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our peut-il être guéri ?

45 | Abîme du désesp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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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ㅣ절망의 심연








“심각이요? 왜요?”

“의식을 되찾을 확률이 현저히 낮아졌어요.”

“이 상태면 의식을 찾는 게 기적입니다.”

간호사가 하는 저 말의 의미는, 의식을 찾을 수 없으니 포기하라는 말이었다. 나도 저런 말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 말의 주인공인 환자들 중 의식을 되찾은 환자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요.”

이미 절망적인데, 한 가지가 더 있다니. 듣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잠자코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간호사는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 환자 분의 부모님이, 연명 치료 거부를 했습니다.”

연명 치료 거부, 서아가 차고 있는 인공호흡기를 떼어내 저산소증으로 죽게 만드는 것이다. 보통 환자가 깨어날 확률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목숨만 겨우 이어갈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환자의 의사를 들을 수 없을 때는 배우자 혹은 가족이 결정하게 된다. 잘못 결정했다가는 살인죄로도 갈 수 있다. 서아는 분명 원치 않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다, 서아가 살고 싶어하는 것을.

“절대 안 돼요, 환자의 의사가 아니잖아요.”

“서아는 분명히 살고 싶을 거예요, 저는 반대해요.”

“비용이라면 언제든 제가 낼게요, 서아의 부모님은 서아랑 연 끊어서 아무 상관 없어요.”

“제발, 우리 서아 살려만 주세요.”

나는 울분을 토해내며 호소했다. 그만큼 간절했다, 서아가 깨어나는 게. 지금으로써는 확률이 낮지만, 계속 치료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깨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의사로서 나 같은 보호자들을 볼 때가 많았다. 의사의 시점에서 볼 때는 보호자가 더 안쓰러웠다. 환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의식이 없어 아무것도 모를 테지만, 의식이 있는 보호자들은 더욱 고통에 시달려야할 테니까. 그냥 보호자가 포기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계속 붙잡고 있기에는 확률도 희박하고, 보호자만 힘들 걸 알기에. 하지만 내가 보호자가 되니 의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꼴을 어떻게 보라고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절대 놓아줄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절망의 심연으로 빠져갔다.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까지 불행해본 적이 없었다. 결국 우울증이라는 진단까지 받게 되었다. 항상 자신감이 넘치고 자만하며 살던 내가, 서아라는 한 사람 때문에 변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된 건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서아 탓은 없었다, 내가 서아를 너무 사랑한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