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 제 아내가 되어주세요.

EP.5

다음 날 오전.

서울시청.

평일 아침이라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혼인신고를 하러 온 몇몇 커플들은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면, 한쪽 창가에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은 조금 달랐다.

한 명은 무표정했고.

한 명은 긴장한 얼굴이었다.

여주는 손에 들린 혼인신고서를 내려다봤다.

이름을 적는 칸.

'배우자.'

평생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단어였다.

여주 "...진짜 하는 거네요."

성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성호 "네."

"...후회 안 하세요?"

"후회할 일을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여전히 감정 변화 없는 말투.

여주는 작게 웃었다.

'이 사람은 정말 로봇 같네.'

잠시 후.

직원이 두 사람을 불렀다.

"혼인신고 접수 도와드리겠습니다."

성호는 이미 서명까지 끝낸 서류를 건넸다.

직원은 서류를 확인한 뒤 미소를 지었다.

"축하드립니다."

"..."

"..."

축하.

그 말이 이상하게 어색했다.

둘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몇 분 뒤.

직원이 도장을 찍은 서류를 다시 내밀었다.

"오늘부로 두 분은 법적인 부부가 되셨습니다."

그 짧은 한마디가 모든 걸 바꿔 놓았다.

이제 김여주는 법적으로 '박성호의 아내'였다.


혼인신고를 마친 두 사람은 곧바로 SH그룹 저택으로 향했다.

오늘 오후.

결혼 사실을 박회장에게 직접 알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응접실 문이 열리자 박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박회장 "왔냐."

성호는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여주를 바라봤다.

성호 "...소개하겠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차분히 말했다.

성호 "제 아내입니다."

여주는 긴장한 채 허리를 숙였다.

여주 "안녕하세요... 김여주입니다."

박회장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긴장됐다.

그러다 갑자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는 크게 웃기 시작했다.

"허허허!"

성호조차 놀란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박회장 "그래."

"..."

"드디어 장가를 가는구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주 앞까지 걸어왔다.

박회장 "우리 손주 데리고 살아줘서 고맙네."

여주는 당황했다.

계약결혼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저렇게 말하는 걸까.

아니면...

모르는 걸까.

박회장은 성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박회장 "잘해라."

"..."

"평생 일만 하더니 이제야 사람답게 사는구나."

성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여주 쪽을 한 번 바라봤을 뿐이었다.


저택을 나오는 길.

차 안은 조용했다.

창밖 풍경만 스쳐 지나갔다.

한참 후.

여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주 "...대표님."

성호 "네."

여주 "계약결혼이라는 거..."

"..."

"회장님은 모르시는 거죠?"

성호는 잠시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성호 "네."

"...평생 모르셔야 합니다."

"..."

"그게 계약 조건이기도 하고."

"..."

"할아버지를 속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여주는 창밖을 바라봤다.

왠지 마음 한구석이 묘했다.

분명 계약일 뿐인데.

한 사람의 가족을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성호의 비서 김실장이 차를 멈춰 세웠다.

눈앞에는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최고급 주택이 있었다.

넓은 정원.

2층짜리 단독주택.

통유리로 된 거실.

여주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주 "...여기가 어디예요?"

성호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성호 "우리 집입니다."

여주 "...네?"

성호 "오늘부터."

"..."

"같이 살 집이요."

여주는 천천히 집을 올려다봤다.

'오늘부터... 여기서 같이 산다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을 때보다.

혼인신고를 했을 때보다.

그 말이 훨씬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이제 정말, 박성호와 같은 집에서 살아야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아주 어색한 신혼생활이, 그날 밤부터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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