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조작 동아리: txt [단편]

외전모음 <1>

짝사랑 커플《너만 모르는 짝사랑》
서우♡태현


하필이면 교양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쏟아졌다.

건물 입구에는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발이 묶인 학생들의 소리로 난장판이었다.


하지만 그런 소란속에서, 한서우만큼은 지극히 평범했다.

가방을 품에 안은 채 건물 기둥에 편하게 기대어 서서,
오히려 창 밖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감상하고있었다.



잠시 후,
빗줄기를 뚫고 걸어오는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과잠을 대충 걸친 채 커다란 우산을 쓰고 걸어오는 강태현.


주변 여학생들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태현이의 올곧은 시선은
오직 건물 입구의 서우에게만 고정되어있었다.



성큼성큼 걸어와 서우의 코앞에 멈춰 선 태현이는
이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우산을 가볍게 털고는,
서우를 향해 고개를 묵묵히 까딱했을 뿐이다.


그 짧은 몸짓 하나에도 모든게 통했다.

서우는 배시시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 태현의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서우가 들어오기 무섭게 태현이의 큰 손이 자연스럽게
서우의 가방을 빼앗아 제 어깨에 걸쳤다.
동시에 커다란 우산이 서우 쪽으로 가차없이 기울어졌다.


제 오른쪽 어깨가 비에 사정없이 젖어가는 걸 알면서도 태현이는
미간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어깨 다 젖는다며 까칠하게 우산을 기울여주던 태현은,
이젠 말 없이도 서우의 방향으로 완벽하게 우산을 기울일 줄 아는 
다정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가자."




나직한 태현이의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빗속으로 나란히 발을 맞추어 걸었다.

자연스럽게 어깨를 맞대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
서우가 문득 태현이의 젖은 오른쪽 어깨를 보다가 넌지시 운을 뗐다.




"너 고등학교 때 생각난다.
  그날도 비 갑자기 엄청 왔었는데."

"........"

"그땐 우산 속에서 나한테 왜 그랬어?
 그때도 나 좋아했다며."




서우의 짓궃은 말에 태현이의 걸음이 아주 미세하게 느려졌다.
5년이 지난 지금도 고등학생 때 속앓이하며 고백했던 기억이
낯부끄러운지, 태현이의 귀 끝이 살며시 붉어지기 시작했다.


태현이 괜히 덤덤한 척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한테 툭 내뱉었다.




"그땐 네가 우산도 없는 바보인 줄 알았으니까.
  딴 놈 옆에서 비 다 맞고 다닐까 봐 그랬어."

"바보라니..!
  그리고 지금은 우산 없어도 내 남친이 데리러 오는데."




서우가 장난스레 태현이의 허리춤을 꼭 껴안으며 올려다보자,
태현이는 결국 참지 못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피식 웃어버렸다.

그리고는 서우의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더 꽉 주며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말이나 못 하면. 알아들었으면 그냥 걸어."




빗소리가 두 사람의 발걸음을 포근하게 감사 안는 캠퍼스의 오후,
서투르고 애타기만 했던 1년의 짝사랑은 어느새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일상에 완벽한 정답이 된 장기 연애의 포근함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싸가지 커플 《마음에 안드는 싸가지》
여주♡연준




고등학교 2학년 새 학기,
교실의 공기는 1년 전과 사뭇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설마 했던 두 사람이 또다시 같은 반이 된 것도 모자라,
운명처럼 맨 뒷자리 짝꿍으로 배정받은 것이다.


1년 전 인간의 헤온이 높아서 짜증 난다며 제 몸에 손댈 생각 말라던
오만한 뱀파이어 최연준은 이제 교실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의 최연준은 수업 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상관없이,
여주의 등 뒤에 제 묵직한 턱을 묻은 채 
커다란 몸으로 여주를 가두는 백허그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어딜 가나 여주의 등 뒤는 온전히 최연준의 차지였다.




"야, 박쥐. 추워. 떨어져;;"

"싫어. 너 내꺼잖아. 내 마음이지."




연준은 여주의 어깨 위로 제 긴 팔을 단단하게 감아쥐며
낮게 투덜댔다.

연인이 된 지금도 늘 길거리에서 막 주워온 돌멩이마냥
까칠하면서도, 정작 제 가슴팍에 여주를 더 밀착시킬 뿐 
팔을 풀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였다.


뱀파이어 특유의 서늘한 체온이 무색하게,
연준의 가슴팍에서는 숨길 수 없이 빠르고 세찬 고동 소리가
생생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쿵,쿵,쿵

억울하게도 이 소리가 여주의 등에 다 들릴 텐데도 녀석은
등 뒤에서 고집스럽게 버텼다.




"체온 높아서 짜증난다며. 왜 붙어있냐."




여주가 1년 전 연준이 뱉었던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며
삐딱하게 고개를 돌려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정곡을 찔린 연준의 미간이 순간 팍 찌푸려졌다.
하지만 절대 지지 않으려고 눈을 똑바로 치켜뜨는
제 여자친구의 당돌한 꼴이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닌지,
녀석의 귀 끝은 이 지독한 교실 조명 아래 빨갛게 물들었다.


사귀는 사이여도 기싸움만큼은 팽팽하게 주고 받는 둘 사이에
가차 없는 텐션이 흘렀다.


연준은 에리한 송곳니로 자신의 아랫입술을 초조하게 짓누르며,
오히려 여주의 허리를 더 꽉 안아 제 품으로 당겼다.




"착각하지 마.
 네 구질구질한 체온이.. 요즘 좀 중독성 있어서 대주는 것 뿐이야."

"말이나 예쁘게 해라, 진짜."

"싫은데? 네가 먼저 나한테 져주던가."




밖에서는 다들 무서워서 벌벌 떠는 순혈 귀족이라지만,
제 목숨줄이자 유일하게 사랑한 인간인 여주 앞에서는 혼자만의
이상한 독점욕으로 끙끙 앓는 꼴이었다.

연준은 여주의 목덜미에서 풍겨오는 뜨거운 향을 들이키며,
터질 것처럼 붉어진 눈가를 숨기려 여주의 어깨에 고개를
푹 묻어버렸다.




"너 만약에 다른놈이랑 있는거 나한테 걸리면..
 여자친구고 뭐고 확 물어버릴거야."




사나운 잔소리와 달리 여주를 가두어 낸
연준의 손길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다급하고 소중해보였다.


인간의 냄새가 불쾌하다던 싸가지없는 뱀파이어가,
되려 인간의 온기에 완벽하게 감겨 한 걸음도 도망치지 못하는
고2의 치열한 교실 풍경이었다.




반인반수 커플 《나의 작은 유토피아》
서인♡카이




학교라는 틀 속에서 휴닝카이는 여전히 교실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 머물렀다.


사자 수인이라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 앞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 카이의 철저한 일상.

하지만 그 견고한 벽을 허물고 마침내 연인이 된 서인과의 관게는
학교 안에서 묘한 주파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과시하듯 연애를 동네방네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그렇다고 교실 안에서 타인처럼 숨 막히게 내외하며 숨기지도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소소한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서로를 녹여낼 뿐이었다.



점심시간,
아이들의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교실 뒷자리에서
서인이 영어 단어장을 보며 구벅구번 졸고 있었다.


그때 제 자리에서 미동도 않던 카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물함으로 향하는 척 자연스럽게 서인의 책상 모서리에
부드러운 바나나우유 하나를 툭 내려놓았다.


눈도 마주치지 않은 짧은 찰나였지만,
서인은 눈을 깜빡이며 잠결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카이는 남들이 보기엔 그저 지나가다 무심히 음요수를 얹어
둔 것처럼 덤덤한 얼굴로 제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길게 내려앉은 앞머리 틈새로 내비치는 푸른 눈동자 만큼은
숨길 수 없이 맑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방과 후,
모두가 빠져나간 서늘한 교실에 단둘만 남았을 때야 비로소
두 사람만의 시계가 느릿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서인아, 오늘 학교에서 진짜 조용히 잘 지냈지?"




카이가 가방끈을 고쳐 매며 말을 건내자,
서인이가 천천히 걸어와 카이의 손을 감싸쥐었다.

손바닥을 타고 번져오는 서인의 온기에,
카이의 머리 위로 숨겨두었던 하얀 귀가 파르르 떨리며 툭 튀어나왔다.



밖에서는 들킬까봐 꽁꽁 숨겨두었던 짐승의 흔적들이,
오직 서인이 앞에서만 가장 무방비하고 말랑해지는 순간이었다.


카이가 서인이의 손등 위로 제 뺨을 살포시 부벼오자,
서은이가 입을 떼었다.




"말 안해도 범규랑 소민이 같은 애들은 다 눈치챈 것 같던데?"

"진짜? 나름 티 안 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서로를 보는 눈빛이,
 남들이 보기엔 굳이 말 안 해도 이미 다 티가 난대."

"내 세계의 온도가 너로 가득 차 있는데 눈에 보이나봐."




거창하게 연애를 소문내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에게 단 하나뿐인 구원이자 울타리라는 사실은
숨길 수 없는 공기가 되어 교실을 포근하게 채우고 있었다.

굳이 소리내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일상에 잔잔하게 스며든, 백사자와 서인이만의
완벽하게 다정한 방과 후 풍경이었다.




영원럽 커플 《I Know I Love You》
여주♡범규




학교라는 잔인한 지옥 안에서 여주를 향한 시선과
꼬리표는 여전히 차갑고 날카로웠다. 

하지만 무저갱의 바닥에 주저앉아 고스란히 오물을 받아내던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여주의 손끝에는 범규가 쥐어준 온기가
상주하고있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은 남들이 말하는 평범한 연인이나 사귀는 사이 같은 
얕은 정의로 묶여있지 않았다.

그런 흔한 단어로는 이 깊고도 지독한 관계를 감히 설명할 수 없었다.

서로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숨이 멎어버릴 것 같은,
사귀는 사이 그 이상의 목숨줄 같은 각별함이었다.



방과 후,
거센 비가 내리는 날의 텅 빈 체육관 창고 안에는
지독한 적막이 가라앉아 있었다.


매트에 앉아 있는 여주의 손가락에는 오늘도 아이들의
괴롭힘으로 긁히고 베이고 뜯긴 자잘한 상처들이 가득했다.


범규는 아무런 말 없이 여주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제 커다란 손으로 여주의 작은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범규가 주머니에서 연고와 뱀드를 꺼내 여주의 손가락에 하나씩
정성스럽게 붙여주기 시작했다.


여주가 밴드가 붙여진 손가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주가 범규의 셔츠자락을 쥐며 말했다.




"저번에 사랑한다고 했던거, 꿈 아니지?
 너도.. 나 버리는거 아니지?"




그 애절한 물음에 범규의 손길이 잠시 멈추었다.
범규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여주를 응시했다.

그리고 여주의 뺨을 손으로 가만히 쓸어내렸다.




"꿈 아니야. 그리고 내가 널 왜 버려."




범규가 매트에 앉은 여주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제 가슴팍으로 여주를 포근하게 끌어당겼다.

사귀는 사이라는 명목은 필요 없었다.
이미 서로의 영혼에 깊숙이 새겨진 존재들이었다.


범규가 여주의 귀밑에 입술을 가까이 댄 채, 낮게 속삭였다.




"네 자리가 천국에 없으면, 내가 이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면 돼."




범규의 목소리가 여주의 귓가를 가득 채웠다. 
연인이라는 서투른 틀을 뛰어넘어,
문제투성이 세상속에서 서로의 유일한 법칙이자 
완벽한 구원이 된 두 사람의 짙은 그림자가 노을에 번지는
체육관 창고 바닥 위로 아련하게 겹쳐 들고 있었다.




첫사랑 커플 《첫사랑의 첫사랑》
여주♡수빈



가로등 불빛이 주황색 얼룩처럼 번진 새벽 3시의 공원은
시리도록 차가운 정적만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수빈은 낯설 만큼 수척해진 얼굴로 벤치 옆에 서서
줄곧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동이 울리던 새벽 2시의 핸드폰 화면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얇은 외투만 걸친 채 뛰쳐나온 여주는,
그런 수빈의 실루엣을 멀찍이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수빈을 제 세상에서 억지로 지워내기 위해
단 한 통의 연락도 하지 않았던 수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밤공기는 단숨에 과거의 숨 막히던 온도로 뒤바뀌고 있었다.




".....안 자고 있었네."




수빈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여주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목소리는 새벽 대기 속으로 하얗게 흩어지며 잘게 떨렸다.


여주는 대답 대신 주머니에 손을 깊숙히 찔러 넣었다.

늘 소년처럼 해맑게 보조개를 피우며
이어폰 한 쪽을 찔러 넣어주던 녀석이,
지금은 잔뜩 부서진 눈빛을 하고 있었다.



수빈이 성큼성큼 다가와 여주의 코 앞에 멈춰 섰다.
녀석의 큰 손이 여주의 뺨가로 뻗어 나오려다,
이내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허공에서 힘없이 툭 떨어졌다.




"매번 체육관 스텐드에 앉아 있을 때도 이랬어?
 나 농구하는 거 보겠다고 밤새 웅크려 앉아 있을 때도."




여주의 숨이 순간 멈췄다.

수빈의 입에서 나온 예기치 못한 문장 때문이었다.


녀석은 여주가 제 취향을 다 죽여 맞춰주었던 과거의 조각들을,
이제야 혼자 곱씹으며 앓고 온 게 분명했다.

여주가 입술을 피가 나도록 짓씹으며 차분하게 밀어냈다.




"...지나간 일이야. 이제 와서 왜 이래, 수빈아."

"내가 다 망쳐놓은 거 알아. 
 미안하다는 말로 다 안 씻기는 것도 아는데..."




수빈이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려 고개를 푹 숙였다.

커다란 어깨가 소리 없이 잘게 흔들렸다.
몇 년 동안 타인으로 살며 겨우 묻어두었다고 생각한 여주의 마음이,
제 앞에서 온몸으로 후회를 쏟아내는 첫사랑의 모습에
가차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방에 혼자 남으니까, 네 생각밖에 안 나더라.
 너는.. 너는 내 이기적인 취향 다 받아줬었는데....."




수빈이 떨리는 손으로 여주의 차가운 손을 조심스럽게 움켜잡았다.
거절당할까봐 겁에 질려 있으면서도 결코 놓지 않겠다는 듯
악착같은 아귀힘이었다.




"진짜 못된거 아는데, 나 한 번만 다시 봐주면 안돼?
 이제는 내가 네 세상에 다 맞출게, 제발..."




가로등 가의 흐릿한 새벽빛 아래,
길고 길었던 짯사랑의 방점은 비로소 수빈의 지독한 후회와
애원으로 완전히 진세를 뒤바꾸고 있었다.


수빈의 가슴팍에서 거칠게 요동치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여주는 마침내 수빈의 맞잡은 손에 조용히 힘을 실었다.







________


하하핫,,

오랜만에 돌아와서 분량 꽉꽉 채웠습니다..!
멤버도 하나씩 다 들어갔어요!
(하지만 글 퀄리티가,,) 

근데 제가 신작을 내고싶은게 있거든요?
근대 그러면 연재중인게 3개가 되잖아요
안그래도 빠듯한데 냘지말지 고민입니다😖

그러면 의견 많이 남겨주세요..!
 저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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