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 vivrai cette vie avec toi

Épisode 1. Le temps recommence

비가 오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도로는 여전히 밝았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젖은 아스팔트 위에 길게 번지고 있었다.

윤서는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서 있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회사 메신저가 떠 있었다.

 

[인사팀]

구조조정 대상자 면담 안내

 

짧은 문장이었지만, 의미는 충분했다.

윤서는 한동안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이 되자, 다리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신호등이 바뀌었고, 사람들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윤서도 따라 걸었다.

그때였다.

왼쪽에서 날카로운 경적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늦었다.

밝은 불빛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순간,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느껴졌다.

윤서는 이상하게도 공포보다 허탈함이 먼저 들었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아직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는데.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윤서의 팔을 잡아당겼다.

몸이 크게 흔들리며 뒤로 넘어졌다.

바로 앞을 자동차가 스쳐 지나갔다. 숨이 턱 막혔다.

윤서는 바닥에 앉은 채로 멍하게 앞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비를 맞고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젖은 느낌이 없었다.

키가 크고,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도 얼굴 윤곽이 또렷하게 보였다.

남자의 시선이 윤서를 향했다.

그 눈을 보는 순간, 윤서는 숨을 멈췄다.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아니.

‘전에’ 본 적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늦을 뻔했네요.”

낮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윤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남자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윤서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

차가웠다.

살아 있는 사람의 체온이 아닌 것처럼.

남자가 윤서의 손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엔… 기억 못 하겠죠.”

 

윤서는 눈을 크게 떴다.

“뭐라고—”

그 순간, 남자의 손목에도 무언가가 보였다.

검은 선.

실처럼 얇은 문양이 손목을 감싸고 있었다.

윤서의 시선이 자신의 손목으로 떨어졌다.

그곳에도 같은 것이 있었다.

빛이 아주 희미하게 반짝였다.

남자가 다시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요.”

잠시 멈춘 뒤.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그 말과 동시에.

세상이 어두워졌다.

모든 소리가 멀어졌다.

빛이 꺼지듯, 시야가 검게 가라앉았다.

눈을 떴을 때.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윤서는 한동안 눈을 깜빡였다.

몸을 일으켰다.

이불...책상...커튼...

모두 기억 속에 있던 그대로였다.

윤서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는.

예전 집이었다.

이사를 가기 전까지 살던, 원룸.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책상 위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2019년 3월.

윤서는 숨을 들이켰다.

“말도 안 돼…”

그날이었다.

구조조정 통보를 받기 전날.

그 이후로 모든 게 무너졌던 시점.

손이 떨렸다.

윤서는 급하게 휴대폰을 확인했다.

날짜도, 메신저 기록도 모두 과거 그대로였다.

꿈이 아니었다.

정말로.

시간이 돌아온 것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손목이 따끔하게 뜨거워졌다.

윤서는 소매를 걷어 올렸다.

얇은 검은 선이 손목을 감싸고 있었다.

어제, 그 남자의 손목에 있던 것과 똑같았다.

그리고 아주 약하게.

빛나고 있었다.

윤서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날 오전.

윤서는 회사로 향했다.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오늘, 무언가가 달라져야 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팀장이 윤서를 불렀다.

“윤서 씨, 잠깐 회의실로 와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예상하고 있었다.

구조조정 면담.

윤서는 천천히 회의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멈춰 섰다.

회의실 안에는 팀장과 함께, 낯선 남자가 앉아 있었다.

검은 정장.

차분한 자세.

고개를 든 순간.

윤서의 숨이 멎었다.

어젯밤.

횡단보도에서 만난 그 남자였다.

팀장이 말했다.

“이번에 본사 전략팀에서 파견 나온 정국 씨예요. 앞으로 프로젝트 같이 진행할 겁니다.”

정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윤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정국입니다.”

윤서는 손을 잡지 못했다.

정국의 시선이 윤서의 손목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이번에도 같은 날이네요.”

윤서의 심장이 크게 흔들렸다.

“뭐라고요?”

정국이 눈을 마주쳤다.

이번에는 분명하게 말했다.

“이번 생에서도.”

잠깐 멈춘 뒤.

“당신, 한 달 뒤에 죽어요.”

회의실 안의 공기가 멈춘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윤서의 손목에 있던 검은 선이,

아주 선명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