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 suis chez Jeon Jungkook.

[5]

내 첫 스케줄이다. 아직 데뷔전이지만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에 나온다는 건 엄청난 영광임이 틀림없었다.

"우와. 햄이가 우리 상대역이라니 완전 설레는데?"

"뭐야. 형이 어떻게 햄이를 알아?"

"햄이랑 나랑 친한 사이인데 몰랐어?"

태형이와 내 사이를 모르는 정국이는 잔뜩 뿔이 오른 채로 나를 마주봤다. 설명을 바라는 눈길이었지만 지금 여기에서 정국이에게 상황을 설명했다가는 의심을 당할 게 뻔했다.

"그냥 태형이 한테 도움 받은 일이 있어서."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잖아.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사이인데 그렇지?"

내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는 걸 모르는 태형이는 나에게 마음이 있는 정국이를 놀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렇게 있다가는 금방 정국이랑 내 사이를 들키고 말 것 같다.

"근데 며칠 사이에 너무 예뻐진 거 아냐? 꾸미니까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

"정말? 사실 좀 어색한데."

다이어트를 한 보람이 있는 걸까. 일찍 샵에 가서 머리를 하고 화장을 하느라 쪽잠을 잤지만 예쁘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다. 기대에 찬 눈으로 정국이를 바라봤는데 정국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 버린다. 뭐지. 이 서운함은.

"일단 상대역이 있는 장면부터 먼저 찍을게요. 햄씨도 준비해주시고."

"잉? 감독님이 햄씨라고 부르는데. 설마 데뷔명이 햄이야?"

"응. 햄이라는 호칭이 듣기 좋아서. 햄이로 정했어."

"그럼 누가 지어준 애칭인데."

정국이는 내심 뿌듯한 얼굴로 내 곁으로 다가와 섰다. 그새 기분이 풀린 걸까. 정국이는 몸을 낮춰 내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했다.

"이렇게 예쁘게 하고 오기 있기야? 뽀뽀하고 싶게."

나는 정국이의 귓속말에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라 버렸는데 정국이는 그런 내가 귀엽기만 한 지 생글생글 웃고 있다.

"뭐야. 햄아. 어디 아파? 왜 얼굴이 빨개지고 그래?"

"아니, 아니야. 잠깐 긴장을 했더니 열이 나서. 준비해야지. 준비."

"너네 스타일리스트 저기 있는데."

"그래. 안 그래도 돌아서려고 했어. 하하."

나는 정국이의 말 한마디에 정신을 못 차리고 겨우 스타일리스트 언니를 찾아갔다.

 

햄이 떠난 뒤에 뭔가 이상한 기류를 눈치챘는지 태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정국을 바라본다.

"너 햄이랑 잘 됐구나?"

"무슨 소리야?"

"아니라고?"

"..."

"아니면 내가 햄이 채가도 돼?"

정국은 반사적으로 인상을 구기며 태형을 노려봤다.

"거봐. 확실히 뭔가 있잖아. 반응이 적극적이어 졌다고."

"햄이 한테 피해주고 싶지 않으니까 모르는 척 해."

"윤기형도 알아?"

"몰라."

"이대로라면 윤기 형이 알아채는 것도 시간문제인데."

태형의 혼잣말을 듣고 있던 정국도 윤기가 신경 쓰이는지 촬영 준비를 위해 피아노를 점검하고 있는 윤기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윤기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다 말고 햄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했기에 정국은 지금 윤기가 얼마나 진심인지를 안다.

"하필이면 같은 사람을 좋아하게 될 줄이야."

"왜 상대가 윤기 형이라서 망설여져?"

"..."

"망설이면 빼앗겨. 잘 생각해."

태형은 정국에게 답이 없는 질문만을 던져두고 휑하니 사라졌다. 정국은 머리가 아픈지 머리를 쥐어뜯었다. 애꿎은 정국의 스타일리스트는 군말 없이 정국에게 다가와 헝클어진 머리스타일을 정돈해준다.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촬영을 알리는 사인 뒤에 나는 윤기와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함께하는 것이 즐거운 연기. 하지만 눈앞에서 나를 바라보는 윤기의 얼굴은 너무 행복해보여서 연기인 걸 잊을 것만 같았다. 이건 일이니까 몰입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윤기의 자연스러운 연기 덕분에 나는 무리 없이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내 눈 앞에서 나와 윤기를 지켜보고 있는 정국이와 눈이 마주치기 전까지는.

컷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윤기와 거리를 뒀다. 정국이가 많이 참아주고 있다는 걸 아니까 나도 어느 정도 윤기에게서 거리를 둬야한다고 생각했다.

"컷 사인 떨어졌다고 너무 매몰차게 떨어지는 거 아냐?"

"..."

"나 나름대로 햄이 한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은데."

윤기의 말에는 틀린 점이 없다. 나는 윤기에 의해서 플레디스에 캐스팅이 됐고 윤기의 프로듀싱을 받아 데뷔까지 하게 됐다. 윤기의 힘이 없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설 수조차 없을지도 몰랐다.

"맞아. 윤기가 나한테 도움이 된 건. 나도 그 점에서는 고맙다고 생각해. 윤기아."

"..."

"하지만 윤기아. 나는."

"아니."

넌 그냥 계속 나한테 고마워 해. 윤기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 손목을 붙잡았다. 스태프들이 나와 윤기가 사이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흘깃 시선을 보낸다.

"네 마음에 내가 없더라도 상관없어. 고마운 마음으로라도 옆에 있어."

"윤기야."

곤란해하는 나의 곁으로 정국이가 다가와 윤기의 손을 쳐냈다. 정국이도 윤기가 만큼이나 날카로워져 있었다.

"햄이를 곤란하게 만들지 말라고 한 건 형 아니야? 지금 누가 햄이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어?"

"네가 관여할 일 아니야. 이건 나와 햄이 둘만의 일이야."

"아니. 그건 햄이랑 형 둘만의 일이 아니야. 이건 나랑 햄이 일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거든."

잘 들어. 형. 정국이는 나를 자신의 뒤에 세운 채로 내 손에 깍지를 꼈다. 윤기의 눈길이 나와 정국이의 손에 닿았으나 정국이는 윤기의 눈앞에 대 놓고 깍지를 낀 손을 올려 보였다.

"나 햄이랑 사귀어."

"뭐?"

"내가 햄이 남자친구라고."

윤기의 눈동자가 잠시간 미세하게 떨렸으나 윤기는 다시금 포커페이스를 되찾았다.

"그게 뭐."

"뭐?"

"그게 뭐 어쨌는데?"

난 아직 햄이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데. 윤기는 담담하게 정국이의 눈을 마주보며 말을 이어갔다.

"넌 이 세계를 몰라? 우린 연예인이야. 사귄다고 해서 그게 이어질 거라는 보장이 없어."

"..."

"내가 들어갈 틈은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야."

윤기가 건드린 건 정국이가 혼자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였다. 정국이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해도 내 마음을 확정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윤기는 말문이 막힌 정국이를 지나쳐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잘 생각해. 햄아."

"..."

"누가 너한테 걸 맞는 사람인지."

연애는 팬심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 윤기는 그대로 나를 지나쳐 세트장을 벗어나 버렸다. 정국이와 나 사이에도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정국아. 윤기가 말은 너무 신경 쓰지마. 윤기도 화가 나서 그런 걸 거야."

"햄아."

"응?"

"날 사랑해?"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평소와 다르게 진지한 정국이의 모습에 흔들리는 눈동자로 정국이를 올려다봤다.

"햄이는 내 홈마였잖아. 팬심을 사랑이라고 헷갈리는 건 아니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팬심도 사랑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팬심과 사랑을 나눠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햄이를 팬으로 보는 게 아니야. 진짜 사랑하는 여자로 보고 있어."

"나는."

대답을 망설이는 내 모습에 정국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나를 향해 애써 웃어 보였다.

"아니. 아니야. 햄아."

그냥 답 하지 마. 정국이는 날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분명 촬영장에 우리만 있는 게 아니었는데 정국이가 빠져나가버린 뒤로 촬영장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괜찮아?"

태형이는 굳어 있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며 말을 걸어왔다.

"나 정국이 좋아하는데."

"응?"

"그런데 왜 대답을 못했지? 나 바보인가."

왜 불안하게 만들어 버린 거지? 정국이는 나를 위해서 용기를 내줬는데 나는 왜 이렇게 매번 망설이고 마는 걸까. 나는 태형이만 보면 눈물이 나는 병이 걸려 버린 건지 태형이를 마주보자마자 또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햄아! 안 돼! 화장 지워져! 뮤직비디오 찍어야지."

태형이는 나를 달래느라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태형이가 우는 나를 달래기 위해 내 앞에서 개그콘서트 서너코너는 하고 나서야 나는 울음을 그쳤다.

"누나, 햄이 화장 좀 고쳐주세요."

태형이는 프로정신으로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것들부터 차근차근 해결해 나갔다.

"이제 절대 울면 안 돼요. 뮤직비디오에 눈 퉁퉁 부어서 나가고 싶지 않으면. 모처럼 데뷔전 첫 스케줄이잖아."

태형이는 메이크업을 고치는 내 맞은편에 앉아 조곤조곤 입술을 웅얼거렸다.

"연예인이 되는 순간 햄이만 아는 생활은 거의 없어. 일반인일 때는 눈물을 흘려도 상대가 모르는 척해주면 그만이지만 연예인이 되면 전 세계로 햄이 영상이 퍼져나가 누군가는 녹화를 하고 누군가는 계속 공유를 해서 훗날 햄이의 표정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다는 걸 알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려고 나설 거야. 그 뒤에도 흔적이 없으라는 법도 없고. 결국 우리는 사실무근인 소문들 속에서 정말로 그 소문 속의 사람이 되고 말아."

생각해본 적 없다. 연예인이 되고 나서의 다른 사람들의 시선. 나는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방탄소년단의 홈마였던 나는 잘 알고 있다. 방탄소년단이 어떤 일들로 힘든 기간을 거쳤는지 말이다. 연예인이 되면 지금보다 신경 써야할 게 훨씬 많아지는 구나.

"난 누나가 루머 속에서 상처받기를 바라지 않아. 나는 아니까."

그 과정이 얼마나 미치도록 괴롭고 답답한지 말이야. 태형이는 늘 밝아보여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홈마 활동을 할 때도 태형이에 관한 나쁜 소문들이 돌았던 적이 있지만 태형이는 늘 환하게 웃고 있었다.

"괜찮다고만 말 해야 돼. 나를 위해서 응원해주는 사람들까지 걱정하게 만들 수 없잖아."

"미안해. 태형아."

"뭐가?"

"내가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 같아.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만 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괜찮아. 나도 처음에는 그러면 되는 줄로만 알았으니까. 그리고 꼭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야. 수많은 사람들이 내를 보고 격려해주고 응원해주고 사랑해주거든. 아미라는 팬 명도 있잖아. 너무 근사해. 좋아! 태형이는 정말로 행복한 얼굴이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닌 진짜 행복한 얼굴 말이다.

"아미라서 너무 좋다."

"응?"

"내가 아미라서 다행이야."

처음으로 내가 팬이어서 행복했다. 이렇게 팬을 사랑해주는 가수들을 응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도 햄이가 아미라서 더 응원하고 싶어. 진짜 성덕이 되는 거야!"

"좋아. 성덕 할 거야!"

"그럼 이제 슬슬 촬영에 들어가 볼까? 지민이가 한참 전부터 대기 중이거든."

나는 이제야 내가 뮤직비디오 촬영장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괜찮아요. 편하게 대하세요. 저도 햄씨 이야기 많이 들어서 아니까요. 윤기형한테도 편하게 부르시니까 뭐 저희도 나이 상관없이 친구처럼 지내요."

"그래도 될까요?"

"당연하죠. 더군다나 아미이니까요. 말 놓으세요."

"응. 고마워. 근데 지민이는 실물이 훨씬 더 잘생겼다."

 

지민이의 외모를 칭찬하는 중에 뒤통수가 따가운 것이 느껴졌다.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세트 밖에서 고개를 쑥 내민 채 나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정국이가 있었다. 당연히 화가 나서 뛰쳐나간 줄 알았는데. 지민이 다음 순서가 정국이라 그런 지 멀리 나가지는 못 한 것 같다.

"햄이도 완전 예뻐. 윤기형이랑 정국이가 괴롭히면 나한테 말해. 나랑 태형이가 혼내줄게."

"말만으로도 든든하다."

아무리 그래도 정국이가 내 남자친구인데 혼내달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너는 좋겠다. 박지민."

언제 내 옆에까지 다가온 건지 정국이가 떡하니 서있다.

"응? 왜?"

"햄이가 잘생겼다고도 해주고. 나는 그렇게 많이 만났어도 이렇게나 리액션이 좋은 걸 본 적이 없는데."

"뭐야. 정국이. 질투하는 거야?"

"토끼나 닮은 내가 누굴 질투하겠어? 팬심이라면 다 같아 보일 텐데. 뭐. 내가 남자친구로 선택 받은 것만으로 다행이지."

투덜투덜 토라진 꾸꾸다. 투덜거리는 것도 어쩌면 이렇게 귀여울까.

"귀여워."

"..."

"귀여워. 죽겠어. 전정국."

모두가 보고 있는 앞에서 정국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에는 한계가 있었다. 금방이라도 껴안고 싶었지만 정국이를 향해 웃는 걸로 대신했다.

"아. 진짜."

하지만 정국이는 참아내지 못했나보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정국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더 커서. 정국이는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나를 품에 감싸 안았다.

"미안. 나 진짜 못 참겠어. 햄아."

내 눈에 네가 너무 예뻐서. 행여나 그게 팬 심에서 그치는 마음이라고 해도 지키고 싶어. 정국이의 품에서 감동의 눈물이 흘러넘치려는 중에 태형이와 지민이는 주변의 스태프들에게 양해를 구하기에 바빴다.

"그러니까 빅히트 스태프 여러분. 아무쪼록 두 사람의 비밀을 지켜주도록 합시다."

"항상 고생이 많으세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뒷수습하기에 바쁜 구오즈라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