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책임져요, 대리님
"...저 정말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어떻게 신경을 안 써."
"...평소에도 저한테 관심 없으면서..."
"아픈 거랑은 별개지."
"걱정하지 마세요."
대리님께서 얼굴을 들이밀며 내 얼굴을 훑었다. 평소와 다르게 행동해서 아파보였는지 계속 쳐다봤다. 다 쳐다보곤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심장이 터질 뻔 했다. 거기다 걱정된다고 말하니 이 정도면 심쿵사 하고도 남을... 또 이렇게 보니 대리님이 날 좋아하는 거 같기도 한데... 그래도 난 멀어지기로 마음 먹었다. 어차피 멀어져도, 대리님을 향한 내 마음이 식어도, 대리님의 고백이면 심장이 다시 뛸게 뻔하니까_

"...이걸 다 했다고 가져온 거야..?"
"정사원. 아무리 막내라고, 들어온지 얼마 안됐다고 해도 이건 좀 너무 하지 않아?"
"중학생들도 이렇겐 안 써."
"저번 일 좀 잘해서 김태형같은 놈이 또 들어왔나 싶었는데 중딩 수준이잖아, 이거?"
김대리님 도움 없이 열심히 했다. 나름 최대한 배운 것들을 토대로 정리도 하고, 내용도 알차게 넣고, 요약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난 이 일과는 맞지 않나보다. 하필 처음 들어왔을 때 대리님이 해준 서류 덕분에 내가 잘하는 사람으로 찍혀버렸다. 그렇게 잘했는데 오늘 준 서류를 보고 얼마나 놀랐겠어. 나도 별로라곤 생각하지만 이 정도 실력밖에 안되는 걸 어떡해...
"..죄송합니다."
"오늘 안에 제대로 할 수 있어?"
"이건 초반부터 망해서 다시 싹해야돼."
"..다시 해올게요."
"너 들어온지 얼마 안돼서 이렇게 대하는 거지, 연차 좀 쌓이면 욕 먹을 거니까 제대로 배워."
"김대리 옆에 앉으라고 한 이유가 뭔데? 배워."
"...네."
김대리님한테 고백은 안 했지만 그냥 차인 거 같고, 또 일은 그지같이 못해서 부장님한테 욕 먹고. 서러웠다. 다 내가 못나서 그런 거지만 그냥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기운이 축 빠지니까 왠지 아파지는 거 같기도 하고... 이마가 후끈후끈 해진 거 같은데... 목도 아파...

"부장님, 이거 제가 할게요."
"무슨 소리야, 너 할 일 많은데 막내 걸 너가 왜 해?"
"저 빨리 끝내는 거 아시잖아요, 몇 개 더 생긴다고 해서 지장이 가는 것도 아니고요."
"김대리, 요즘 이상해. 막내 가르치라고 했지, 대신 하라곤 안 했어."
"옆에서 어떻게 하는지 보는 것도 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르는데 처음부터 붙잡고 있는 건 아닌 거 같은데요."
"부장님이 저한테 막내 맡긴 만큼 제 방식대로 알려줄 거니까 신경 끄시죠."
항상 친절하시던 부장님. 내가 일을 정말 못했나 보다. 친절한 부장님이 정색을 할 만큼. 그래, 부장님이니까 이 정도지. 다른 데 갔었으면 바로 잘렸어. 아니, 합격시키지도 않았겠다. 김대리님은 왜 자꾸 날 흔들리게 하는 거지.. 내 편을 들어주는 김대리님 때문에 눈물이 찔끔 흘렀다.
"김대리, 사내연애 금지인 건 알지?"
"아무리 너가 일을 잘한다고 해도 회사 규칙이니까 지키지 그래?"
"사람이 아픈데 무시하는 게 상사로서 맞는 건가요?"
"왜 갑자기 사내연애를 들먹거리시는진 모르겠지만 제가 퇴사를 하면 부장님만 더 힘들어지실텐데요."
"...막내 어디 아프냐?"
"우는 거 안 보이세요?"
"아프면 빨리 얘기를 했어야지..!! 막내 얼른 퇴근해!!"
"..전 괜찮아요..!"
"안돼, 난 안 괜찮아. 당장 들어가서 쉬어."
"난 아픈지도 모르고... 미안하다."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 부장님이 내가 알던 부장님으로 돌아왔다. 미안해하는 저 표정을 보고 좀 웃음이 나왔다. 김대리님한테 너무 고마웠고.. 그냥 좋았다. 감기가 걸렸는지 좀 으슬으슬하고 머리가 아팠지만 웃으니까 좀 나아지는 거 같기도 하고ㅎ 츤데레 김대리님을 보고 있으면 아픈 게 다 없어지는 느낌도 들었다. 나 아무래도 김대리님에게 푹 빠졌나봐_
"...감사합니다, 김대리님."
"자, 손."
"..핫팩은 왜..."
"여름이라 에어컨을 좀 세게 트나봐."
"감기 걸린 거 같은데 지금은 마땅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잘생겼지, 능력 좋지, 피지컬도 좋지, 말도 잘하지, 거기다 눈치까지 좋아. 이 남자 갖고 싶다... 추위를 좀 잘 타는 건가. 서랍에서 핫팩을 꺼내 나에게 건네주다니. 대리님의 손이 닿은 핫팩... 집안의 가보로 물려줘야하나... 이정도면 내 몸 알아서 아파줘야 된다. 대리님을 멀리 하자고? 좋아하지 말자고? 그게 퍽이나 가능하겠다. 잘난 남자가 내 앞에 떡하니 있는데 무시가 가능하겠냐고.
"내 차 알지, 끝나고 내려와있어."
"...왜요?"
"아플 땐 죽 먹어야지, 사줄게."
"그 정돈 아닌데.. 잠자면 나아요."
"됐고, 내 말 들어."
"일 하지 말고 담요 덮고 가만히 앉아있어."

"말 안들으면 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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