒤에 지민오빠랑 화해하시는 거에요."
"..."
태형의 손을 떼어놓고 곧바로 지민의 뒤를 따랐다. 그래도 항상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혼자서 이겨낼 힘이 있겠지. 지민오빠는 늘 혼자였잖아. 자기 존재를 알아준 사람은 얼마되지 않잖아. 지민을 따르는 내 발걸음이 더욱 조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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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이 태형의 손을 뿌리치고 나간 뒤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이 없는 태형. 정국이 전용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창가자리에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정국이 그런 태형을 발견하고 조심조심 태형에게 다가온다.
"태형이 형.“
"... 왜...."
"..."
"왜.. 다른 사람들은 다 날 좋아해주는데... ㅇㅇ이만... 날.. 좋아해주지 않는거야?"
"태형이 형. ㅇㅇㅇ이 형을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민이 형을 걱정해서야. 지민이형은 존재감이 없는 호르몬을 가지고 있잖아. 늘 혼자일거라고 생각했을 거라고."
정국의 말에 상처받은 얼굴로 정국을 보는 태형.
"호르몬이 없으면... 혼자가 되는 건 마찬가지인데?"
"태형이 형.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야."
"후.... 나도 모르겠다. ㅇㅇ이가 이곳에 온 뒤로 자꾸 예민해져. ㅇㅇ이는 무효화 호르몬을 가졌으니까 내 호르몬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잖아. 그렇다는 건. 내가 호르몬이 없을 때의, 내가 평범한 인간일 때 그런 나를 대하고 있다는 뜻이잖아. 그래서 그런 걸지도 몰라. 내가 호르몬이 없었다면.. 지금과 달리 형편없는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태형의 말에 태형보다 더 슬픈 미소를 지으며 태형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하는 정국.
"태형이 형. 형은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야."
정국의 말에 태형이 고개를 들어 정국을 본다.
"그리고 형은 꽤나 괜찮은 사람이야. 그리고 충분히 살 가치도 있어. 그 증거가 바로 형 눈앞에 있잖아."
"... 전정국."
"나 같은 쓰레기도 살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세상이야. 그러니까 그런 말로 자기를 깎아내리지 마. 형."
정국의 말을 듣고 있던 태형이 정국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국의 이마를 탁- 소리 나게 쥐어박는다.
"악- 아파!"
정국이 이마가 아픈 듯 두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고 그런 정국을 향해 화난 표정을 짓더니 정국을 보며 혼내듯 말하는 태형.
"너 임마, 형 앞에서 한번만 더 그런 소리하기만 해봐- 그다음엔 이정도로 안 끝날 줄 알아. 나도 이제 안 그럴 테니까."
"알았어."
태형이 순순히 답하는 정국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다시금 실실 웃는다. 그런 정국이 기특한지 정국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말하는 태형.
"착하다. 우리 정국이."
"내가 무슨 앤가.."
투덜대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는 듯 태형을 향해 살짝 웃어 보이는 정국. 그런 둘의 모습을 보고 있던 남준이 기가 막힌다는 듯 호석과 슈가를 향해 말한다.
"저것들 지금 남자들끼리 뭐하냐?"
"거참- 거시기 거시혀요-"
남준의 말에 호석은 그런 장면이 간지럽기도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다는 듯 특유의 광주 사투리로 말한다.
"그나저나.. 지민이는 괜찮으려나."
석진이 지민이 걱정된다는 듯 말하고 그런 석진이 어색하다는 듯 말하는 윤기.
"형은 뭔 걱정도 그렇게 어색하게 해?"
"내 호르몬이 그런걸..어쩌겠어."
"나참- 형이나 나나 참 호르몬 때문에 고생이다 고생이야."
오랜만에 석진과 윤기의 호르몬 신세한탄이 오랜 시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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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이 오빠."
지민이 향한 곳은 교실을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는 곳에 있는 복도의 한 가운데. 학생들이 지민과 부딪히며 지나가는데도 지민은 별다른 느낌을 받지 않는 듯 했다. 단지 논초이스들이 복도의 한 가운데에 없는 사람처럼 서있는 지민을 이상하게 여길 뿐이었다. 정말이지... 아직도 자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느끼는 거야?
"오빠. 지금 오빠는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는 상태라고요. 복도 한 가운데에 서서 뭐하는 거에요?"
내 말에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지민. 그렇지만 그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은 없는 듯 여전히 미동 없이 서있다.
"오빠!"
내가 답답한 마음에 지민을 다시 한번 부르자 계속해서 나를 보고 있다가 입술을 떼는 지민.
"난.. 다른 사람 앞에 박지민이라는 이름으로 서본 적이 별로 없어. 그래서 친구라곤 초이스 반 녀석들밖에 없고 초이스 반 녀석들도 내가 호르몬 억제 주사를 맞기 전에는 날 못 봐. 그러다보니까 나는 친구를 사귀는 방법도 잘 모르고.. 어떻게 표현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을지.. 그런 것도 잘 몰라."
"..."
"그런데 방금 김태형한테 듣고 하나 배웠다."
"...?"
내가 지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지민을 올려다보자 그런 나의 손목을 잡아끌어 자신의 품 안에 가두고는 말하는 지민.
"그냥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내가 느끼는 대로 표현하고 행동하는 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